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9620원, 월 환산(월 209시간 노동 기준) 201만 580원으로 확정 고시됐다. 최저임금 1만 원 요구가 제기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그 수준에 못 미친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5퍼센트로, 최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삭감되는 것이다.

물가 앙등으로 노동계급 대중의 삶이 위협을 받고 있다. 고통에 내몰린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은 절실한 필요다 ⓒ이미진

얼마 전 발표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인 6.3퍼센트였다.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고, 전기·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이 두 자릿수나 뛰었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가계 소비에서 필수 생활비(식료품, 주거, 수도광열, 보건 등)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런데 바로 이 필수 생활비 부분의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이런 물가 앙등은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의 생계비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가뜩이나 허리띠를 조여 온 저소득층에게는 더한층 고통스럽다.

더욱이 세 차례 연속 금리 인상으로 가계 부채 부담도 치솟고 있다. 가계 빚에 대한 이자 부담은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사이에) 24조 원 가까이 늘었다.

게다가 팬데믹과 기후 위기로 불평등과 빈곤은 더 가중되고 있다. 저소득층은 감염병에 더 취약한데, 정부의 지원(생활지원금, 유급휴가비, 치료비)까지 대폭 깎였다.

집중 폭우로 사망한 반지하 집 가족, 폭염 속 냉방비 걱정으로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서민들의 삶이 보여 주듯, 기후 위기는 노동계급에, 특히 그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힌다.

최저임금은 가구 핵심 소득원이다

최저임금 억제는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노동개혁’의 신호탄이었다. 정부는 노동자계급의 임금을 최대한 억제해 사용자들의 이윤을 지켜 주려 한다.

정부의 최저임금 억제 방침의 명분 하나는 최저임금 노동자가 가족의 생계 부양자인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기껏해야 부수적 수입원이거나 부양자가 없는 1인 가구라는 것이다.

역대 정부들도 이런 논리에 따라 가구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비혼 단신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해 왔다. (물론 그조차 비혼 단신의 실제 실태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국노동패널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 노동자의 80퍼센트가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핵심 소득원’으로 분류됐다(〈한겨레〉 2018년 1월 31일자).

올해 양대 노총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 받는 노동자가 “평균 2.94인의 가구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핵심 소득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내년 적정 실태생계비를 계산해 보면 시급 1만 3608원, 월 환산 284만 4070원이라고 밝혔다.

양대노총은 그 80퍼센트를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를 간단히 거부하고 물가 인상률 아래로 결정해 버렸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부당하게 낮은 임금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ILO)하는 게 아니라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을들의 연대”

정부와 사용자들이 최저임금 억제를 주장하는 또 다른 명분은 수익성이 크지 않은 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다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만 생각하지 말고, 열악하고 소득이 불안정한 그들도 생각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핑계는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오랫동안 발목 잡혀 온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영세상공인·자영업자 문제 때문이다. 이런 좌파적 포퓰리즘(중간계급과의 동맹 전략) 때문에 민주노총 중앙은 “을들의 연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 때문에 임금 문제에서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충돌한다.

그래서 자영업자 단체들은 쥐꼬리만한 최저임금 인상에도 반발하며 (사업자의 지불 여력에 따라 최저임금을 업종별·규모별로 차등 적용하는) 개악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 사용자 단체들의 요구와 공명되는 부분이다.

자영업자들이 아무리 지불 여력이 떨어지고 경제 위기로 처지가 점점 열악해질지라도,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은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해 자기 수입을 늘리는 사용자의 위치에 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다른 계급과 ‘연대’해 최저임금 억제에 대응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심지어 위험하다.

노동운동이 자영업자를 배려해 국민적 지지를 받겠다는 것은 계급을 초월한 단결을 강조하는 포퓰리즘 정치이다. 이런 정치로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에 발목 잡혀 계급투쟁이 충분히 발전하기 어렵게 된다.

사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에 실질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대체로 자기 조합원들 대부분이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상황에서 노조 지도자들의 항의는 (흔히 그랬듯이) 몇 차례 집회를 열고 정부에 “엄중 경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물론 노동조합주의가 낳은 문제이기도 하다.

광범한 노동계급 대중이 물가 앙등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전 계급적인 지지와 연대, 대중 행동을 만만찮게 일으키려 애쓴다면 정치적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