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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당에 관한 다섯 가지 물음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의 편집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인 찰리 킴버가 최근 영국에서 노동자 투쟁이 부상하는 가운데 피켓 라인(대체 인력 저지선)과 여러 토론 모임에서 혁명적 당에 관해 자주 제기되는 물음을 살펴봤다. 이는 〈노동자 연대〉 독자들에게도 유익한 문답일 것이다.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연결짓는 데에 혁명적 조직의 구실은 결정적이다 ⓒ조승진

백 년 전이면 모를까 혁명적 당이 지금도 필요할까?

변화를 쟁취하려는 거대한 운동들이 몇 개월이나 수년 안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운동들이 승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운동들이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거대한 규모의 운동조차도 의식적인 정치 조직이 없다면 패배하거나 약화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상대는 무자비한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와 특권을 보호하려고 경제적 압력과 탄압, 심지어 군대까지 동원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조직돼야 한다. 근래에 수단·스리랑카·미얀마에서 일어난, 변화를 쟁취하려는 영웅적인 투쟁들을 보라. 이 투쟁들은 결코 용기와 결단이 부족하지 않았다. 수단에서는 수감과 고문, 국가가 자행하는 살인에도 불구하고 일 년 내내 시위대가 거리에 나서고 또 나섰다.

혁명이라는 물음이 제기되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세 종류의 집단이 나타난다. 첫째, 모든 변화를 중단시키고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자들이다. 둘째, 개혁을 바라지만 경제와 정치 질서 전반을 뒤집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지도자나 정부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에게서 공장과 사무실, 자원, 부를 빼앗아 오려고 노력하는 혁명가들이 있다. 이들이 투쟁하는 목적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훨씬 더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 대신 해방을 쟁취해 줄 수 없다. 침략군, 폭탄을 투척하는 소수 의인들의 집단, 노동조합 지도자, 의회 정치인 그 어느 누구도 말이다.

그러나 혁명가들의 규모가 충분히 크지 않다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우파나 개혁주의적 사상이 득세할 수 있고, 이는 후퇴와 유혈낭자한 반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다.

2011년 이집트 노동자와 빈민들은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사회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 주며 지배자들을 떨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혁명가의 수는 충분하지 않았고 다른 세력들이 득세하게 됐다. 그래서 잔인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현 독재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다. 오늘날 똑같은 정치적 대결이 수단에서 일어나고 있다.

개인으로서 행동에 나서고 다양한 운동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운동의 일부가 되는 일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인종차별, 환경 파괴,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파업을 지지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행동을 위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거나 다양한 단결된 운동에 동참한다. 그러나 우리가 맞서는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은 자본주의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체제를 겨냥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을 위해서 투쟁하고, 인종차별, 기후 위기, 여성·성소수자 차별에 맞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맞서는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낳는 근원과 대결해야 한다.

“상호부조” 네트워크나 무료급식소에 힘을 쏟는다면 절박한 상황에 놓인 개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듯이 그런 일로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런 활동들은 애초에 그런 활동을 필요하게 한 근본적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운동을 효과적으로 만들려면 조직과 전략이 필요하다.

운동이 효과적이려면 우리에게 더 나아가지 말라고 만류하고 우리의 상상력에 제한을 걸려는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러려면 민주적으로 결정되고 통일된 행동을 중심으로 결속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즉,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혁명적 당은 일터와 거주지, 사회운동 등에서 지도적 구실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이다.

혁명적 당은 핵심적 문제에서 구성원들이 입장을 달리하는 느슨한 선거 연합이 아니라 투사들의 당이다. 혁명적 당은 사회 내의 모든 견해를(심지어는 노동계급 내의 모든 견해도) 고스란히 반영하는 조직이 아니다. 혁명적 당은 어떠한 압력에도 원칙을 고수하고 사회주의 정치를 방어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킨다.

