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영국의 혁명적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인 찰리 킴버가 7월에 런던대학교에서 했던 강연과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인류의 존망이 달린 위기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레닌의 정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핵 보유국들의 노골적인 힘 겨루기가 된 우크라이나 전쟁 ⓒ출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인류 전체를 포함해 모든 중요한 것이 절멸될 엄청난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적 조직의 필요성이 더욱 시급해졌습니다.

절멸을 불러올 세 거인의 출현을 우리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 세 거인은 바로 앞으로도 계속될 팬데믹, 전쟁, 기후 위기입니다.

세 쟁점은 서로 나란히 병존하는 단순한 덧셈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덧셈이 아니라 곱셈입니다. 각 쟁점은 서로를 강화하고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을 봅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자 기후 위기 대응은 거의 방치됐습니다. 전 세계 지배계급은 기후 문제에 대처해 뭐라도 하는 척하는 것마저 포기해 버렸습니다. 갑자기 석탄, 석유, 가스가 대규모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지배계급은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전쟁이 기후 위기를 엄청나게 악화시킨다는 사실도요.

기후 위기는 경제 위기와 경제 혼란을 심화시키고, 상이한 국민국가들 사이의 경쟁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에 무자비한 압력이 무계획적으로 가해지고 있고, 이는 또 다른 종류의 팬데믹(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대표되는)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심화하는 국가간 경쟁과도 맞물려서 서로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국가간 경쟁은 환경 파괴뿐 아니라 전쟁을 낳는 긴장으로도 이어집니다.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은 다가오는 중국과의 충돌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죽음을 낳는 체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하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경종을 울리는 일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650만 명이 팬데믹으로 사망했습니다. 사회주의 사회라면 이 모든 사람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목숨이 우선순위인 사회라면 상당수가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의 삶이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재가동하는 데 종속됐죠. 그리고 이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 재확산이 되풀이되고, 보건의료노동자, 청소 노동자, 배달 노동자, 학교와 병원에 있는 사람들, 나아가 인류 전체가 위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공식 발표된 코로나19 사망자의 수는 650만 명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나 기업주들의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의 추산에 따르면, 초과사망자 수[공식 사인과 관계없이 평소 수준을 넘어서는 사망자의 수]는 1800~2000만 명에 달합니다.

팬데믹하에서 2년 6개월 동안 죽은 사람의 수가 제1차세계대전 개전 이래 4년 동안 죽은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당시보다 인구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수치는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지배자들이 자신의 체제에 타격을 입힐 바에는 차라리 보통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태세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 재앙이 현실로 다가오는데도 이 체제는 화석연료 중독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출처 Paul Lowry(플리커)

이는 기후 위기에 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회담, 회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수치들을 보십시오. 이 수치는 좌파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꾸며낸 공상 같은 게 아닙니다. IPCC는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 IPCC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8년 뒤인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서 2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고, 최대 7억 명이 살던 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7억 명의 난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봅시다. 유럽연합 국가들이나 여타 국가가 “현 상황을 엄청난 비상사태로 인식하며 국경을 열겠다”라고 발표하며 이들을 환대할까요? 꿈도 꾸지 마십시오!

그 결과 수억 명이 무시무시한 상황에 직면할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죽으라”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체제가 그들에게 보낼 메시지일 것입니다.

지배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해 온 방식을 보면 이들이 앞으로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은 또 어떻습니까?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전쟁과 팬데믹이라는 거인이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어” 하며 다투고 있고, 그 옆에는 기후 위기라는 거인이 “이봐, 여기 나도 있다구, 나도 있어” 하고 말하는 모습을요.

광범한 전쟁 위험을 낳을 결정을 한 6월 말 나토 정상회의 ⓒ출처 NATO(플리커)

팬데믹이 최근에 다시 돌아왔다면, 전쟁 문제는 지난 몇 달간 훨씬 첨예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전[6월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결정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 회의에 모인 전쟁광들은 ‘전략 개념’이라고 하는 새로운 전략 문서를 채택했습니다. 그 문서의 22번 항목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핵무장한 대등한 경쟁자와 맞서기 위해 고강도, 다영역 전투 등에 필요한 전방위적 수단을 개별적·집단적으로 확보할 것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제3차세계대전을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둔 세계대전 말입니다.

