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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경찰, 진보 출판사 또 압수수색
표현의 자유 공격 중단하라

7월 2일 발행한 기사에 7월 4일 항의 기자회견 소식 등을 보강했다.

6월 30일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옛 보안수사대) 경찰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김일성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한 민족사랑방 출판사 사무실과 인쇄소, 출판사 대표(김승균)와 직원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를 위반했다는 혐의다(이적표현물 출판).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회고록으로 법원과 공안당국은 진작 이 책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해 왔다.

지난해 이 책이 출간돼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를 시작하자, 우파 단체들이 법원에 이적표현물이니 책의 판매·배포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었다.

그러나 이 신청은 1심부터 올해 1월 대법원까지 모두 기각됐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에 따르면, 1심 재판부는 ‘이적표현물이란 사정만으로 책 유통이 금지돼선 안 된다’고 판결했고, 2심 재판부는 ‘일반인들이 책 내용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이유를 들었다.

대법원이 판매를 허용했지만, 재출간 준비를 하자마자 경찰은 다시 압수수색을 벌인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5월에도 김승균 대표와 출판사 등을 수색하고 책을 압수했었다.

이번 압수수색 사실을 최초 보도한 〈민플러스〉에 따르면, 구매자 명단도 압수수색 대상에 있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경찰이 지난해 책 구입자의 통장까지 뒤졌다고 폭로한 바 있다.

도서 출판을 이유로 여든이 넘은 김승균 출판사 대표를 일 년 새 두 번이나 압수수색하며 괴롭히는 것이다. 이런 괴롭힘과 구매자까지 처벌될 수 있다는 압박을 통해 경찰은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해 판매 금지를 유지하려는 듯하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 형사들은 대법원 판결을 들어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출판사 측에 ‘민사와 형사는 다르다’고 답했다고 한다. 헌법 위에 국가보안법이 있다는 말다운 답변이다.

7월 4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법원 판단을 위배하는 경찰이 ‘독립성’ 운운하고, 윤석열이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 운운해 온 위선을 규탄했다. 이들은 이번 압수수색이 윤석열 정부의 공안통치 신호탄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다.

신념을 표현할 자유 김승균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회고록 출간은 남북 화해 운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표현의 자유

시중 서점에는 히틀러 자서전, 전두환·노태우 회고록(특히 전두환 회고록은 1980년 광주 진압 관련 허위 사실과 비방을 담고 있어 소송 대상이 됐다), 온갖 전쟁광·연쇄살인범의 행적이나 심리를 다룬 도서들이 버젓이 출판된다.

2심 선고처럼 보통 사람들이 책의 내용을 읽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이 더 자주적이 되려면 더 많은 표현과 토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경찰·검찰이 김일성 회고록을 출판조차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국가 검열권으로 보통 사람들의 독립적 판단 능력을 국가가 대신하겠다는 것이니, 실은 그것을 인정치 않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머릿속 생각을 재단하고 처벌하는 희대의 악법인 이유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은 어떤 사람들의 생각을 단속하는가?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만이 아니라 박근혜, 재벌, 우파 언론 사주들도 김정일-김정은 등을 만나서 선물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경제 협력 등을 논의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으로 남북 협력을 진행하기도 했다.

박정희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도 김일성을 직접 만나 비밀 회담을 했고, 노태우 정부도 비밀 회담을 거쳐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으며, 이명박도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려고 뒷돈 거래를 시도했었다. 이런 행위 어느 것도 국가보안법의 심사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억압 대중의 남북 자유왕래(요구)나 북한 관련 표현·출판은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행위가 된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혜택을 입고 이 체제의 본질적인 지속을 바라는 사람들과, 이 체제를 급진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구분한다.

고로 국가보안법은 체제 수호를 위한 계급 차별 악법이다. 바로 그 때문에, 북한 국가가 아니라 국제 노동계급을 이롭게 하려는 실천을 하는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들도 이 법의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돼 온 것이다. 이들의 실천을 이적행위로 처벌할 때, 국가는 스스로 노동계급의 적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에게는 출판과 토론의 자유를 통해 정치 의식을 스스로 발전시킬 자유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의 경찰

한편, 장경욱 변호사는 6월 30일(압수수색과 같은 날) 북한 귀향을 요구해 온 탈북민 김련희 씨가 경북경찰청 안보수사대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관련 참고인 소환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안보수사대의 최근 움직임들은 윤석열 정부하에서 경찰·검찰·국정원 등의 태세를 보여 주는 것으로 보인다. 7월 4일 윤석열은 ‘정보 경찰’ 출신 윤희근을 새 경찰청장으로 내정했다. 서울경찰청은 바이든 방한 반대 시위를 이유로 대학생진보연합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는 복합 위기 조짐 때문에 불만과 저항이 빈번해지고 격해질 가능성이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경찰의 수사 권한을 강화해, 안보수사대의 권한도 커졌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에 이행되도록 돼 있지만, 사실 국정원의 대공 정보 수집 등의 기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전보다 공안 수사는 더 강화될 수 있다.

《세기와 더불어》 출판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규탄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즉각 중단하라. F-35 배치에 반대했다가 구속됐던 청주 평화운동가들이 구속 기간 만료로 얼마 전 석방됨에 따라, 남북경협 사업가 김호 씨는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유죄 수감돼 있는 유일한 피해자다. 김호 씨도 석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