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사회민주주의식 노동 정치로는 불충분”을 읽으시오.

정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정의당10년평가위원회는 최근 노선, 선거, 조직·재정에 집중한 평가서를 제출했다.

정의당 안팎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노선 평가일 것이다. 선거나 조직·재정 평가는 연이은 저조한 선거 성적과 재정 적자 상태 때문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그 원인을 노선과 연결지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10년평가위는 정의당 노선 평가를 하며 세 가지 문제를 짚었다. 불평등 해소에 철저하지 못했고, 노동 전략이 없었으며, 민주당과의 연합정치에 과도하게 매몰됐다.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조세를 통한 재분배라는 “근본적 해법”을 추구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주류 정당들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수당 더 주기’ 경쟁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이다.

노동운동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고민과 실천 자체가 부족해 노동(계급) 정당이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졌다고 지적한다.

민주당과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조국 문제가 “기득권 대물림” 문제였는데도 정의당 지도부가 위법 문제로만 접근해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찬성한 것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로부터 독자적 성장 전략을 추구하고, 연합정치는 “전략”이 아니라 “전술” 문제로 “격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당10년평가서에는 예리한 지적들도 있지만, 사회연대전략을 핵심적으로 강조해 불길하다 ⓒ출처 정의당

사회연대전략은 국제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전통

이처럼 예리한 지적들도 있지만, 이 노선 평가로부터 핵심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사회연대전략이다. 조세를 통한 재분배 문제에서도 복지 확충을 위한 보편적 증세 대상에 결국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포함돼야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10년평가위는 한지원 씨의 주장을 호의적으로 인용한다. 한지원 씨는 상위 계층의 임금을 대폭 깎지 않고는 임금 균등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데다 심지어 최저임금 대폭 인상 요구에도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윤석열과 한미동맹을 변호하는 등 완전히 터무니없는 견해를 내놓은 일은 여기서는 그냥 웃어 넘기겠다.)

사실 그동안 사회연대전략을 적극 설파해 온 한석호 씨를 정의당이 비대위원에 임명할 때부터 사회연대전략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론이다.

10년평가위는 소득 상위 10퍼센트의 노동자들이 보편 증세와 임금·고용 양보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정의당이 해당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양보가 손해가 아니며 오히려 양보를 통해 “기득권 집단”이라는 비난을 벗어나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도 불평등 심화에 얼마간 책임이 있고, 불평등 완화를 위해서는 그들이 자본과 함께 경제적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는 전제에 따른 정책들이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연대임금 정책에 착안한 전통적인 주류 사회민주주의 전략으로, 바탕이 되는 가정들은 공상적 평등주의이다.

계급 내 격차를 줄이자는 선의가 있긴 해도 사회연대전략은 오히려 노동계급을 단결시키지 못한다. 하위 소득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 탓이라는 그릇된 전제에 근거하기 때문이고, 특히 실천으로 가면 자본은 노동과 고통 분담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천에서 사회연대전략은 불필요하게 자본에 양보하는 전략이다.

일부 노동자들이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이유는 잘 조직돼 있어 그것을 무기로 노동조건을 이럭저럭 잘 방어했기 때문이거나, 생산성이 더 높은 부문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사회연대전략의 문제는 도덕주의적으로 이런 노동자층을 질책하거나 훈계하려다가 실패하자 자본주의 국가(자본가 계급의 국가다!)의 힘을 빌어 이 노동자층으로부터 저소득층 노동계급 대중 쪽으로 소득을 이전시킨다는 공상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은 고소득층 노동자들을 더 착취하려고 이들이 갖게 된 죄책감(사회연대전략 정치인들이 심어 놓은)을 이용하는 데만 관심 있을 것이고,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 관심사에 부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투쟁/경제투쟁 분업 문제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개혁 연대,” “촛불연합정치” 같은 포퓰리즘 전략을 자기 비판하며 노동 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회민주주의식 노동정치는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틀 내에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구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려는 정치 운동이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때에도 국민경제와의 조화를 추구한다. 자본주의 내에서의 개혁을 위해 노동과 자본의 화해, 즉 계급 간 중재를 하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근본 특징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순이 위기로 몹시 커질 때는, 노동계급에 인기가 없어도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 자본가 계급이 원하는 정책도 기꺼이 채택한다. 몇 달 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국민연금 개악을 지지했던 것처럼 말이다.

국제적으로는,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지지층의 염원과 국민투표 결과를 거슬러서 2015년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이 요구한 긴축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정치·경제 분업에 충실한 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들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형식적으로 평등을 인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하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이를 더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보통선거권을 허용해 사회적 균열이 의회에서 다원주의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듯하지만, 의회는 자본주의 경제 권력(대기업 경영자)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사민주의 정치인들은 서로 협력하지만, 각자의 영역을 칼같이 구분하고 상호 비판 없이 분업한다. 선거 활동과 입법 활동(협상·중재)이 정치이고, 노동조합의 조건 개선(방어) 투쟁은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여긴다.

이런 사회민주주의의 정치·경제 분업의 핵심 문제점은 노동계급의 경제적 잠재력(특히 파업을 통한)이 정치적 문제의 해결에 활용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지극히 중차대한 정치 문제에 노동계급의 경제적 힘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노조 지도자들 몇몇이 연설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의 분리·분업 경향이 강화되면, 노동조합 기층에 혁명적 좌파가 개입하는 것을 불순하게 보는 경향이 커진다. 정당 안에서는, 운동에 참여하는 기층 활동가보다 선출 공직자가 더 우대받는 분위기가 조장된다. 두 경우 모두 개혁주의에 유리한 조건이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우파 정부의 갖가지 공격이 예상되는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정치적 문제들의 연관성을 참을성 있게 설명하고 기층에서 노동자들의 연대를 건설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할 줄 아는 진정한 계급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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