오랫동안 핵전쟁은 먼 가능성의 일로 여겨졌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1962년에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세계가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만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죠. 그러나 지금처럼 핵전쟁의 가능성이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아마겟돈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전장에서 핵무기가 동원될지도 모를 끔찍한 전망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조만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거대한 전쟁이 다시 벌어지고, 팬데믹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는 저만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름 아닌 친자본주의적인 국제 기구인 유엔의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도 어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갖 것이 한꺼번에 덮치는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 6월 30일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는 연설에서 “간단히 말해, 우리는 역병과 전쟁, 광범한 죽음에 직면해 있다”라고 했죠. 정말로 이 모든 재앙이 다같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들 하는데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과 빈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시간이 다 됐습니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릴 것이라고요? 기후 변화는 개발도상국과 빈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미 망가뜨렸습니다. 전망이 결코 고무적이지 않죠.

개발도상국·빈국에서 기후 재앙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 가뭄으로 가축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케냐 북부 지역 ⓒ출처 Ed Ram/Concern Worldwide

이러다가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말만 하다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정신을 집중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운동 내 유력한 두 가지 정치와 그 한계

지난 몇 달간 떠오른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시스템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스템을 제어하는 자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고 최악의 상황은 피할 것이라는 거죠. 저는 이런 해법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팬데믹하에서 한 짓을 봤기 때문입니다. 또, COP26[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과 같은 회의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COP26은 전 세계가 기후 위기 대책의 실행을 준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COP26은 COP이 걸어 온 실패의 역사에 한 줄을 더 보탰을 뿐입니다.

올해 말 이집트에서 다음 COP 회의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집트라니! COP를 열기에 정말 좋은 곳이지 않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독재 정권이 있는 곳이죠. 그 회의는 ‘그린 워싱’을 위한 회의가 될 것입니다. 그다음 COP 개최국은 아랍에미리트입니다. 거대한 산유국이자 역시 악랄한 독재국가죠. 네, 점점 더 가관인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공상입니다. 이런 기대가 공상인 이유는 이들이 바로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야기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입니다.

런던의 석유 시설을 봉쇄한 멸종반란(XR) 활동가들 ⓒ출처 Extinction Rebellion UK

한편, 또 다른 접근법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직접행동에 나서서 사적 소유를 파괴하며 기업에 맞서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직접행동이나 기업에 맞서는 활동을 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좀 다릅니다.

물론 저는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더 공감을 느낍니다. 저는 의회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기후변화를 막자며 SUV 차량 타이어에 구멍을 내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동질감을 느낍니다.

제가 이 주제로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계기 하나는 로저 할람이 멸종반란(XR)에 보낸 공개 서한이었습니다. 멸종반란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로저 할람은 ‘영국을 단열시켜라’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 온 사람입니다. 최근 ‘저스트 스탑 오일’ 운동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죠. 이 운동들이 단호하고 저항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서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는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가족에게 도전하고 해고를 당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체포될 때까지 저항하고, 이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저항에 나서야 할 이유는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괴로운 죄책감과 수치심, 즉 저항할 수 있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는 자각에서 오는 자기 모멸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자, 저는 로저 할람과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더 자세히 얘기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나중에 다루겠지만 할람은 매우 문제적인 주장도 합니다. 어쨌든 그의 어조는 매우 단호합니다. 잘 들어 보면 그의 말에는 어떤 종교적인 간증과 비슷한 느낌이 분명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접하신 종교에 따라 다르게 느끼실 수 있지만 저는 곧장 루가복음서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서로 다투게 하려고 왔다.” 여러분도 할람의 말에서 이런 구절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람의 주장은 마치 종교 지도자의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또, 테러리즘에 깔려 있는 사상을 암묵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혁명적인 요소도 있죠.

좀 더 체계화된 형태의 주장을 원한다면 안드레아스 말름의 책을 읽어 보십시오. 그의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은 분명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죠. 그리고 말름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말름은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언제 우리는 지구를 갉아먹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우리 손으로 파괴하기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의회를 통한 방식이나 현재 상황에 환멸을 표하며 직접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의회에 기대를 걸자는 주장보다 이런 직접행동을 촉구하는 주장에 더 많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 방법 모두, 두 가지 이유에서 실패하게 된다고 봅니다.

