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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
생활상의 고통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대변하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가파르게 오른 연료비, 식량 위기, 실질임금 삭감이 대중의 생활고를 자극하면서 스리랑카, 아르헨티나, 파나마, 영국 등 곳곳에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친 듯이 뛰는 물가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 24년 만의 최대 물가상승률, 사상 최대 가계부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 국민고통지수, 금리 상승으로 대중의 삶이 위기에 처했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런 벼랑 끝 생계비 위기 상황이다. “15년 전 운임 수준으로는 못 살겠다”는 외침이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바다.

박수동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청주지회장은 이곳에서 일한 지 11년째다. 그런데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가 받는 월급(운송료)은 고작 150만~200만 원이다. 겨우 최저임금(이거나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인데도 사용자 측은 정당한 운임을 지급했다고 주장한다.

이 돈으로 당신들이나 가족까지 부양하며 살아 보라!

안 그래도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은 동종 업계에서 운임이 가장 낮은 편이다. 사는 게 팍팍해도 그동안에는 그럭저럭 버텼다. 그러나 지난해 요소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올해 들어 유가까지 폭등하면서 노동자들은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한 노동자가 보여 준 올해 5월 월급 명세표를 보면, 유가가 폭등하기 전에는 기름값이 월 480만 원 들었는데 폭등 이후로는 720만 원이나 지출했다. 도로비, 부가세 등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돈은 고작 120만 원이었다. 수입이 240만 원이나 줄었다. 기름값이 오른 만큼 수입이 준 셈인데, 여기에 물가와 금리까지 뛴 것이다.

“물가와 유가가 급등한 뒤로는 도저히 생활비를 댈 수가 없었어요. 한 달에 100만 원씩 마이너스가 되고 빚이 계속 쌓였습니다. 일이 끝나면 밤에는 화물차를 끌고 택배 일까지 했어요.”

노동자들이 지난 2월 중순 화물연대에 가입해 투쟁에 나선 이유다.

역대 최고 청년 경제고통지수

이런 상황 때문에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시선은 우호적이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쟁 소식이 알려지면서 특히 노동계급 청년들의 관심이 높다. 〈노동자 연대〉 회원들이 지난 몇 주간 전국 주요 도심에서 진행한 거리 신문 판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가 앙등 속 청년들이 겪는 고통과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 앙등 속 삶이 고달픈 청년들이 노동자 투쟁에 우호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재혁

청년 세대가 힘든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물가가 폭등하면서 청년들의 삶은 더 고달프다.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청년 체감경제고통지수)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물가가 오르고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벌어놓은 소득이 없는 청년들의 위기감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은 쥐꼬리인데 금리는 크게 뛰고 공과금과 생활비까지 부담이 커지자, ‘독립’을 포기하고 자취방을 빼는 20~30대 취업자들도 늘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7월 현재 공식 청년실업률은 6.9퍼센트, 체감 청년실업률은 19.8퍼센트다. 이처럼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취업 준비생들에게 고공 행진하는 물가는 정말 견디기 힘든 이중 부담이다.

대학생 강혜령 씨는 말했다. “몇 달 사이에 1000원, 2000원씩 밥값이 오르는 건 처음 봤어요.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들 힘들어 해요. 그래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에 대한 공감대도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아요.”

청년 노동자 오선희 씨는 말했다. “생계비 위기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에요. 우리는 호황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라 항상 쪼들려 살았는데, 지금은 더 막막하죠. 화물연대 파업이 감명 깊은데,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청년들이 호응을 많이 합니다.”

노동자 투쟁이 미치는 효과

올해 6월 초 화물연대는 생계비 위기에 맞선 저항의 포문을 열었다. 유가 폭등의 직격탄을 맞은 이 노동자들은 단 8일간의 파업으로 상당한 경제적·정치적 효과를 내는 위력을 보여 줬다.

이어 대우조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끈기 있게 싸웠다. 노동자 점거가 투쟁 막바지쯤 이윤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자, 새 정부는 각료들을 파업 현장에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은 이런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고물가 시기에 생계비 위기에 맞설 대안임을 노동자 투쟁은 보여 주고 있다.

하나의 노동자 투쟁이 성과를 내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영감을 얻고 투쟁에 나설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투쟁은 누적된다면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령 정부가 지난 6월과 7월 유류세를 인하한 것은 화물연대 파업의 압력을 받은 결과다.

더 극적인 사례로 1998년 8월 현대자동차 노동자 점거 파업은 정치적 효과가 났던 두드러진 사례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경제 공황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고금리·긴축 정책으로 노동계급 대중을 가혹하게 쥐어짰다. 공식적으로도 20퍼센트가 넘는 고금리 속에 기업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가계 파산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1998년 8월 현대차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 위협에 맞서 36일간의 영웅적인 대공장 점거 파업을 벌였다. 당시 투쟁을 여기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노동자들은 경찰 투입 폭력에 대비해 실제로 가슴에 식칼을 품고 연좌할 정도로 전투적으로 싸웠다.

그 투쟁은 김대중 정부가(또 IMF마저) 고금리·긴축 정책을 절반쯤 케인스주의 정책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2000년대 재정정책).

이는 노동자들의 단호한 대규모 파업이 경제 위기의 진정한 대안일 수 있음을 증명한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지지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