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대규모로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행진인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0만 명이 참가했다. 오후 3시쯤 사람이 가장 많은 때에는 1만 5000명 정도 됐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2년간 퀴어퍼레이드는 온라인이나 소규모로 대폭 축소돼 진행됐었다. 코로나19는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고립감과 경제적 불안정 등 조건 악화를 가져왔다. 그런 만큼 이날 광장은 “마침내 이렇게 다시 만났다” 하는 벅참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3년 만에 무지갯빛으로 물든 서울광장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펼쳐지고 있다 ⓒ이미진

퀴어퍼레이드가 개최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서울광장 사용이 신고제임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사용 신고를 바로 수리하지 않고 열린광장시민위원회로 넘겼다. 사용 신고가 수리됐을 때조차 오세훈은 과다 노출·음란물 전시 금지라는 황당한 조건을 내걸었다. 명백히 성소수자 차별적 조처다.

그럼에도 이에 아랑곳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울광장을 무지개로 수놓았고, 이날 행사에서 서울시의 차별적 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올해도 매우 젊었다. 커플끼리 손 잡고 오거나 삼삼오오 친구들과 축제를 즐기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또, 여러 성소수자 단체와 대학 동아리, 여성단체, 진보정당, 노조 등에서 깃발을 들고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7월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제 23회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이미진
“마침내 이렇게 다시 만났다” 7월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제 23회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이미진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폭우 속의 도심 행진이었다. 행진을 시작할 무렵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내렸다. 참가자들은 처음엔 우산을 펴 들었지만, 이내 쏟아지는 비를 맨몸으로 맞으며 춤추고 소리치며 행진했다.

총 8개의 차량이 행진을 이끌었다. 맨 앞 차량은 무지개예수가 운영했다. EDM 형식으로 편곡한 찬송가를 따라 부르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선두에 섰다.

행진의 후미는 행동하는성소수자연대(행성인)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행진단이 이끌었다. 이들은 행진 차량을 배정받지는 못했지만 자체 스피커로 행진을 이어갔고, 여러 노동·사회단체 깃발들이 뒤따랐다.

폭우 등으로 대열이 중간에 끊겨서 행진 선두와 후미가 1시간 정도 차이가 났는데도, 모두 끝까지 신나게 3.8킬로미터 도심 행진을 벌였다. 행인들이 손을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해방감 쏟아지는 폭우를 맨몸으로 맞으며 신나게 행진하는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 ⓒClara Delort
장대비를 맞으며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Clara Delort

한편, 이날 다국적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행진 차량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HIV 치료와 예방에 사용되는 트루바다 등을 생산하는 길리어드는 돈벌이를 위해 특허 등으로 높은 약값을 유지해 왔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속 단체들은 “초국제적 제약회사가 스폰서십을 내세워 행진의 선두를 점하는 것은 온당한가” 하는 입장을 발표했고, 당일에도 행성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 일부 단체 부스에서 “모두를 위한 의약품 접근권”을 요구하는 팻말을 공동으로 부착했다.

행진 전 본무대에서도 여러 발언과 공연이 있었다.

올 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39일 단식 농성을 했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활동가의 발언이 큰 호응을 받았다.

또, 올해 지하철 타기 투쟁으로 주목받은 전장연 이형숙 대표의 발언도 호응이 있었다. 이형숙 대표는 “장애, 성소수자 인권이 연결돼 있다”면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전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조직하는 활동가들의 발언도 있었다. 하반기에는 인천 등지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본무대에는 12개 국가 주한 대사관 측의 발언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특히 주한 미국 대사의 발언에 큰 함성과 박수로 호응했는데, 한국의 주류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해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가는 자국 성소수자들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성소수자의 친구인 양 행세해 왔다. 그러면서 이슬람은 동성애를 배척한다는 식으로 이슬람 혐오를 부추겨 왔다. 성소수자 지지 언사를 자국의 제국주의적 패권 추구에 이용하는 ‘핑크 워싱’을 해 온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친화적 이미지를 내세워 진보운동 일부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한편, 사드 배치 등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군사 작전을 펴 왔다. 그래서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미국 등 서방 국가 대사관들의 퀴어퍼레이드 지지는 그저 환영할 일이 아니다.

올해 행사장에는 부스가 80여 개 마련됐다. 여러 단체가 자신의 활동을 알리고 성소수자 차별 반대와 자긍심을 보여 주는 굿즈(물품)를 배포·판매했다.

한편, 올해도 대한문 방면에서는 퀴어퍼레이드에 반대하는 개신교 우파의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이들은 스피커를 높여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하고, 곳곳에서 ‘동성애 반대’ 팻말을 들었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며 자신감과 활력을 보이며 거리를 행진했다. 

빗속의 무지개 장대비를 맞으며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Clara Delort

노동조합, 진보정당, 여러 사회단체에서 퀴어퍼레이드에 함께 했다 ⓒClara Delort
쏟아지는 폭우를 맨몸으로 맞으며 신나게 행진하는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 ⓒClara Delort
장대비를 맞으며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Clara Delort
제23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미진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퀴어들 7월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제 23회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이미진
혐오와 폭우를 뚫고 7월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제 23회 서울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이미진
개신교 우파들이 서울광장 맞은 편에서 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