첫째,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로저 할람과 안드레아스 말름, 그리고 현존 체제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현존 국가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함으로써 변화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죠.

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로저 할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판사들이 우리에게 수긍합니다. 이 점을 아셔야 해요. 만약 8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연행되면 판사들은 이들을 모조리 교도소에 수감시킬 수는 없다고 여기고 정부에게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요?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솔직히 저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전체 인구의 3.5퍼센트만 행동에 나서면 정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라크 전쟁 때 일어난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영국 인구의 3.5퍼센트, 즉 200만 명이 전쟁 반대 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당시 토니 블레어 정부는 우리를 무시했죠. 시위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이 운동을 지지한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블레어 정부는 민주주의를 무시했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굽히게 만들 유일한 것은 그들에게 대항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국가를 타도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단지 의회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만 국가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저 할람도 이를 변혁 성취의 방법으로 여기고, 안드레아스 말름도 결국 국가를 통해 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회에 충분한 압력을 가하면 그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물론 저도 의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저도 의회에 압력을 가해서 몇몇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충분한 수준의 행동으로 압박한다면 무상 대중교통 같은 개혁을 얻어 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단지 작은 변화들이 아니라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거대한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변화를 이끌어 낼 주체에 관한 것입니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을까요?

체제 내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든 소수의 직접행동만으로 변화를 이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든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 특히 노동계급 스스로가 싸워서 변화를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 구성원 개개인이 전부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힘은 의회나 소수의 직접행동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노동계급 대중 전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일손을 멈춰서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 생산에 타격을 줄 때 발휘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는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으로 천대받고 있죠. 그러나 동시에 힘이 있습니다. 협업하는 노동계급으로서 갖는 힘이 있습니다. 지난주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 그 힘이 느껴지지 않던가요? 처음으로, 또 아주 오랜만에 지배계급의 일방적인 공세가 끝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편이 돌아왔다!’ 이것이 제가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생계비 위기에 맞서 파업에 나선 영국 철도 노동자들 ⓒ출처 Guy Smallman/SWP

사실 40만 명 수준의 작은 파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다른 분들처럼 열광했습니다. 이번 파업은 작은 규모였지만 400만 명이 파업에 나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때는 정말로 우리 편이 반격할 차례가 왔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이런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파업에 나서면 누가 이 사회를 움직이는지가 순식간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철도가 멈췄습니다. 경영자, 최고 재무 관리자, 마케팅 관리자 같은 자들은 철도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물론 철도를 움직이는 일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쨌든 철도는 멈췄죠.

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아무리 많은 최고경영자나 재무 관리자가 이사회에 있어도 동네에 쓰레기가 쌓일 것입니다. 우리 편에게 실제로 힘이 있는 것이죠.

사실 이는 그 힘을 작은 규모로 보여 주는 사례일 뿐입니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임금과 물가 폭등이라는 사회적 비상사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또, 이는 더 커다란 문제에도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처할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저항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 변화는 정부가 위로부터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행동에 나서서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레닌의 정치를 살펴봐야 합니다.

레닌주의의 요점과 오늘날의 필요성

레닌의 정치가 발전한 배경을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레닌은 우리가 처한 것과 똑같은 조건, 즉 극심한 위기가 노동계급에 찾아온 시기에 자신의 정치를 발전시켰습니다.

레닌과 볼셰비키의 정치가 완전히 성숙한 시점은 제1차세계대전 때였습니다. 이 타이밍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볼셰비키는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1차세계대전 때 혁명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당시에 전 세계적 위기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그 위기는 당시까지 인류가 직면한 것 중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의 ‘고기 분쇄기’에 휘말려 들어가 비참하게 죽어 나갔죠. 서로를 파괴하려는 여러 강대국에 의해 수많은 사람의 삶이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가장 필요한 정치는 무엇이었을까요?

레닌의 정치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매우 분명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① 자본주의 국가

하나는 바로 국가, 즉 앞서 이야기한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태도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화석연료 산업을 보호하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퍼센트를 차지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코로나바이러스 퇴치보다 이윤을 중시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레닌은 우리가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해서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했습니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봅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제 뇌리 박힌 문구가 있습니다. “국가는 화해할 수 없는 계급 적대의 산물이자 표현이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과 화해할 수 없을 때 생겨난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다.”

