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사기업화 - 민영화에서 공공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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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사기업화 - 민영화에서 공공성으로
오건호
1. ‘공기업’의 문제와 ‘민영화’의 문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세력은 시장을 믿는다. 이들은 공기업이 경쟁에 기반하지 않아 방만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시장주의자들을 향해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계급이라고 아무리 비판을 해도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은 시장에 대해 소신을 가진 ‘확신범’이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 의제’는 공기업의 문제와 민영화의 문제를 함께 담고 있다. 시장주의는 전자를 강조하고 민영화 반대론은 후자를 강조한다. 이 둘이 계속 엇갈리면 논점은 형성되지 않는다. 논점이 형성되지 않으면 덕을 보는 것은 지배담론
결국 우리는 공기업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민전선을 제대로 구축한 적이 없다. 물론 민영화 저지 전선을 형성시키지 못한 민중 진영의 힘이 약해서이다. 그래도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왜 이 저지 전선을 형성하기가 그토록 힘이 든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시장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공기업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2. 기존 공기업의 문제: 취약한 공공성
전력 노동자, 통신 노동자, 가스 노동자는 항변한다. 우리는 비효율적이지 않다고. 매년 상당 규모의 흑자를 낳고 있다고. 우리 노동자의 이야기가 옳다. 정부는 비효율과 관료주의를 야기하였던 정치적 통제, 낙하산 인사 등의 정공유착
우리 나라 공기업이 지닌 문제는 이 공공성 의제를 확보하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통신산업 민영화를 반대하면서 통신의 공공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동통신 시장의 무한경쟁에 사력을 다하는 한국통신 016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일회용처럼 버려지는 단말기와 서민 가계를 쥐어짜는 이동통신 요금을 비판하는 참여연대 앞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산림을 파괴하고 경관을 해치는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벌여 왔다. 대신에 지중선을 깔라는 것이다. 설비비가 훨씬 많이 드는 지중선은 한국전력에게 큰 부담이다. 그렇게 한국전력은 산림을 파헤쳐 왔다. 시민사회단체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반대를 외칠 때, 버젓이 지하철 광고판에는 ‘원자력은 안전합니다’를 설득하는 전력 노동자의 미소 띤 얼굴이 실려 있었다.
공기업의 문제를 인정하자. 그것은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공공성의 문제였다. 공공적 조직은 본래의 공공성 수행을 위하여 고비용 사업이라도 수행해야 하고, 불가피하면 적자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방만이나 비효율이 아니라 공공적 역할 수행이다. 그런데 시장주의의 민영화 공세에 맞서 ‘우리는 비효율적이지 않다’를 외칠 수 있을지언정 ‘우리는 공공적이었다’를 소리 높여 외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다.
3. 공공성의 정립: 공기업이어야 하는 이유
민영화 반대에서 공기업 문제에 대한 민중 진영의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 우리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공공성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 다시 말하여 ‘공공부문론’을 정립해야 한다. 공기업 민영화 반대 투쟁은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왜 공기업이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왜 공기업을 필요로 하는가? 그 방향의 시안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민영화 대상 공기업들은 네트워크 산업으로서 사회적 공공성을 지니며, 이것은 21세기 들어 훨씬 강화되고 있다. 교통·통신·전력·가스·수도 등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커졌다. 이제 전력·통신·가스·철도 등은 국민 모두가 일상 생활에서 끊이지 않고 공급받아야 하는 혈액과 같은 공공 사회재가 되었다. 이러한 공공 서비스는 지역, 계층을 넘어서서 누구에게나 언제나 공급되어야 하는 ‘집합적 생활수단’이다. 이러한 사회적 공공재는 ‘공적으로’ 생산·사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다음 네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시설의 보편성, 즉, 공공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설의 지역 차별을 방지하여, 벽지 주민에게도 공공 서비스가 균등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둘째, 요금의 공공화 즉,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도록 공공적 요금 체계가 수립되어,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이용권이 제약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계층 차이를 반영한 사회적 요금 체계가 요구된다. 이로 인한 경영 적자는 나태와 부실로 인한 적자가 아니라 사회 연대와 공평을 위해 치르는 ‘사회적 적자’로서, 전체 사회가 보상할 의무를 지닌다. 셋째, 생산력의 사회적 공유 즉, 대규모 기간산업의 생산력 성과가 소수 민간자본에게 독점되지 않고 전체 국민에게 향유되어야 한다. 넷째, 공기업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즉, 국민의 공공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는 그 생산자로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민영화가 강행되면 이 네 가지가 모두 깨어진다. 첫째, 민간기업 하에서 공공 서비스조차 수익성 원리에 따라 생산 공급되어 지역적 차별이 발생한다. 둘째,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요금 체계가 무시된다. 돈이 없으면 공공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셋째, 기간산업이 민간독점기업으로 전환되어 막대한 사회적 생산력이 독점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소수 자본 세력에게 전유된다. 넷째, 최대 수익성 원리에 의하여 무한 노동 착취가 감행된다. 노동조합이 저항하는 만큼만 노동권이 인정될 뿐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응답의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우량 흑자 기업이다’,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 ‘헐값 매각이다’, ‘국부 유출이다’ 등 모두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답의 핵심은 ‘공공성을 지닌 공기업’이라는 점에 있다.
4. 민영화 반대 투쟁을 위하여
그렇다면 민영화 반대 투쟁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첫째, 공기업의 공공성에 대한 자기 반성적 정립이 필요하다. 각 사업장 단위로 공기업 생산물이 지니는 사회적 공공성을 적극 발견하고 이를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 그 공공성을 무시해 왔다면 자기 쇄신의 징표로 반공공성 백서를 마련하여 밝히고, 이후 공기업 운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공기업 민영화 과정의 장·단기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선전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민영화 정책, 각 공기업의 경영 분석, 산업 분석을 요하는 작업이다. 현재 민중 진영의 민영화 반대 투쟁도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중적 입장에서 각 산업을 다루는 정책 역량의 부족이 심각한 지경이다.
셋째, 공기업을 위한 대안적인 상이 모색되어야 한다. 민영화 반대가 현재와 같은 국가 독점자본주의적 공기업을 목표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집권 여당과 예산 당국에 독점되어 있는 공기업 경영 구조를 공적인 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