그렇다고 현실의 투쟁에서 동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혁명가들은 모든 영역의 저항에 관여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필요성에 관한 주장을 연결시키고, 이를 어떻게 이룰지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당 내에서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파업 파괴자들을 용인하지 않는다. 영국 노동당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은 범죄시되지만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혁명적 정당은, 운동에서 벌어지는 전략과 전술을 둘러싼 쟁투에서 경험과 논쟁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조직이다 ⓒ이미진

혁명적 당이 투쟁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혁명가들은 일터와 거리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의회와 선거보다 우선시한다. 역사를 보면, 영국노총이 대중 조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880년대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의 파업과 항만 노동자 파업 덕분이었지, 노동당 덕분이 아니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와 그 직후 노동자들의 전투성에 불을 붙인 건 이미 의회를 통한 개혁 운동에 염증을 느끼고 러시아 혁명에 기대를 걸었던 활동가들이었다. [1930년대에] 파시스트인 오스월드 모즐리[영국파시스트연합 총재]를 패배시킨 것도 노동당이 아니라 혁명가들과 급진적 유대인 단체들의 행동이었다.

노동당은 1970년대에 일어난 대중 파업에서 당시 주변적인 구실을 했다. 1970년대 말에 일어난 파업들은 아예 노동당 정부에 맞선 것이었다. 노동당 지도부는 1984~1985년 광원 파업을 지지하지 않았다. 2001년에 시작된 거대한 반전 운동은 노동당 소속 블레어 총리의 거짓말과 유혈낭자한 미국의 전쟁 노력에 대한 [노동당 정부의] 협조에 맞선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들의 원동력이다. 그 어떤 수많은 선거운동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만큼이나 체계적 인종차별을 쟁점화하고 개혁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 어떠한 지배자와 정치인들의 회의도 학생의 동맹 휴업과 멸종반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회담장 바깥에서 벌어진 거대한 거리 시위만큼이나 기후 위기 문제를 사회의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투쟁과 파업이야말로 세계를 변화시킬 희망을 준다. 때로는 혁명가도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행동이 지배적이고 무엇이 무엇에 종속되느냐이다. 따라서 폴란드 출신의 위대한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1900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권력 장악과 사회혁명 대신에 그것과 대비시켜 개혁 입법이라는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사실 공통의 목표로 향하는 더 평온하고 느린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이 아니라, 낡은 질서의 피상적인 수정을 추구한다.”

이것이 바로 혁명적 당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조직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다.

정치는 파업과 같은 노동계급 투쟁을 분열시키지 않는가.

우리는 보수 우파와 기업주에 맞서는 투쟁에서 단결하려 한다. 그러려면 정치적 이견이 있을 때도 같은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피켓 라인에서 키어 스타머[현 노동당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를 혐오하는 사람들로 사람들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또, 이민자의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거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로 피켓 라인을 갈라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논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투쟁이 정점에 있을 때도 말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과 관련된 쟁점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차별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썩어빠진 관념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이지, 그것에 반대하며 논쟁하는 것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게 아니다.

때로는 이런 논쟁들을 제기하는 것이 껄끄러울 수 있다. 후진적인 말을 듣고 못 들은 체하는 것이 언제나 더 쉽다. 혁명적 당의 일부가 되는 것의 장점 하나는 그런 조직이 이런 후진적인 주장에 맞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주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혁명적 당은 모든 구성원에게 차별과 착취에 맞서는 투사가 될 것을 요구한다.

사태에 영향을 주기에는 혁명적 당의 규모가 너무 작지 않나?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가들,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다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이들과 견줘 봤을 때 우리가 2000~3000명뿐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혁명적 당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만만찮은 과제다. 하지만 혁명적 당은 전반적인 투쟁 수위가 높지 않을 때는 언제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을 것이다. 그리고 파업과 대중운동이 분출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운동에서는 전략과 전술을 둘러싼 쟁투가 벌어진다.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사람들은 기존 체제 안에서의 변화를 먼저 추구한다.

우리는 경험과 논쟁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조직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수천 명 있으면 사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조직을 건설하고, 일터 투쟁을 지지·고무하고, 자본주의에 맞서고, 사회주의 사회에 관한 주장을 펼 수 있다.

영국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전국적인 운동(인종차별과 파시즘 반대 운동)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영국에서 극우와 파시스트들의 규모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노동조합 소속의 당원 활동가들은 더 많은 투쟁과 연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설득했다. 당면 문제들에 맞서면서도 언제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사회 전체를 바꾸는 전투를 생각하는 당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