본질적으로 국가는 “무장집단, 감옥, 군대, 경찰과 같은 조직들에 기반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그것이 국가의 본질입니다. 물론 다른 많은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로 제시됩니다만, 지금 제가 하는 얘기는 국민보건서비스(NHS) 같은 것들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출되지 않는 경찰, 판사, 정보기관 관리 같은 자들이 국가기구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을 계속해서 괴롭히는 국가의 근본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면 되는 거 아니야?’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의 시리자[2015년에 집권한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가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당시 지배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너희가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지. 그러나 우리는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신경쓰지 않아. 우린 계속해서 긴축 정책을 펼거야.’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그렇게 했죠.

[2019년까지 노동당 대표였던 당내 좌파의 지도자] 코빈을 보십시오! 안보기관들은 코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글을 34건이나 발표했습니다. 다른 글은 다 빼고, 군 장성이나 정보기관 관리 같은 자들이 있는 기관에서 나온 글만 센 것입니다. 이는 경고였습니다. 코빈 스스로 “이것은 나에 대한 경고”라고 했습니다. 코빈은 정부에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지배자들은 코빈의 집권을 자신들에 대한 반란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레닌은 국가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②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

둘째, 레닌주의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에도 분명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조합 투쟁뿐 아니라 인종차별이나 여성 차별 같은 문제들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이상이 노동조합 관료여서는 안 됩니다. 제 친한 친구 몇 명은 노동조합 관료인데요, 레닌이 노동조합 관료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죠. “[사회주의자의 이상은] 노동조합 사무총장이 아니라 민중의 호민관이어야 한다. 그는 폭정과 차별이 어디서 나타나든, 어떤 계층이나 계급의 사람들이 폭정과 차별에 시달리든 간에 그것에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현재 노동조합 투쟁으로 고무돼 있을 때조차, 우리는 차별에 맞선 투쟁을 지속해야 하고, 그런 투쟁(인종차별이나 트렌스젠더 차별에 맞선 투쟁, 낙태권을 위한 투쟁 등)을 노동조합 투쟁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파업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런 것들은 잊어도 괜찮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안 되죠.

차별에 맞선 투쟁은 일터에서의 투쟁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로 분열된 일터에서는 노동계급이 강력한 저항을 결코 벌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투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이런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한편, 우리는 국제주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에게,” “영국 우선”과 같은 구호는 우리의 구호가 아닙니다. 우리의 형제·자매, 우리의 투쟁은 하르툼[수단의 수도]과 남수단의 거리, 스리랑카, 에콰도르의 거리에 있습니다. 총리실에 있는 패거리나 기업주들의 연합이 아니라 그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같은 영토에서 태어났거나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배자들과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별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는 전 세계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레닌주의의 핵심 요소 하나는 투쟁하는 다른 사람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아, 공동전선? 그건 쉬운 선택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17년 8월 말 러시아의 혁명적 시기에 코르닐로프가(어떤 면에서 그는 최초의 악랄한 파시스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공동전선은 이에 맞선 투쟁에 핵심적이었습니다. 레닌은 임시정부가 자유주의 정부이며 대중의 기대를 저버릴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볼셰비키는 총을 들고 자유주의 정부와 함께 극우 코르닐로프에 맞섰습니다. 그리고 혁명 과정을 지속했습니다. 이런 경험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는 혁명적 전통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필요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혁명적 주장을 제시해야 합니다.

③ 혁명적 당

마지막으로, 레닌주의의 또 다른 핵심 요소인 혁명적 당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레닌이 제시한 혁명적 당 개념은 새롭고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레닌 이전에 사회주의 운동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 운동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담당하는 노동조합과, 선거에 출마해서 의회 정치를 담당하는 사회주의 정당들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그 운동 안에는 전쟁에 관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그저 개별적으로 거부하자고 주장하는 평화주의 세력이나 체제 내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페미니즘 운동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노동조합은 대부분 전쟁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죠. 전쟁이 일어나면 총파업을 호소하겠다고 한 사회주의 정당들도 거의 다 막상 전쟁이 나자 태도를 굽히고 자국 지배계급을 지지했습니다. 영국 노동당은 영국 군대를 지지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독일 군대를 지지했습니다.

