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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사회민주주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 비판하기

김누리 교수의 두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2020),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2021)는 꾸준히 잘 팔리는 인기 사회과학 도서다.

이 책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교육, 공식 정치, 통일 문제 등을 두루 다룬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는 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이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라며 호되게 비판한다.

특히 불평등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주장들을 적극 반박한다. 시장 경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하고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진정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런 사회 구조를 바꾸려면 대중 운동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한국의 우파는 물론 민주당도 왼쪽에서 선명하게 비판한다. “민주정부 하에서도 한국 사회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보면 사실상 거의 개혁된 것이 없다.”

유럽 정치의 스펙트럼을 기준으로 볼 때 “자유시장경제를 확고히 지지하는 민주당은 절대 진보가 아니”므로 단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고 그 너머의 사회 구조 문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독 신화

그런데 그런 비판의 결론으로서, 독일문학 전공자인 김누리 교수의 지향점은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을 모델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부의 집권이다. 특히, 68혁명의 여파로 집권했던 사민당 빌리 브란트 정부를 강조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저자가, 독일을 이상적 모델로 삼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독일은 최상위 1퍼센트가 전체 부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독일은 지난 수년간 극우·파시스트 정당이 성장하는 등 정치적 위기도 깊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조합 상층 간부층과 긴밀한 연계를 맺는 좌파 정당이 의회나 정부 권력을 장악(집권)해 사회 개혁을 이룬다는 정치 사상이자 운동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온갖 폐해를 낳는 시장 경제를 국가가 인수(국유화)하거나 여러 제도·정책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작동의 필요 조건이며, 이를 중심으로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을 화해·협력시킬 수 있다고 본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 등 독일의 노사 협력 제도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독일은] 노사 갈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리 앞서서 임금을 낮추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 [노동자들이 먼저] 위기에 대처[한다.]

사실 독일(서독)이 노사 대타협 제도들을 통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이룩했다는 이야기는 독일에 관한 흔한 신화다.

독일 사민당은 1966년 (전후 독일 공식 정치를 지배한 보수 정당인) 기민당과의 ‘대연정’에 들어갔다.

1969년 빌리 브란트가 (자유민주당과 연정으로) 전후 최초 사민당 총리가 됐을 때는 아직 세계적인 전후 호황기였고, 서독 경제가 비교적 튼튼했다. 서독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은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축에 들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불황이 본격화되자, 독일 사민당 정부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1975년 의료·교통·교육 등에서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했다.

대중의 불만과 정부 내 갈등의 증폭으로 1982년 연립 정부는 무너졌고 사민당은 물러나야 했다. 그해 독일 실업자는 170만 명에 달했는데, 1953년 이후 최고치였다.

1969년 68혁명의 들끓는 분위기를 전후로 집권했던 빌리 브란트 정부의 진정한 구실은 노동 운동에 대한 통제와 사회 안정화에 있었다. 사민당은 노동조합 지도층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요구하는 임금 양보 정책에 노조가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투쟁을 억제하게끔 유도할 수 있었다.

하르츠 개혁

1998년에도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실업률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임금을 대폭 억제하는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다. 제조업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이때도 노조 지도자들은 정부의 국가·기업 경쟁력 논리를 수용하며 투쟁을 억제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동안 독일의 실질임금 상승폭은 유로존 평균보다도 한참 낮았다. 오늘날 독일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20퍼센트)은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그중 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2019년에 독일은 서유럽 국가 중 오스트리아(20퍼센트) 다음으로 성별 임금 격차가 컸다.

이후에도 사민당은 앙겔라 메르켈 임기 거의 내내 우파와의 대연정에 참여하면서 노동계급 대중에게 지지를 많이 잃었고, 왼쪽으로의 분열(좌파당)도 일어났다.

우파 정당들의 위기로 반사이익을 얻어 지난해 집권한 올라프 숄츠의 사민당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대대적인 군사력 확충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결국 김누리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독일에서는 이미 그 한계가 수차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누리 교수의 책이 꾸준히 팔리는 것은 진보적 청중이 적잖게 존재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이다’ 비판과 ‘고구마’ 대안의 결합은 그 급진화의 수준과 모순을 보여 준다.

이는 본지 독자들이 진보적 청중을 더 일관되고 더 급진적인 대안으로 인내심 있게 설득해야 할 과제를 새삼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