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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민주주의의 파괴자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의 파괴자

수전 조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 달째 되던 11월 9일에 카타르 도하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 각료 회담이 열렸다. 수전 조지는 WTO가 등장할 당시인 90년대 중반부터 WTO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대표적인 반자본주의 활동가다. 국내에 번역돼 출판된 그의 책으로는 《외채 부메랑》(당대), 《50년이면 충분하다》(아침이슬) 등이 있다. 이 글은 시애틀에서 반WTO 시위가 있기 직전인 1999년 9월에 씌어졌다.

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커다란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투사들은 WTO를 주된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이 괴물은 무엇이란 말인가?WTO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50년에 걸친 협상, 그 중 특히 몬테비데오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라 불리는 지난 8년 동안의 협상에서 생겨났다. 그 결과 1995년 1월 1일에 WTO를 창설하자는 합의가 도출됐다. WTO는 제네바에 있는 GATT가 쓰던 그 건물에서, 거의 똑같은 GATT 관료들로 출범했다. 그러나 WTO와 GATT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들이 있다. GATT는 주로 산업 관세들만을 다루고 있지만 WTO는 무역에 관한 다양한 협정을 포괄하고 있다. WTO가 다루는 범위는 매우 광범해서 사실상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영국인 레온 브리턴 경은 올해(1999년) 말 시애틀에서 열릴 예정인 WTO 회의에 인류에 대한 선물이라는 의미로 ‘밀레니엄라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러분은 분명히 이 말을 들어보았겠지만 사실 밀레니엄라운드가 법적 실체를 갖고 있진 않다. 레온 경의 계획을 살펴 보자.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사회에 초국적 기업의 안건들을 제시했다. 매번 WTO 각료회의가 다음 번 각료회의에서 다룰 의제를 정한다. 시애틀에서 논의할 주요 안건은 세 가지다. 첫번째는 세계의 모든 소농들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인 농업이다. 농업의 대폭적인 자유화는 남반구의 소농을 포함하여 모든 농업 분야를 개방하여 수입관세가 매우 낮거나 혹은 거의 없는 대규모 수입 농산물과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농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자본 집약적이고 매우 기계화된 농업이나 심지어 남미의 일부 국가에 있는 대농장과도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전멸할 수 있다. 이들은 소농을 전멸시킨 다음에 식량 가격을 대폭 올릴 것이다. 그리 되면 농민들은 이미 과밀한 도시로 대규모로 이주하여 전체적으로는 재앙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서비스 분야와 지적재산권

두번째는 거대한 영역인 서비스 분야다. 서비스라는 말은 무해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 단어에는 다음과 같은 영역이 포함된다. 분배, 도매, 소매, 프랜차이즈, 건설, 건축, 장식, 시설 관리, 토목 및 기계 공학과 기타 공학, 은행과 보험을 포함한 금융 서비스, 연구개발, 부동산 서비스, 임대, 신용 구매, 구매, 통신, 우편 서비스, 음성 및 화상 통신, 정보기술, 관광과 여행, 호텔과 레스토랑, 도로 건설 및 유지를 포함한 환경 서비스, 쓰레기 수거, 오물 처리, 식수 공급, 조경 및 도시 계획, 연예를 포함한 오락·문화·스포츠 서비스, 도서관, 기록 보관소, 박물관, 출판, 인쇄, 광고, 우주 여행을 포함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송, 초등·중등·고등 및 성인 교육을 포함한 교육 분야, 인간과 동물 보건. 미국의 에너지 관련 기업들은 에너지가 서비스 분야로 분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안건을 제안하기 위해 자체 로비 집단을 구성해 놓고 있다.