평화주의 운동은 순식간에 밀려온 군국주의 물결에 완전히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도 분열했습니다. 일부는 실비아 팽크허스트처럼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돼 전쟁에 맞선 노동자 혁명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팽크허스트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은 남성들에게 흰색 깃털을 나눠주면서 그들더러 전선에 나가라고 촉구했습니다. 순식간에 운동들이 붕괴했습니다.

반면, 레닌은 모든 투쟁을 하나로 묶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주장했습니다. 투쟁을 각각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투쟁들, 곧 전쟁 반대 투쟁, 일터에서의 투쟁, 의회에서의 투쟁,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서로 연결하는 조직이었습니다. 이 모든 투쟁은 그 투쟁이 일어난 원인인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 서로 연결돼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닌은 혁명의 필요성과 그 투쟁들을 하나로 묶는 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저는 레닌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정치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을 이끌어 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 혁명이 지나고 등장한, 스탈린 등이 통치한 사회를 모종의 사회주의 사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혁명을 실제로 이끈 사람들의 시체 위에서 일어난 반혁명이었습니다. 이것은 혁명 성과를 모두 무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럼에도 혁명 이후 짧은 기간에 보통 사람들은 역사상 전례가 없던 방식으로 사회를 운영할 가능성을 보여 줬습니다. 대중이 일터를 통제했고, 그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여성의 평등권, 동성애자 권리, 민족 자결권이 성취됐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잠재력은 혁명을 포위한 강대국들의 개입,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극심하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린 볼셰비키의 지도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볼셰비키의 정책은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레닌의 정치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바는 간단합니다. 지금은 아주 긴급한 상황이기에 레닌의 정당 같은 정당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단지 의회에서의 투쟁, 노동조합 투쟁, 기후변화를 둘러싼 투쟁, 인종차별에 맞서는 투쟁 등을 벌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이를 연결시킬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정당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모든 투쟁은 필요합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우리도 이 모든 투쟁에 동참합니다. 저는 이 투쟁들의 중요성을 간과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의 전체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바로 자본주의라는 문제에서 비롯한 이 모든 증상이 서로 얽혀 있는 상황 말입니다.

우리는 개혁주의 정당의 방식, 즉 선거와 의회 진출로는 필요한 변화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정당들의 실패를 거듭 봐 왔습니다.

한편, 직접행동에 나서는 소수가 아무리 대담하고 도전적이고, 경찰과 정부 당국에 우리가 매우 공감할 만한 적개심을 느낀다고 해도, 소수의 직접행동만으로는 필요한 변화를 성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부터 해방이 선사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행동에 나설 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때 볼셰비키가 발휘했던 것과 같은 대담함이 필요합니다. 절멸의 위기가 임박했다면 우리에게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그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상당 규모의 혁명적 조직을 미리 갖춰 놓아야 합니다.

볼셰비키의 특별한 점은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반전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제1차세계대전을 끝낸 것은 평화협정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혁명과 그 혁명이 촉발한 독일 혁명이 제1차세계대전을 끝냈습니다. 그 혁명들은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반전 운동이었습니다.

기후변화, 전쟁, 재발하는 팬데믹, 인종차별, 성소수자 혐오, 이 풍요로운 세계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매일 수만 명이 허무하게 죽는 현실, 핵 전쟁의 위험에 맞서 싸우려면, 우리에게는 더 규모 있는 혁명적 조직이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저항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업주와 국가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하나의 조직을 이뤄야 합니다. 저들이 조직돼 있기 때문에 우리도 조직돼야 합니다.

또, 우리는 행동의 필요성을 주장할 뿐 아니라 혁명적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회주의노동자당에 가입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토론 정리

발언과 질문을 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혁명적 전환이 벌어지고 있을 때 그것이 잘못된 길로 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러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죠.

우선, 혁명적 조직의 내부는 철저하게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책임성이 있어야 하고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저는 사회주의노동자당 내의 민주주의가 꽤나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그 당의 중앙위원이고, 대부분의 단체에서 ‘사무총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몇 년째 이 직책을 맡았지만, 그러려면 매년 선거를 거쳐야 했죠.

