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훈 씨는 70호 독자편지를 통해 수입개방 반대를 지지하기 힘들다는 나의 주장에 전반적인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수입개방 반대를 지지할 수 없다는 내 주장의 한 근거였던 “무역보복이라는 역효과”(69호)에 대해서는 그는 이견을 제시했다. 무역보복을 근거로 수입개방 반대 요구를 지지할 수 없다는 내 주장이 수입개방 반대가 남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우익들의 주장과 비슷해 보인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그러나 내 주장은 ‘쌀 수입개방 반대가 한국의 다른 산업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우파 주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 주장의 핵심 취지는 수입개방 반대 요구로는 농민이 노동자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미국이나 중국의 정부와 기업주들이 한국에 쌀을 수출하지 못하는 대신 한국의 다른 수출품을 사지 않겠다며 보호무역이나 무역보복 정책을 취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자본가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한국의 노동자들한테 전가할 것이다. 실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중요한 점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무역 정책과 보호무역 정책 둘 모두를 구사하는 지배계급에 맞서 노동자 계급과 피억압 민중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가이다.

자칫 수입개방 반대 요구가 무역보복 조처를 불러 그 산업부문의 자본가들이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을 더 많이 쥐어짜거나 해고하려 한다면 효과적인 연대가 이뤄질까?

한국 농민 생존권 파탄의 원인은 단지 쌀 수입개방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낳는 야만성의 결과다. 쌀 수입개방이 본격화되기 전에도 자본주의는 농업을 멸시했다. 노무현 정부의 추곡수매가 폐지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복합농정 정책,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의 개방농정,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신농업정책은 모두 농업 멸시 정책이었다. 자본주의 자체가 공업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농업을 멸시한다. 이것은 한국적 특수성이 아니다. 지난 50년간 약 4백만 개의 미국 농장이 파산했다. 1987년부터 1992년 사이에 매년 3만 8천5백 개 이상의 자영 농장이 사라지는 동안 미국 신문들은 자살, 배우자 학대, 파산, 식량 배급품을 신청한 농부 등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찼다.

농민 생존권 파탄의 원인은 농사를 지을수록 대다수 농민들이 가난해지고, 과잉 농산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이지만 해마다 3천6백만 명이 기아로 죽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무계획성과 야만성이다. 그리고 그 야만성을 체계적으로 돕는 WTO다.

이 야만에 맞선 우리의 요구가 보호무역주의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핑계나 칼자루로 쓰일지 모를 ‘역효과’를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나는 수입개방 반대라는 요구보다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공동의 적 WTO 반대’나 혹은 ‘국제적인 식품안전’ 등을 내세우는 것이 농민 투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농민이 국가에 맞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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