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재정 긴축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오늘(8월 30일) 내년 예산을 639조 원으로 편성해 내놨다. 올해(추경 포함)보다 40조 원 이상 줄인 것이다. 정부의 지출 축소는 13년 만의 일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늘어난 각종 지원 사업을 대폭 정리하고 민간 보조 사업을 폐지·축소하겠다고 밝혀 왔다. 공무원 임금을 동결하고 공공부문 정원을 감축하겠다고도 한다.

반면, 정부는 대규모 부자 감세(법인세, 종부세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사람들의 높은 불만을 의식해, “긴축은 불가피하지만 ... 돈 쓸 때는 확실히 쓰겠다”며 수십 가지 “민생 안정 대책”도 내놓고 있다. 특히, ‘추석 민심’을 잡아 지지율을 회복해 볼 요량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하기에 불과하다. 긴축과 “민생 안정”은 양립 불가능하다. 긴축은 가뜩이나 경제 불황과 물가 폭등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서민의 삶을 옥죌 것이다.

노동계급 여성과 사회적 취약계층은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긴축 때문에 한부모 가족, 장애인, 노인, 빈곤층 등 취약계층에게 절실한 지원은 늘기는커녕 축소될 공산이 크다.

생계비 위기에 더해 긴축은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미진

복지 위축

내년 예산에서 보건·복지·고용 부문은 올해보다 4.1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고령화 등으로 인한 복지 지출의 자연 증가분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체·위축되는 것이다(참여연대의 지적).

벌써부터 이런 조짐이 있어 왔다. 지난해부터 51~70세 여성 농업인에게 정부가 특수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 1년 만에 폐지 위기를 맞았다.

복지가 충분히 늘지 않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이미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공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2019년 기준 GDP 대비 12.2퍼센트로 OECD 평균(20퍼센트)에도 크게 못 미친다.

그런 탓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절박한 위기에 내몰려 있다. 장애인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적 사건이 올해에만 언론에 여러 번 보도됐다. 이들 대부분은 장애인 가족을 평생 돌봐야 하는 부담에 짓눌려 살다가, 실직이나 병을 얻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완전히 절망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올해 내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장애인 권리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차갑게 외면해 왔다.

얼마 전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늘 수 있다. 세 모녀는 난치병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했다.

정부는 이들의 죽음을 그저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실패’의 문제인 양 말한다.

그러나 ‘발굴’되고도 공적 복지서비스 지원을 받는 경우는 극소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2016년에 ‘복지 사각지대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되고 지난 6년간 발굴한 취약계층은 계속 늘었지만, 이 중 4퍼센트만이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됐다(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복지 예산 부족과 까다로운 심사 절차는 서로 연결돼 있다. 긴축으로 복지가 축소된 나라들에서는 이용자들의 복지서비스 접근이 더 까다로워졌다.

영국의 경우 접수 절차와 수급 요건이 더 복잡해지고, 서비스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또, 부정수급자를 강도 높게 가려내고, 수급권 여부를 결정하는 담당자의 재량권도 엄격히 제약됐다.

노동계급 공격

긴축은 노동자·서민의 건강도 악화시킨다. 코로나19 재유행 속에서도 정부는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사실상 중단했고, 유급휴가비와 생활지원비, 재택 치료비마저 축소·폐지했다. ‘긴축’ 방역의 결과다. 빈곤층 사람들은 코로나에 확진되면 생계비와 치료비 모두 대책이 없다.

내년 예산에서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예산은 197억 원 삭감됐다.

긴축은 또, 직접적으로 노동자 쥐어짜기를 수반한다. 이미 정부는 내년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1퍼센트대로 예고했다. 실질임금의 대폭 삭감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이 공무원 임금 인상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이 상당수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안 그래도 이들은 저임금에 시달려 왔는데 말이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뒤따르는 위험도 대두되고 있다. 예컨대 대구에서는 산하 공공기관을 18개에서 11개로 줄이면서 대구사회서비스원 통폐합을 예고했다. 사회서비스원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조건 후퇴의 압력을 크게 받고 있다.

사회서비스원의 통폐합은 다시 복지 서비스의 축소와 악화를 부를 공산이 크다. 공공 돌봄 서비스는  축소되고 시장에 내맡겨지고 있다.

부담에 짓눌리는 가족

한편, 불황과 긴축으로 국가의 취약계층 지원이 형편없어질수록 가족이 더 중요해진다.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가족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족은 다음 세대 노동력을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 장소이자, 임금 노동에서 배제된 노인, 환자, 장애인을 부양하는 장소다.

그런데 이런 일의 대부분은 여성의 무보수 노동에 맡겨져 있다. 노동계급 여성의 이중 굴레가 강화되는 것이다.

소득이 감소하고 돌봄 부담이 커져 피곤과 스트레스가 가중될수록 가족 내 관계는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가족이 결국 파탄 나기도 하고(장애인 가족 살해나 ‘수원 세 모녀’ 사건은 그 극단을 보여 준다), 가정 폭력이 증가한다.

이런 일은 장기간 강도 높게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돼 온 미국, 영국 등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일들이다.

정부는 긴축을 추진하면서도 사람들의 반감과 저항 가능성 때문에 지금은 눈치를 보고 있다.

긴축으로 큰 타격을 받는 노동계급은 긴축에 맞서 싸울 힘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성은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긴축 정책에 맞선 투쟁의 선두에 서 왔다. 이런 투쟁을 통해 긴축 정책의 파괴적 효과를 완화시키거나 정책을 되돌릴 수 있다.

생계비 위기에 더하여, 긴축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단결된 투쟁을 벌이도록 도모하는 계급 일반의 투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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