선거 전에 저를 뽑을지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힐지 3개월간 토론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언제든 소환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적으로 제시되는 의견들에 엄격한 개방성을 견지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원인은 볼셰비키 정당의 내부에 있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17년 혁명은 놀라운 것들을 성취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1919년과 1923년에 독일 혁명으로 확산되거나(이 혁명은 성공할 뻔했습니다), 1920~1921년에 이탈리아(당시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벌어졌죠)로 뻗어나갔다면, 당시 러시아에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괜찮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혁명은 패배했습니다. 그곳에는 볼셰비키와 같은 조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를 분쇄하려는 외국 자본주의 군대들의 어마어마한 개입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서 온갖 물자 부족 사태가 만연했고 새로운 지배계급[국가 관료]이 부상했습니다. 그들은 일국에서 [계급 없는 사회]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국제]사회주의 사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이 새로운 관료 체제의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

볼셰비키와 같은 혁명적 조직이 세계 다른 지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혁명이 변질된 진정한 이유입니다.

물론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누군가 전횡을 시도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아래로부터의 힘을 발휘해 지도자들을 통제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앞서 말한 1920년대 중반 러시아의 조건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어떻게 해야 더 광범한 조직을 만들 수 있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혁명적 당은 완성된 상태로 주어지는 기성품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또, 저는 우리가 단순히 오늘 밤 100명이 가입하고 그 다음 주에 2,000명이 가입하고 그 다음 주에 1,000명이 가입해 결국에는 큰 조직이 되는 방식으로 혁명적 당이 필요한 규모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의 규모는 거기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에 나름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습니다. 저희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 안에서 우리가 이뤄 낸 일들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또,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 기후 운동, 노동계급 내의 모든 저항과 연대 사례들의 일부가 된 것에 긍지를 느낍니다. 저희는 이런 운동들에서 지금껏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해 온 일들에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동맹휴업에서 배워야 합니다. 멸종반란 운동에서도 배워야 합니다. 이집트 혁명의 경험에서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정답을 갖고 있지 않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그 답을 가져와 줘야 합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배울 것입니다.

영국에서 혁명적 조직이 성장하려면 코빈을 지지하면서 노동당에 가입했거나, 한때 노동당에 있었지만 새로운 정치적 고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환영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맞서 싸우고 싶다면,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권합니다. 우리는 그런 싸움에서 무엇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두고 주장하고 토론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문제에서 겸손한 자세를 취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우리가 성취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우리에게는 투사들의 공동체,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한 분은 레닌주의가 인종차별과 성차별 문제를 계급투쟁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는데요, 저는 앞에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노동조합 운동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매달리는 조직이 아닙니다.

물론 노동조합 운동은 중요합니다. 특히, 일터에서의 노동자 조직은 매우 핵심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배계급의 통치 방법, 즉 차별을 이용해 트랜스젠더나 성소수자, 흑인과 유색인종, 여성을 공격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에 도전하지 않고, 그저 경제 투쟁만 벌이면서 이런 이간질 통한 각개격파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혁명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혁명을 위해서는 이 모든 투쟁을 연결하고, 모두를 거기에 연루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논점으로 발언을 마치고자 합니다.

오늘 낮에 저는 이집트 혁명과 수단 혁명에 관한 흥미진진한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이집트 혁명을 겪은 호삼은 이집트를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당국에 의해 수감될 처지였습니다. 그리고 무잔 씨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수단의 하르툼 거리에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 동지 모두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호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작았다. 우리는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무잔은 수단에서 2019년 기회를 놓친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단에서 혁명 과정이 시작됐을 때 혁명적 조직의 건설을 시작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조직은 수백 또는 수천 명 규모의 조직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사태 전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수단에서는 혁명적 조직 건설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제 말을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투쟁에 참가하는 것뿐 아니라 투쟁의 과정 초기에 지금보다 큰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그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려고 합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자로 이번 행사에 함께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건강이 매우 나빠져서 오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마이크의 쾌차를 빕니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마치 재앙의 시대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추상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평등권 운동, 반전 운동을 겪어 봤다면 결코 희망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사회적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보통 사람들의 용기입니다. 11년 전, 빌 모이어스는 저를 그의 TV 쇼에 출연시켜 미국의 마지막 사회주의자로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많은 청년들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미국의 얘기가 아닙니다. 청년들은 물론이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체제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체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체제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 체제는 모두의 삶을 멸종으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에 맞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더 큰 혁명적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에 가입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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