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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폭염과 이상 기후:
노동자와 서민이 더 고통받고 있다

평소보다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와 열대야에 온열질환자가 폭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집계하는 ‘2022년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 체계 신고 현황’을 보면 5월 20일~7월 10일 온열질환자 수는 733명으로 지난해 184명에 비해 4배로 늘었다. 지난 10년 사이 가장 뜨거웠던 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갑절이나 된다.

6월 하순 평균 기온은 기상관측망이 전국으로 확충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첫 폭염경보도 지난해보다 약 20일 빨랐다. 서울과 수원 등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6월에 열대야가 나타났다. 또, 올해는 전국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봄 기온이 가장 높았다. 최근에는 폭염과 장맛비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습도도 높아 체감온도가 최고 35도 안팎인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올 여름 폭염은 단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북반구 전역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고 유례없는 고온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22년 7월 12일 세계 기온 분포도 고위도 지역에서도 30도가 넘는 폭염이 나타나고 있다 ⓒ출처 Climate Change Institute

인도와 파키스탄은 3월부터 폭염이 시작돼 봄이 사라졌다. 인도와 파키스탄 일부 지역에선 4월 평균기온이 122년 만에 가장 높아 최고기온이 50도 가까이 치솟았다.

스페인과 독일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 건조한 날씨와 만나 대형 산불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알프스 산맥의 한 봉우리에서 빙하가 붕괴됐다.

북아프리카 남서부 지역도 대부분 6월 기온이 연일 40도를 넘어섰다.

중국 남부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중부와 북부에 폭염이 발생하는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

올해 북반구 폭염의 가장 큰 특징은 출현 시기가 매우 빨라졌다는 점이다. 미국 중서부와 남부 유럽은 올해 5월부터 폭염이 나타나 6월 중순에 오면 40도를 넘는 곳이 확대됐다. 그런데 이런 고온 현상은 예년 같으면 빨라도 7월 중순 이후에나 나타났다.

전문가와 기상학자들은 전 세계 빠르고 극심한 폭염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 마이크 스패로 대변인은 2019년 캐나다 CBC와 한 인터뷰에서 “극심한 폭염의 발생빈도가 10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도 폭염 출현 시기가 빨라진 원인이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에 있다고 지적했다.(IPCC 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제2 실무그룹 보고서)

세계기상기구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핵심지표인 온실가스 농도와 해수온도 등이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 2022년부터 2026년 사이에 인류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를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93퍼센트 가능성).

한국의 무더운 여름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한반도 폭염의 원인 중 하나로 대기 상층의 티베트 고기압과 하층의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찍 확장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2018년에도 같은 현상 때문에 열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열돔 현상이 나타나 찜통더위를 겪었다. 올해도 최악의 폭염이 닥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원래 고도가 높은 티베트 지역은 만년설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이 지역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태양열 반사율이 감소했고 반사되지 못한 열 때문에 상층에 뜨거운 고기압이 만들어진 것이다.

열돔 현상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열돔 현상으로 소 수천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극지방 기온을 더 많이 올려 적도와 기온 차이를 줄이고 그 결과 대기 흐름이 느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게도 미래를 미리 맛보는 것에 불과하다” 하고 경고했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서민에게 더 큰 고통

기후변화는 사회 전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전 세계 수많은 평범한 노동계급이다. 폭염은 야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다. 온열질환자의 대부분은 건설업 같은 실외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발생한 온열질환 환자 733명 중 236명이 “실외 작업장”에서 발생했다. 직업 분류로도 “단순노무종사자”가 167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7월 4일, 대전의 건설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콘크리트 타설 작업 후 쓰러져 숨졌다. 구급대원이 노동자를 병원에 옮길 때 노동자의 체온은 40도였다.

폭염 속 조선소 노동자들이 그늘을 찾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경택

그러나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단지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 피해를 줄이려면 적절한 휴게 시간과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실외 작업장뿐 아니라 물류 창고 같은 실내 작업장에도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에게 물과 그늘, 휴식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열사병 예방수칙을 발표했지만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발표한 건설현장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폭염기에 시원한 물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15.9퍼센트, 휴식시간에 ‘아무 데서나 쉰다’는 답변은 66.5퍼센트, 냉난방 시설 등을 갖춘 온전한 휴게실에서 쉬는 적이 ‘없다’는 답변은 52.5퍼센트나 됐다.

기업주들이 공사 기간을 맞추고 비용을 줄이려고 예방수칙 따위는 간단히 무시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실내 작업장의 열사병 예방가이드도 법적 강제력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그나마 기업주들의 책임을 강제하는 조항이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개악하려 한다.

더욱 극심해지는 폭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정부는 전기요금도 인상했다. 에어컨도 마음 편히 켜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면 온열질환자는 더 늘어날 것이고 취약계층의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고통전가에 맞서 싸워야

기후변화와 전 세계 폭염의 가장 큰 책임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화석연료를 태워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에게 있다. 국내에서도 11개 기업집단이 국내 온실가스의 64퍼센트를 배출한다. 누적배출량을 따지면 이보다도 훨씬 크다. 이들은 기후위기의 주범이면서 그 위기를 방치하고, 그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기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고통전가에 맞서 싸우고 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폭염시 작업중지권과 현장에 편의시설과 휴게시설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폭염 속 초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온 택배 노동자들도 투쟁을 통해 휴식 시간을 확보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사용자들은 이 성과를 되돌리려고 공격하고 있다. 대학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들도 몇 해 전부터 휴게실과 냉방장치를 요구하며 싸워 왔고,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기후 위기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집단적으로 싸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이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은 기후 위기의 가속을 늦추면서도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실질적 대책을 강제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이런 대책에는 작업장과 주택의 냉난방을 개선하고 한낮의 작업을 중단하는 조처부터 재생에너지 부문에 투자를 대폭 늘려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조처들도 포함될 것이다. 또 가정용 전기요금은 낮게 유지하고 산업용 요금을 인상해 기업주들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도록 강제하는 조처도 포함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윤 축적을 위해 지구 환경과 인류를 희생시키는 체제의 작동 원리에 도전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멈추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후 위기의 피해와 생계비 압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범한 기층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이들이 기후 운동에 참여해 장차 자신들의 힘을 기후 위기를 멈추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만이 기후 위기를 낳고 그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전세계 지배자들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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