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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논쟁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7월 2일 런던대학교에서 벌인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공개 토론에서 한 발제와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패널로 질베르 아슈카르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 서게 돼 정말 기쁘다. 지난 몇 년 동안 기이한 가상 세계를 통해서 만나 온 여러분을 여기서 직접 보게 되니 정말 반갑다.

그러나 지금은 쾌활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재래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포격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매일 양측에서 200명이 전사하고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언론들이 크게 보도했듯이, 침략군인 러시아군의 무차별적 포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우크라이나를 떠나, 단지 서쪽의 유럽연합뿐 아니라 동쪽의 러시아나 옛 소련의 일부였던 나라들로 피난을 가고 있다.

포격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 도시 미콜라이프 ⓒ출처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

매우 끔찍한 일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해 왔다. 우리는 러시아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군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참사를 직시하면서 이 상황이 단지 양극화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이 전쟁은 단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제국주의의 충돌이 아니다. 물론 양국의 충돌은 이 한창인 열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전쟁의 당사자는 적어도 셋이다. 제3의 당사자는 서방 제국주의다. 서방 제국주의 세력에는 미국과 나토의 미국 동맹국들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어느 정도는 일본 등도 포함된다. 이들은 합심해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양국이 충돌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가 제공하는 군사적 지원의 규모는 엄청나다. 전쟁 초에 약속한 지원 외에도 미국은 44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곡사포, 대전차 미사일,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등 갈수록 정교하고 사정거리가 긴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나토는 지난주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나토의 전투 부대인 신속대응군을 4만 명에서 30만 명 규모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바이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8만 명이었던 동유럽 주둔 미군의 수를 22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영국에는 스텔스 폭격기 대대를 배치할 것이다. 한편, 영국도 유럽연합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 지대에 병력을 증파하고 있다.

이처럼 서방 제국주의 열강은 막대한 군사적 동원을 하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나만 하는 말이 아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전략 개념’은 러시아를 서방의 “이익과 가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로 지목한다.(여기서 “이익과 가치”라는 표현을 쓴 것은 흥미롭다. 경제적 측면과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이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국민방위전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제국주의간 충돌이기도 하다. 여기서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의 당사자가 적어도 셋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배경(전경(前景)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배경이다)에는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있다. 양국의 대규모 갈등이 십중팔구 앞으로의 시기를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갈등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좌파 일각에서는 이 전쟁의 첫 번째 차원, 즉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의 전쟁이라는 차원에 초점을 맞춘다. 몇 주 전 세계의 많은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이 발표한 공동 성명이 그런 사례다. 여기에는 트로츠키주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꽤 많이 연명했다. 여기 있는 아슈카르나, 미국에서 활동하고 나와도 친분이 있는 로버트 브레너도 여기에 연명했다. 브라질의 주요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도 많은 수가 동참했다.

그 성명서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제국주의의 충돌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베트남 인민의 투쟁이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전쟁은 제국주의간 전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고, 러시아와 서방 자본의 침투를 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궤변이다. 이런 설명은 미국과 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고 벌이는 일들을 전체 그림에서 도려낸다.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러시아의 식민지(또는 신식민지)”라는 일각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정치 체제가 서방으로 확실하게 기울고 나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제국주의의 연계는 갈수록 강화됐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연계가 강화됐다.

나는 한 전직 유럽 주둔 미 육군 사령관이 쓴 매우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 글은 2015년부터 미군 조직들이 우크라이나 군대를 맹훈련해 온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러시아가 침공하기 한 해 전에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수억 달러 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이 참가한 합동군사훈련 ‘래피트 트라이던트 2014’ ⓒ출처 미 육군

앞서 언급한 국제 좌파들의 성명서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전쟁을 대리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을 그저 나토에 놀아나는 존재로 그리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남의 주장을 완전히 곡해하는 것이다. 어떤 전쟁이 대리전이라고 해서 실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가 자신을 대리인으로 앞세운 국가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로봇 같은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해관계가 서로 만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50~1953년에 벌어진 한국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었다. 그 전쟁에서 스탈린은 북한 정권과 김일성, 중국과 마오쩌둥을 모두 소련의 대리인으로 써먹었다.

당시 역사를 보면, 김일성은 남한을 침공하기를 매우 간절하게 원했다. 그는 정말로 일전을 원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신중하게 김일성을 제어했다. 아시아에서 서방 제국주의를 밀어낼 뿐 아니라, 1949년 혁명의 승리로 막 수립된 중국 정부를 소련에 묶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리전에서 대리인 구실을 하는 국가들은 저마다 나름의 국가적 자율성과 이해관계가 있다. 다만, 이런 국가들이 훨씬 더 강력한 국가들과 그 국가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미국 국방장관인 로이드 오스틴에게 물어 보라. “우리의 목표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솔직한 대답이다. 너무 노골적이니 좀 어조를 누그러뜨리라고 바이든이 불평했을 정도다.

