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미국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 낙태권을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에서 특별 발언하는 버지니아 로디노 ⓒ노동자연대TV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국에서 낙태 시술을 받을 기회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이미 심각하게 불평등했다는 것입니다.

낙태 시술자들이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미국가족계획연맹과 낙태 클리닉은 낙태뿐 아니라 성교육, 피임 수단, 여성 보건, 건강 검진 서비스 등을 제공해 왔지만 정부 예산이 끊겨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10년 동안 낙태를 금지하는 수많은 법이 미국의 여러 주에서 통과됐습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동안 낙태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잇달아 당선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낙태 문제가 ‘공화당 대 민주당’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정치인들을 투표로 뽑아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빌 클린턴이나 조 바이든 등 민주당 정치인들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전투적인 대중 저항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했을 뿐입니다.

낙태에 관한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슬로건은 낙태가 “안전하고 합법적이고 드물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죠.

2021년 12월 연방대법관 새뮤얼 알리토의 낙태 반대 의견이 알려진 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지만, 민주당이 발의한 전국적 낙태권 보호를 성문화한 법안은 미국 상원에서 부결됐습니다.

마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당시 흑인 농구 선수들이 [운동에 연대해] 경기를 거부한 것에 대응해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경기장으로 돌아가서 [대선] 투표를 잘하라’고 촉구하며 진정한 행동을 만류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민주당 정치인들은 대중 행동을 촉구하지 않습니다. 바이든은 물론 진보파 민주당 정치인들도 연방대법원에 대한 분노를 이용해 이번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표를 늘리자고나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에 기대는 게 아니라 대중 운동을 건설할 때에만 낙태권을 지키고 되찾을 수 있다 ⓒ출처 Nathan Rupert(플리커)

민주당과 정치인들이 이처럼 우리의 기본적 권리를 방어하지 못하는 것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대중운동을 건설할 때에만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고 되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민주당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야말로 여성을 빈곤의 나락에 빠뜨리고 낙태 시술과 재생산 보건을 누리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기업주들의 당인 민주당은 운동을 포섭하고 무력화시키고 운동의 급진성을 제거해서 더 많은 표를 확보하려 할 뿐,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 내려 하진 않습니다.

미국인의 60퍼센트 이상이 낙태권을 지지합니다. 말 그대로 한 줌밖에 안 되는 자들이 미국인 다수의 의사를 마음대로 거스른 것이죠.

낙태는 계급의 문제

낙태권이 그저 정치인들의 은혜로 성취된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운동이 정치인들에게 낙태권 인정을 강제했던 것이죠.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낙태 문제는 저들이 꾸며낸 이른바 “문화 전쟁”이 아니라, 계급 문제입니다. 낙태권은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런 분석을 내놓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지배계급은 여성에게 공짜로 양육을 맡겨서 다음 세대 노동력을 길러 내기를 원하지만, 여성의 지속적인 노동력도 필요로 하는 모순된 처지에 있습니다.

여성의 삶에 여러 진보와 변화가 있었지만 가족과 여성의 역할에 관한 낡은 관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관념인즉슨,] 가족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고, 여성은 그 안에서 양육자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족이 다음 세대 노동력을 길러 내는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 것을 당연시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여성 권리에 대한 거세지는 공격이 극우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트럼프 정부하에서 극우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극우·파시스트 운동에는 여성의 지위를 공격하는 남성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가족 내 전통적 성역할을 강요하고 낙태에 반대했습니다. 현재 극우는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고, 1960년대부터 여성들이 쟁취해 온 성과를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재생산에 관한 권리는 핵심적인 계급 문제입니다. 낙태권은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재생산에 관한 권리에는 피임을 통해 자신의 건강과 성생활에 관한 결정을 내릴 권리도 포함됩니다.

이런 권리를 쟁취하려면 힘을 합쳐 저항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삶에 대한 통제권을 기업과 우익 판사들, 정치인들에게서 빼앗아 와야 합니다.

이 쟁점으로 국제적 연대를 건설할 상당한 기회가 있습니다. 예컨대 동성애자나 성소수자 해방 운동 같은 다른 운동과 연대를 건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캐나다 등지의 자긍심 행진에서 이런 식의 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로서 정치적 주장을 통해 노동조합원들과 노동조합 지부를 투쟁에 끌어들이고, 거기서 결의안을 통과시켜 역량을 투여하게 하고, 사람들을 행동에 동원해야 합니다.

이 분노가 투표함 속으로 사라지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것은 오직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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