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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의 반전운동 “우리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8일 ‘다함께’의 주최로 “야수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저항의 목소리 ― 미국과 영국의 반전운동”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김용민 기자가 이 날 토론회의 연사 버지니아 로디노(미국 ‘평화정의연합UFPJ’ 국제연대위원회 공동위원장)와 가이 테일러(영국 ‘저항의 세계화’ 조직 담당 상근자)의 강연과 그 뒤에 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버지니아 로디노

“이라크는 부시의 아킬레스건입니다.”

“2004년 말 치러진 대선에서 진정한 반전 후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의 케리는 계속 동요했고 때로는 부시보다 더 호전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민주당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시가 승리하자 반전운동 내의 다수가 심각한 사기저하를 겪었습니다.

“물론 전체가 똑같은 사기저하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랠프 네이더 지지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반전운동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선이 우리의 승리를 결정짓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비교적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미국 반전운동의 사기 회복은 국제 반전운동에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국제 반전 시위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몇 가지 사건들도 반전운동의 회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컨대 ‘다우닝가(街) 메모’ 파문이나 영국의 반전 의원 조지 갤러웨이가 미국 상원에서 벌인 통쾌한 논쟁은 반전운동의 사기를 북돋고 정당성을 강화했습니다. ‘반전 엄마’ 신디 시핸이 벌인 시위는 군인 가족들 내에서 반전 정서가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난 9월 24일에 워싱턴에서 벌어진 시위는 이러한 과정의 절정이었습니다. 이 시위에 공식 발표로만 무려 30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우리 자신은 시위의 실제 규모가 1백만 명이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반전운동의 회복은 부시의 위기 심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현재 미국 예산의 50퍼센트 이상이 전쟁과 국방에 쓰이고 있습니다. 교육·복지·고용 등에 문제가 나타나면서 전쟁 문제와 다른 사회 쟁점들의 연관성을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따라서 반전운동이 확산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카트리나 재난 이후 우리는 남부 지역 흑인과 청년들 사이에서 반전운동의 새로운 청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의 스캔들과 부패가 있습니다. 부시의 핵심 측근이자 이라크 전쟁 계획 입안자 중 한 명이기도 한 칼 로브가 ‘리크 게이트’에 연루돼 수난을 겪었습니다. 부통령 딕 체니의 참모인 루이스 리비는 결국 사임해야 했습니다. 이 자들은 하나같이 이라크 전쟁의 핵심 참모였던 자들입니다.

“민주당의 코니어 의원은 최근 무려 2백73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부시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다우닝가(街) 메모’를 비롯해 부시 행정부가 저지른 온갖 사기·조작·매수·고문·은폐 시도들이 자세히 폭로돼 있습니다.

“최근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위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탄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존 머서는 유명한 매파 정치인입니다. 그가 의회에 철군 결의안을 제출하자 지배자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이라크 위기의 깊이와 이를 둘러싼 지배자들 사이의 분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반전운동은 크게 두 가지의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올해 11월에 치를 상·하원 중간선거 때 반전 후보를 지지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대규모 동원 계획이 두 차례 있습니다. 우선 내년 3월 18일일 이라크전 발발 3주년을 맞아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입니다.

“그 뒤 4월에는 노동자 조직들이 주도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 AFL-CIO(미국노총)가 이 시위를 준비하고 있고, ‘USLAW(전쟁 반대 미국 노동자들)’ 같은 노동자 반전 단체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네오콘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첫 단계일 뿐입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라크 전쟁은 단순히 석유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 패권 재천명이라는 장기적·거시적 기획의 일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야심만만한 기획은 바로 그 첫 단계에서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부시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 그들을 거꾸러뜨려야 합니다.

“국내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부시는 국제적 지원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한국의 반전운동이 부시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얻는 것을 좌절시킨다면 미국 반전운동도 더욱 자신감을 얻을 것입니다. 네오콘들의 계획은 국제적 프로젝트이고, 이에 맞서는 우리들도 국제적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가이 테일러

“운동 건설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부시의 위기는 블레어의 위기를 낳고 있습니다. 물론 핵심은 이라크 문제입니다.

“이라크 수렁이 낳은 정치 위기 때문에 최근 블레어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일부 후퇴가 있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정부는 연금 개악 시도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습니다.

“블레어 퇴진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국의 주류 정치 구조상 선거에서 참패하지 않는 한 총리 퇴진 같은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습니다. 노동당 내에 블레어를 대신할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한 요인입니다.

“그러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컨대, 최근 블레어 정부는 테러용의자를 영장없이 90일 동안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테러리스트법’)을 통과시키려다 실패했습니다. 시민권에 대한, 마거릿 대처조차 하지 못했던 수준의 광범한 공격 때문에 대중의 불만과 환멸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활동가들의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운동 건설을 지속해야만 합니다. 즉,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반전운동은 영국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운동입니다. 2003년에 2백만 명이 시위를 벌였고, 부시 방문 때는 30만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반전운동의 성장은 다른 운동의 성장을 고무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는 25만 명이 참가했고 시위대의 자신감은 매우 높았습니다. 또, 지난 12월 3일의 기후변화 반대 시위에도 1만 명이나 참가했습니다.

“블레어의 위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급진화하는 대중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블레어나 고든 브라운이 아닌 대안 말입니다. 저는 ‘리스펙트(RESPECT)’가 바로 그러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5년 5월 1일 치러진 총선에서 리스펙트 소속 조지 갤러웨이가 당선했습니다. 지금 리스펙트에는 1명의 국회의원과 10명의 시의원이 있습니다. 리스펙트의 최대 과제는 대중 정당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리스펙트는 올해 5월에 있을 지자체 선거에 최대한 많은 후보를 낼 계획입니다.

“‘야수의 심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동의 전망은 밝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안을 건설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