미국은 자신이 “독재적인 열강”과 충돌하고 있다면서 꽤나 자의식적이다. 여기서 “독재적인 열강”은 중국과 러시아를 특별히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전쟁을 꾸며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음모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이용해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중국에 이런 교훈을 주려 한다. ‘너희가 대만을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다면 우리는 너희를 저지할 것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을 베트남 전쟁에 비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베트남 공산당은 민족 해방 투쟁을 이끌며 처음에는 프랑스 제국주의, 그다음에는 미국 제국주의에 45년 동안 맞서 싸웠다. 아슈카르의 동료인 피에르 루세가 이에 관해 훌륭한 책을 쓴 바 있다. 베트남인들은 1950년대 초 프랑스를 패퇴시켰지만, 소련과 중국이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사실상 베트남을 배신해, 베트남 공산당은 베트남의 분단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은 남베트남의 공산당 세력인 베트콩이 봉기를 조직하면서 시작됐다.

북베트남에 근거지를 둔 베트남 공산당이 소련과 중국의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기 소련과 중국 정부는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베트남 지도부는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설 공세 등 그들이 감행한 공격들은 베트남 지도부가 대체로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는 전혀 처지가 다른 것이다.

앞서 말한 국제 좌파 성명에 연명한 아슈카르나 그 밖에 내가 아는 많은 활동가들의 문제점은 레닌이 제1차세계대전 동안 끈질기게 매달렸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복잡한 현실과 거기에 내재한 모순들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그것들의 상호연관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전에 아슈카르는 나토와 나토의 동진을 비판한 매우 훌륭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아슈카르는 그 분석을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짓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다. 이처럼 아슈카르와 그 성명의 연명자들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는 무시무시한 일과 온갖 참상을, 유럽뿐 아니라 전 지구적 수준에서 심화되고 있는 제국주의간 쟁투라는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는 통합적인 분석을 거부한다.

문제는 잘못된 분석에 기초해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은 좌파가 사태에 영향을 미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아슈카르는 전쟁 초에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를 구분[하며 우크라이나에 공격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내 생각에 그런 구분은 가능하지 않다. 그 성명도 이 문제를 파고들지는 않는다.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지하고 러시아의 패퇴를 원하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는 주요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의 주류 정치 세력들이 취하는 입장 안에서 놀게 된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서방 세계 바깥의 지역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개발도상국·빈국으로 갈수록 러시아에 반대하는 것에 대한 열광은 빠르게 사그라든다. 그러나 서방에서 나토에 침묵하면 주류 정치와 입장을 같이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폴 메이슨의 비극적 사례를 잠깐 언급하겠다. 아슈카르를 그와 엮으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메이슨이 [서방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과 활동가들을 학계에서 쫓아내거나 공격하려고 영국 정보기관의] 이러저러한 자들과 손잡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제기를 차치하더라도(어떤 점에서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메이슨은 영국 정부를 지지하며 갈수록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무기 지원과 군비 증강을 촉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며 주류 정치 세력들보다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심하게도 메이슨은 국방부를 강화하고, 폴라리스 핵잠수함을 늘리고, 핵무기 이외의 온갖 무시무시한 무기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슈카르 등이 연명한 공동 성명은 메이슨과 입장이 같지 않다. 그러나 그 성명에는 정치적 공백이 있다. 그 성명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끔찍한 전쟁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이게 끝이다. 이 전쟁에 관한 좌파의 독자적 입장이 없는 것이다. 그저 주류 정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러시아 제국주의를 규탄할 뿐 아니라 서방의 제국주의나 그에 대한 협력에 반대하는 것이 좌파가 낼 수 있는 독자적 목소리다. 5월 21일 서울 반전 집회 ⓒ이미진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이는 제1차세계대전 때 카를 카우츠키가 취한 태도를 연상케 한다.

제1차세계대전 때 주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각자 자국 정부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카우츠키는 여기에 이렇게 답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이 끝장났다고 하지는 마라.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잠시 가동이 중단됐을 뿐이다. 전쟁이 지나가면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현재 많은 국제 좌파들도 그러고 있다. 이 전쟁에 직면해서 사실상 활동을 멈추고 있다. 확전의 동학이 단지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만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핵무기가 동원되는 충돌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서방의 안보 싱크탱크에 몸담은 등신들은 러시아를 패배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패배시키자고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이다. 전술 핵무기 사용을 군사 교리로 정해 놓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패퇴시키겠다는 것이 과연 가당한 얘기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제1차세계대전 때 레닌과 룩셈부르크가 취한 입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제2인터내셔널이 실제로 죽었다고 선언하고 제국주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고 전쟁을 낳는 체제에 맞서려 했으며, 특히 자국의 지배계급에 초점을 맞췄다.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구호처럼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슈카르 등의 동지들이 취한 입장에 따르면 주적은 국내에 있지 않다. 주적은 크렘린궁에 있는 푸틴이 된다.

