내 글에서도 밝혔듯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 노선은 오바마 정부가 선언한 ‘아시아로의 회귀’ 독트린의 연장선 상에 있었습니다.

오바마는 2011년 말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했죠. 오바마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의 수렁에서 빠져 나와 아시아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중동에 대한 군사적 관여를 중단하는 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2014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IS)가 떠오르자 오바마는 당초 “지상군 투입은 없다”던 입장을 바꿔 중동에 다시 개입해야 했습니다.

중동에 군사적·자원적 문제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중동을 털어내고 아시아로 가는 게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바마의 선언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등장해 ‘미국 우선’을 외치며 오바마 정부 때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습니다.

중국 견제는 경제적 경쟁으로만 나타난 게 아니고 군사적 경쟁으로도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미중 간 군사적 경쟁은 비단 최근 현상만은 아닙니다.

다만, 요 몇 년 새 두 국가 간 군사적 경쟁의 수위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양적 변화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오바마 정부에 비해 트럼프-바이든 정부가 대만에 대한 군사적 방어 의지를 더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죠. 바이든 정부 들어 한미 정상회담이나 미일 정상회담 문서에 대만 문제가 공공연히 언급됩니다.

또, 바이든 정부하에 미국의 국방 예산 규모가 연거푸 역대급으로 책정됐는데,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집중돼 있습니다.(일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럽 안보 강화에도 맞춰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종환 씨는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가 저마다 독자적으로 개입하는 다자 구도”를 상정합니다. 나도 지금이 냉전 시절처럼 경제적·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체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국주의 질서를 “다자 구도”, 다시 말해 경제적·정치적으로 다극화된 체제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더 복잡합니다.

냉전 해체 뒤에 미국 경제의 상대적 하락 때문에 다자화의 논리가 일부 작용했지만, 그 논리가 곧장 현실 세계의 질서로 안착된 게 아니었습니다.

주요 국가들 간 경제적 상호의존과 상호침투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들입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지정학적 측면은 단순히 “다자 구도”는 아닙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데, 먼저 유럽연합이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제 규모는 미국에 견줄 만하지만 여러 국민국가들로 분열돼 있고, 러시아에 대한 안보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중국이 미국 등 나토가 러시아를 패배시키면 자신들이 그 다음 타깃이 될 거라는 두려움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지 수위를 조절하고 있긴 하지만,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한 것은 1930년대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지금 제국주의 질서가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처럼 경제적·정치적으로 다극화된 세계는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즉,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돼 왔지만 군사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입니다. 사실, 달러 우위에 바탕을 둔 미국의 금융 지배력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의 약화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다.

이런 능력 덕분에 선진 자본주의 지역들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비록 확고부동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요컨대, 우리는 여전히 한 제국주의 국가가 경쟁 열강보다 더 강력한 시기의 제국주의 경쟁을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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