이 쟁점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 하나는 건강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 의료 산업은 노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보다 이들이 의료 서비스의 주된 고객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업들은 특히 노인병이나 노인 간호 영역에 진입하기를 원한다. 미국 서비스 산업 연합이 미국 무역대표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보건과 관련한 조항을 인용해 보겠다. 이 조항에는 지금까지 “외국에서 보건 서비스는 주로 공공 부문이 책임을 졌기 때문에 미국의 민간 의료 서비스업자가 외국의 시장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기업들에게 건강은 주로 마케팅의 문제다. 그런데 WTO가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들이 시애틀 회의에서 폐지하려고 하는 장벽에는 보건 전문가의 면허 제한 규정도 있다. 달리 말해 미국 보건 전문가가 다른 나라에서 면허를 취득하는 데서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WTO는 이 규정을 “개인 생활 및 기밀에 대한 유럽의 과잉 규제”라고 여기고 있다. 보건 산업과 다른 서비스 산업의 더욱 일반적인 목표는 “모든 보건 시설의 외국인 소유를 허용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사기업화를 장려하고 친시장적인 규제 개혁을 촉진하는 것이다.” 세번째 안건은 지적재산권(Trips) 협정이다. 여기서 가장 위험한 부분은 이 협정이 유전자 조작 생물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생명에 대한 특허권이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남반구 국가들은 농업 및 지적재산권에서 면제돼 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이들 국가는 더 이상 이러한 면제를 받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남반구의 민중들이 수세대 동안 이용했던 많은 재산들 ― 예를 들면 과일, 화훼, 나뭇잎, 나무, 곡물 ― 에 대한 생명 관련 저작권 침해 사례를 더욱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재산들이 다국적 기업들의 수중에 들어가면 유전자 배열이 밝혀져서 상품으로 바뀌고 그 정보들을 알려준 바로 그 사람들에게 되팔릴 것이다. 지적재산권 협정에서는 이러한 일이 완전히 합법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또한 미국은 사실상 세계 벌목 협정을 원하고 있는데 그 협정이 시행되면 목제 상품의 수입이 늘어나고 산림 보존에 역행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바나나 전쟁

이미 중요한 안건을 이루고 있는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과 더불어 미국, 유럽, 일본은 정도는 다르지만 새로운 안건을 추가하고자 한다. 이번의 일괄 프로그램은 밀레니엄라운드로 불렸다. 이들 국가는 다른 무엇보다도 정부 조달 품목을 추가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지방 또는 중앙 정부가 국내 공급자를 선호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뜻한다. 누구나 인터넷으로 모든 입찰에 참여할 수 있고,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 WTO 협정을 준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계약에 입찰할 수 있다. 정부의 물품 조달이 그 나라 GNP의 15퍼센트 이상이기 때문에 정부의 물품 조달을 WTO의 관할 아래 두는 것은 다국적 기업에게 매우 유리할 것이다. 어떤 정부는 환경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WTO의 분쟁 해결 절차와 환경 관련 국제 협정 사이에 종종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분쟁 해결 절차는 세계 헌법, 세계 정부의 맹아와 같은 것이다. WTO는 이러한 분쟁 해결 절차를 통해 국제법과 사법 체계를 만들고 있다. WTO의 심사위원회는 무역 분쟁에 관한 결정을 밀실에서 내린다. 심사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을 가지며, 항소의 기회가 없다. 최근의 몇몇 결정들은 바나나에 관한 것이었다. WTO는 유럽 국가들에게 “당신들은 아프리카, 카리브해 또는 태평양 국가들과 별도의 협정을 맺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조건으로 중미나 에콰도르에서도 바나나를 수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착취 강도가 가장 높은 기업에 속하는 치키타(Chiquita)를 위해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 사건은 유럽에게 “당신들은 대외정책을 가질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매우 중요한 결정은 호르몬 첨가 쇠고기에 관한 결정이었는데, 이것은 유럽이 캐나다나 미국의 호르몬 첨가 쇠고기나 유제품을 수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과 캐나다는 아무 유럽 제품이나 찍어 관세를 높게 매길 수 있다. 이것은 스코틀랜드산 캐시미어 천, 덴마크산 햄, 프랑스산 치즈나 와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럽이 미국에게 벌금을 내야 한다고 WTO가 결정하면 미국은 유렵 제품을 취사 선택해 관세를 50∼100퍼센트 인상할 수 있다. 바나나 분쟁이 해결된 직후 미국은 이런 절차에 따라 해결되기를 바라는 분쟁을 11건이나 더 상정했다. 신규 소송 11건 외에도 미국은 지금까지 44건을 제소하여, 그 중 22건의 판결이 내려졌다. 그 가운데 20건은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친노동 친환경은 범죄?

