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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에서 지중해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다른 갈등들도 달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회로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 애쓰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막대한 무기를 지원해 러시아에 출혈을 강제하는 대리전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미국은 러시아 1년치 군비 지출의 80퍼센트에 이르는 54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고, 그 지원은 계속 늘고 있다.

서방의 무기 공급은 전선을 교착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보다 재래식 전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한데도 러시아가 전황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밖에서 서방의 러시아 억지 노력은 서방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직접적 군비 증강은 그 한 수단이다. 이미 세계 최강 군사 동맹인 나토의 회원국들이 앞다퉈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올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세계 군비 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겼다고 발표했는데, 보고서는 유럽의 군비 증강이 계속될 전망임을 특히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내총생산(GDP)의 2퍼센트 이상 군비를 지출하는 나토 회원국의 숫자는 올해 9개로 늘었다. 2024년이 되면 19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개중 눈에 띄는 군비 증강 사례는 독일과 폴란드다.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정은 1000억 유로(약 135조 원)를 특별군사비로 책정했다.

최근 한국과 20조 원 규모의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폴란드는 GDP의 3퍼센트를 목표로 군비 증강 중인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무기 지원과 친러 국가 벨라루스에 대한 억지력 확보가 그 명분이다.

군사 동맹 자체도 확대되고 있다. 올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승인됐다. 발트해에서 동지중해에 이르기까지 나토 회원국들과 러시아가 면한 국경의 길이가 곱절 가까이 늘었다.

그런 과정에서 이 지역 곳곳에서 갈등들이 새로운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발트해

발트해 연안은 그 직접적 사례다. 오랫동안 서방 강대국들은 발트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억지하려 애써 왔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발트3국’)를 재빨리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발트해의 주요 국가인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발트해에서 위험한 충돌 가능성이 대두됐다.

6월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와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잇는 철길을 봉쇄했다. 이는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필요함을 보여 주려는 조처였던 동시에, 발트해 연안에 나토의 군사력이 더 많이 투입되도록 할 조처였다.

러시아에 인접한 발트3국의 육상 국경은 러시아와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그리고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에 둘러싸여 있다. 이제 발트해 북쪽으로 나토 동맹이 확대되면서 발트3국은 자신들의 숨통이 더 트이기를 기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나토는 발트3국에 신속대응군을 급파했다.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철도 봉쇄에 대응해 러시아가 핵무기를 들먹이며 위협하자, 나토는 신속대응군을 수천 명 증파했다.

갈등이 정도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양측의 압력 때문에(발트3국과 러시아가 직접 교전하면 나토는 회원국 상호 방위 의무 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교전하게 된다), 리투아니아는 한 달 만에 봉쇄를 해제했다.

하지만 갈등의 씨앗은 여전하다.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에 북‍·‍서유럽 전역을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 ‘이스칸데르’를 배치해 뒀다. 서유럽 강대국들은 물론이고,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맞댄 발트3국과 폴란드 역시 이를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여긴다.

발칸반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면서 서방은 러시아 포위망을 확충하기를 바란다. 발칸반도에서 이는 겹겹이 얽힌 민족 갈등에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

최근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는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의 갈등에 개입하며 “발칸반도 서부 국가들이 모두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세르비아를 서방 동맹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랫동안 발칸반도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다투는 무대였다. 냉전 종식 후 서방은 나토 동진(東進)의 일환으로 이곳에 개입했다.

1990년대에 발칸반도의 옛 유고슬라비아 영향권에서 민족 분쟁이 벌어지자, 나토는 여기에 재빨리 개입했다. 나토는 코소보를 지원한다며 세르비아를 맹폭격했고(관련 기사: 본지 53호 ‘1990년대 발칸 전쟁: 피를 부른 나토의 ‘인도주의적 개입’’), 지금도 이 지역에 나토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하지만 나토의 개입은 당시에도 문제를 해결하는커녕 심화시켰고, 러시아는 서방의 위협을 절감하게 됐다.

지금 서유럽 강대국들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발칸반도 바깥으로 밀어내고 흑해‍·‍카스피해로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얽힌 이 지역의 민족 갈등을 유혈낭자한 전면전으로 키울 수 있다.(관련 기사: 본지 427호 ‘나토가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 갈등에 개입할 준비를 하다’)

동지중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근 지역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지역 강국들 사이의 기존 긴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7월 중순,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의 전투기들이 에게해에서 서로 견제하며 비행 훈련을 벌였다.

양국은 키프로스 해역에 매장된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여러 해 동안 으르렁댔다. 그리스는 키프로스‍·‍이스라엘‍·‍이탈리아‍·‍이집트 등과 이 해역의 제해권을 갈라 먹고자 했다. 튀르키예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데, 튀르키예가 동지중해를 주도하는 강대국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반면 튀르키예는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해 북(北)키프로스를 ‘독립’시킨 이래 이 해역에서 자기 이해관계가 침해받는 것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왔다.

튀르키예‍·‍그리스 모두 나토 회원국이고, 나토의 맹주인 미국은 이 둘의 갈등이 적당히 봉합되기를 바란다. 대(對)러시아 포위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태는 미국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갔는데, 이는 천연가스가 제국주의 갈등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과 연관 있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서유럽 강대국들은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원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래서 동지중해의 천연가스, 그리고 이 해역을 지나는 가스관에 대한 통제권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튀르키예는 유럽행 천연가스의 통제권을 두고 러시아와 갈등하는 사이지만(2020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에서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서로 다른 편을 들었다), 서유럽에 대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러시아도 가까이해 왔다.

프랑스 같은 서유럽 강대국은 이를 불편히 여겨 튀르키예보다는 그리스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연합의 주도자들은, 튀르키예가 정도 이상으로 엇나가 서유럽의 불안정을 키우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유럽연합은 튀르키예가 중동과 서유럽 사이의 ‘방벽’ 구실을 하기도 바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이런 갈등들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더 커지고 있다.

강대국들은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데에 유리한 관점으로만 이런 갈등들을 대할 것이고, 따라서 갈등을 완화시키기는커녕 키우기 십상이다. 특히 에너지 위기 등 중첩된 위기가 날로 첨예해지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우크라이나를 넘어 곳곳을 더 위험하게 만들 책동 일체에 반대할 이유가 점점 늘고 있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갈등 커지는 곳에 무기 파는 ‘죽음의 상인’ 한국”을 읽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