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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하에 계속 부정적인 정의당

얼마 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고유가 시대, 서민부담 낮추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 유류세 인하·탄력세율 확대의 문제점과 대안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국민의힘·민주당이 추진하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 법안을 비판했다. 정의당은 계속해서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 왔다.

정의당 정치인들도 유류세 인하 반대가 인기 없는 주장이라는 점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장혜영 의원은 “일시적으로 세율을 낮추어 유가 부담을 낮출 수는 있”다며 타협의 여지는 열어 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유류세 인하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주된 근거는 유류세 인하가 고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역진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묘한 논리다. 모름지기 부가가치세나 유류세 같은 간접세가 역진적이라고 간주돼 왔기 때문이다.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똑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저소득층의 상대적 부담이 더 크다. 유류세 같은 간접세를 줄이는 게 역진성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장혜영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 일부 패널들은 기름값이 올라 저소득층이 석유 소비를 더 많이 줄이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인하하면 석유 소비를 줄이지 않은 부유층이 더 혜택을 본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고유가 때문에 저소득층이 소비를 더 많이 줄인다는 주장이야말로 역진세인 유류세가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임을 보여 준다.

뒤집어 보면 이는 유류세 인하 효과도 저소득층에게 더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류세 감면 혜택은 절대 액수로 따지면 고소득층이 더 크지만, 유류세 경감액을 소득 내 비중으로 따지면 소득 하위 10퍼센트가 상위 10퍼센트의 3배로 나타났다.

기묘한

정의당은 유류세 인하 대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취약계층 지원은 마땅히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이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고소득층”에는 노동자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 흔히 소득 상위 20퍼센트를 고소득층으로 분류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위 20퍼센트는 연봉 5600만 원, 월급 실수령액 370만 원이다. 상위 10퍼센트도 연봉 7800만 원이다. 즉, 정의당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유류세 인하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의당은 노동자들이 유류세를 내야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보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사회연대전략의 발상이다. 사회연대전략은 자본가 계급이 져야 할 일부 책임을 일부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노선이다.

정의당의 견해에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면 노동자들도 (석유) 소비 줄이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보는 생각도 포함돼 있다. 이는 노동자들도 기후 위기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요컨대 정의당의 구상은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모두 희생과 나눔에 동참해야 불평등을 줄이고 탈탄소 전환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 같은 좌파가 역진세인 유류세 인하에 반대하며 노동자들의 생활고를 무시하면,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미진

그러나 이런 방식은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인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물론 정의당은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의 상당수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노조 가입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투쟁은 노조 지도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자신들은 더 넓은 ‘국민적 시야’ 속에서 활동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을 개별 유권자나 납세자로 보는 관점이 갈수록 강화되고, 계급적 관점은 갈수록 흐려진다. 게다가 정의당의 활동이 의회에서의 입법에 초점을 두게 됨에 따라 일정 소득 이상의 노동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에게 (기껏해야) 모순된 신호를 주는 셈이 됐다. 예컨대, 기름값 인상에 맞선 임금 인상 투쟁을 지지하더라도 유류세는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도 양보와 희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분위기가 커질수록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가들이다.

계급투쟁의 전진을 추구하는 관점에 서지 않은 정의당의 노선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정의당이 더 많은 득표를 하려 해도 투쟁이 고양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선거 성적이 좋았는데, 이는 박근혜 퇴진 투쟁의 여파 속에서 치러진 덕분이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 해도 거대한 운동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윤을 지키려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자들이 생활수준의 일부를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당한 책임 전가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어떤 연료를 사용해 에너지를 생산할지 결정할 권한이 없다. 노동자들에 대한 이런 부당한 책임 전가는 노동자들이 기후 운동과 거리를 두게 할 뿐이다.

정의당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일관되게 대변하려 애쓰지 않을수록 노동자들 내에서 자신의 지지를 갉아먹는 것은 자연스럽다. 얼마 전 대우조선 사내하청 파업 연대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서 장혜영 의원은 “노동이 정의당을 버렸어도 정의당은 노동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노동은 정의당을 버리지 않았다. 정의당이 진정으로 돌아봐야 할 것은 노동을 향한 자신들의 정치다.

안타깝게도 좌파에서 유류세 인하를 반대하는 곳이 정의당만은 아니다. 진보당도 거의 비슷한 주장을 한다. 노동당은 유류세에 관한 입장은 내지 않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좌파의 약점을 우파가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윤석열은 대선에서 전기요금 인상 반대 공약을 내어 호응을 얻었다.(물론 당선 뒤 금세 어겼다.)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유류세 인하를 위한 입법을 하겠다고 한다. 좌파 정당들이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외면해서 좋을 일이 없다.

노동계급의 생활고에 분노하며 아래로부터 계급투쟁의 전진을 추구하려는 정치가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