푸틴이 정말 만악의 근원인가? 전쟁은 오직 푸틴 때문에 벌어졌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정치적 입장은 피상적인 것이다.

아슈카르나 그의 동지들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혐오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나는 그 동지들이 아마도 그런 혐오에서 비롯한 그 입장을 재고하고 진정한 반제국주의 진영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정리 발언

아슈카르는 곡해에 관해 불평한다. 그러나 나도 ‘진영론’ 딱지를 붙이는 곡해를 멈추라고 아슈카르에게 촉구하고 싶다.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가 서방 제국주의에 비해 차악이라고 보지 않는다.

비록 논쟁을 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아슈카르는 ‘신진영론’에 관한 꽤 추상적인 논지를 펴면서 전쟁저지연합이 진영론에 빠졌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진영론자들은 전쟁저지연합에서 완전히 주변화됐다.

그러니 양측 모두 곡해는 피하자.

둘째, 아슈카르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본다면 모든 제국주의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지배자들의 제국주의에 관해 특별한 접근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배를 주장하는 것은 옳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질베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배가 무엇을 의미하냐는 [폴란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안제이 제브로프스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이 물음이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배는 핵심적으로 대중 투쟁, 특히 노동계급 투쟁의 발전에 크게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서방의 제국주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러시아에 있지 않다. 우리는 영국에 있다. 우리는 나토 같은 미국의 동맹을 지탱하는 데에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오래된 제국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아슈카르에 따르면 우리는 전쟁 당사자가 아니다. 그저 구경꾼일 뿐이다. 전쟁은 오로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일이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슈카르의 어떤 주장, 곧 진정한 위험은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이 아니라 서방과 중국의 대결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그의 논지를 약화시킨다. 서방 제국주의는 방향을 미세 조정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6월 말 나토 정상회의는 이른바 ‘권위주의’에 맞서자며 그런 방향 조정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물론 서방에게 가장 중요한 표적은 중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기꺼이 러시아를 먼저 상대하려 한다. 그들에게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서방 지배자들의 대중국 공세 강화를 푸틴 탓으로 돌리는 것은 터무니없다. 제국주의자들은 모두 서로 경쟁하고 서로에게 책략을 편다. 당연히 상대방이 벌인 일을 이용해 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푸틴이 지금 상황에서 최고 악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수준에서 사태를 바라보면 특히 더 그렇다.

물론 서방은 전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있다. 그랬다가는 제3차세계대전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퍼 주고 있다.

아슈카르는 베트남전 당시 소련이 북베트남에 지원한 전투기 대수와 무기의 양을 거론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하지만 역사적 유비는 단순히 전투기 대수를 세는 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반적인 정치적 맥락을 봐야 한다.

젤렌스키와 그의 정부는 동유럽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첨병 내지 무장한 경비견 구실을 자처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이스라엘과 같은 곳이 될 것이라 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하는 구실이 무엇인가? 서방 제국주의의 경비견이다.

아슈카르는 1935년 에티오피아 전쟁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당시 에티오피아가 노예제 사회였음에도 트로츠키가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맞서 에티오피아의 승리를 지지했다며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당시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를 정복해 19세기 말에 이루지 못했던 이탈리아 제국주의의 숙원을 이루려 했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다르다.

물론 푸틴은 온갖 국수주의적 망상에 취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은] 마치 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가 영국과 프랑스에 이렇게 말하는 것과도 같다. ‘나에게 무기를 잔뜩 보내 달라. 그러면 이탈리아를 물리쳐 주겠다. 그리고 그 일대에서 당신들의 경비견이 돼 주겠다.’ 그런 맥락에서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무솔리니의 침공이 정당한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그런 맥락이라면 트로츠키가 어떤 입장을 취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에티오피아 전쟁을 사례로 드는 것은 잘못된 유추의 오류다. 그리고 우리는 예전에 트로츠키가 취한 입장을 경전처럼 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마구 퍼 주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거나, 정전 협정을 맺을지의 여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얘기들이 더해져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러시아는 그들이 너무 많이 후퇴했다고 판단하고 반격을 꾀할 것이다. 그러면 핵무기가 동원될 수도 있는 확전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감히 추측하기도 싫은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리스 철도 노동자들의 수송 거부로 우크라이나로 가는 무기를 실은 열차가 멈춰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슈카르가 취한 입장의 비극적인 점은 좌파에게 아무런 독자적 과제를 제시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보수 일간지들과 보리스 존슨과 함께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러시아가 패배하는 꼴을 보자’고 하는 것이다. 좌파가 고유한 입장 없이 무위도식하고 주류가 취하는 입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가? 우리는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그렇다. 우리는 제국주의 기구의 기능에 차질을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보내는 데 차질을 준 그리스 철도 노동자들을 지지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포식자들 사이의 쟁투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저지해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앞서 했던 말로 발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룩셈부르크와 레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입장은 분명했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라는 괴물을 낳았다. 우리의 임무는 그것을 파멸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