미국의 특별무역대표국은 전쟁터 같다. 거의 10년 전에 쓰여진 〈뉴욕 타임스〉의 한 기사에 따르면, 극비의 국가안보국(NSA) ― 1년에 1백억 달러의 예산으로 전 세계를 도청하는 미국 정부 기구 ― 은 소련 감시에서 세계 무역에 관한 정보 수집으로 활동 방향을 수정한 계획의 초안을 마련했다. 반WTO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마크 릿치에게는 “무역 정책이 미국의 국가 안보 사항이 될 때 자국 노동자나 환경을 보호하려는 나라들은 적국이 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범죄자나 스파이가 된다.”고 말했다. WTO의 이런 결정들은 노동자 계급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WTO 회의는 WTO 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해 전혀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다.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한 사항들은 모두 국제노동기구(ILO)로 넘겨졌는데, 이 기구는 지난 60년 동안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었다. 환경,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오존층,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의 거래에 관한 다자간 협정을 이끌어낼 만한 법적 권한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무엇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바뀌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WTO 분쟁 해결 절차는 이러한 협약의 매우 많은 것들을 추진하거나 폐기한다.

이것은 노동자 대중과 환경뿐 아니라 심지어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한다. 왜냐하면 이 조직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들은 1백34개 회원국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지만, 실제로는 미국, 캐나다, 유럽 연합, 일본 ― 4인방이라고 부르는 ― 이 매일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다룰지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전체 회의에 나와서 “우리는 합의에 이르렀다. 당신은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느냐?”하고 묻는다. 이것은 강압적인 전술이다. 남반구가 겪는 문제점은 많은 나라들이, 특히 약소국들이 WTO에 대사조차 파견하지 못하거나 몇몇 나라가 단 한 명의 대사만을 파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밀레니엄라운드가 실제로 출범한다면 인도 같은 매우 큰 나라조차 동시에 진행되는 매우 복잡한 협상을 따라갈 수 없다. 반면에 미국은 직업적인 협상 전문가들을 적어도 2백50명 갖고 있다. 그렇다면 레온 경이 실제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는 의제로 오른 많은 쟁점들을 한 번에 처리하기를 원한다.

나는 특히 유럽에서, 그리고 개별 유럽 국가에서, 음성·화상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 의료 노동자, 전력·가스 노동자, 방송 노동자들과 갈등을 빚을 사람들이 바로 농부들이라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 이것은 심각한 분열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WTO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 ― 그 활동, 과거와 미래에 대한 영향 ― 가 이뤄질 때까지 밀레니엄라운드를 중단시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구의 친구들’은 이런 주장을 널리 확산시키고 있다. 여기에 서명한 단체는 73개 국가의 7백개 조직이다. WTO는 환경에도, 노동자 계급에도, 그리고 민주주의에도 재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중단시키고자 한다.

나는 이 기구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치에 개입한 지 30년이 됐는데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가장 낙관적이다. 사람들은 2∼3년 전만 해도 매우 전문적이고 다루기 힘든 쟁점이었던 WTO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WTO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만 하면 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이해할 뿐 아니라, “이것은 국제적이고 전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나 나의 삶 또는 나의 공동체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금방 깨닫는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는 연대가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70개 국가에서 온 1천5백 명의 사람들이 모인 매우 성공적인 집회를 파리에서 개최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이고, 이 문제가 올해 말까지 갈 것이며, 밀레니엄라운드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금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적 협력의 신호인 동시에, 이미 세계 무역을 통제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다.

나는 여러분들이 받아들일 만한 글을 인용하면서 끝마칠까 한다.

“보호 무역 체제는 보수적인 반면 자유 무역 체제는 파괴적이다. 자유 무역 체제는 낡은 민족체들을 해체하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적대를 극대화시킨다. 한마디로 자유 무역 체제는 사회 혁명을 재촉할 것이다. 이런 혁명적 의미에서만 나는 자유 무역을 옹호한다.”(칼 마르크스, 184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