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우리나라’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라고 교육 받아 왔다.

아마도 올 11월 카타르 월드컵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붉은 셔츠를 입고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응원하고 상대팀이 자책골이라도 넣어서 패하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첨단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도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로 여겨진다. 국내 군수 기업들이 이집트·폴란드 등지로 많은 무기를 수출하자 언론들은 ‘K-방산’의 우수성이 인정받아 ‘국익’에 큰 보탬이 됐다고 했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라도 하면, K-POP의 우수성에 대한 찬양과 K-POP 글로벌화에 대한 온갖 찬양과 제안이 쏟아진다.

학교에서든, 언론에서든 모든 한국인은 한국과 한국인의 우수성에 관한 얘기를 쉽게 접하고 이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반만 년 역사의 자랑스런 한국인’, ‘한국인이 최고’ 등등.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미국·중국·일본 학생들도 모두 진정한 미국인·중국인·일본인이 돼야 하고, 자국(자국민)의 우수성을 믿으라고 교육받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 지배자들한테 사람들의 애국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대중이 ‘국익’을 믿고 따르기를 바란다. 애국심이 모든 사람의 몸에 배고 당연한 것이 돼, 잠시 멈춰 생각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윤석열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익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익이다 ⓒ출처 대통령실

애국심은 자국 기업주와 노동자, 즉 착취자와 피착취자를 다른 나라의 기업주와 노동자에 대항해 함께 묶어 주는 공동 이익이 있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애국심은 국가(국민 전체의 공통 이익의 집약적 표현체로 간주되는)의 권력과 권위도 강화한다. 이는 피착취자에 대한 착취자의 지배를 유지하는 주요 방식이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경제·지정학 상황이 불안정해지고 한국 지배자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위험 요소가 많아질 때 ‘애국’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윤석열이 ‘국익’을 자주 입에 담고, ‘국익’을 국정 운영 4대 원칙의 하나로 애써 꼽는 까닭이다.

공공의 이익 또는 공동선?

나라에 대한 관념은 현실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둔다. 오늘날 세계는 국경선으로 나뉘어 있고, 모든 사람이 특정 국민국가의 영토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국적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특정 계급에 속한다. 그리고 국가의 정책은 주로 그 나라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우세한 계급의 이익에 이바지한다.

따라서 국익은 국민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실상 국내 지배계급의 이익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1913년에 쓴 글에서 이런 문제를 직시할 때 ‘누구의 이익인가’를 반드시 물으라고 강조했던 까닭이다.

“특정한 정책을 누가 나서서 지지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오늘날의 고결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누구나 돈만 많으면 변호사, 문필가, 심지어 국회의원, 교수, 사제 등등을 몇 명이든 ‘고용’하고 매수하고 포섭해서 어떤 견해라도 옹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대이므로 자본가 계급은 명예나 양심을 거래하는 데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해지고 있다. 반도체를 주력 수출 산업으로 삼고 있고 그 제조와 수출 면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와 깊게 연관 맺고 있는 한국 지배자들도 미·중 갈등에서 큰 고통과 압력을 받는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정부와 언론은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을 걱정하고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자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런 주장 이면의 진실을 봐야 한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280조 원의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고, 반도체 부문에서만 94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는 노동자들을 한껏 쥐어짜서 얻은 성과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2020년 166일, 지난해 84일 동안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았다.

반도체 기업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를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추가할 예정이다.

전경련은 반도체 기업들을 위해 더 많은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화답해 국회에서 논의되는 반도체 지원 법안들에는 노동시간 연장, 화학물질 등의 각종 규제 완화 등 독소 조항들이 있다.

계급의 관점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국제주의자다. 우리도 세계를 국가의 관점보다는 계급의 관점에서 먼저 본다.

이 문제는 국민국가의 틀을 받아들이는 개혁주의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혁명가 사이에 분명한 구분선을 그어 주는 기준의 하나다.

좌파든 주류든 개혁주의자들은 ‘우리 산업을 구하자’라든지 ‘우리나라가 다시 나아가도록 만들자’와 같은 국익 논리를 수용하고 때론 이를 앞장서 퍼뜨린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산업, ‘우리’ 나라가 아니다. 둘 다 지배계급의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자들이 국익을 지키자고 주장할 때 그들은 자신이 기성 체제의 포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생각을 노동계급 내부에서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주의, 즉 좌파적 포퓰리즘은 윤석열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국민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재벌 등 한 줌의 수구 보수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이 계급을 초월해 단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 문제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칩4 참여나 대미 투자 등 정부와 재벌의 정책들이 “한국에 이익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누가 진정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가’를 물으며 국민적 단결을 강조한다면 계급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주의자들이 고유의 계급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게 된다.

2019년 한일 갈등 때 노동운동의 주요 지도부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를 ‘경제 침략’으로 보고 이에 맞선 단결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의 친제국주의적 외교·안보 정책을 제대로 폭로하지 못했고, 한일 갈등을 명분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규제완화와 노동시간 연장 추진에도 실질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국제주의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자신에게 묶어 놓으려면 애국심이 필요한 것에 상응해 노동계급에게는 계급적 독립성을 확립하기 위해 국제주의가 필요하다.

더구나 (러시아 혁명의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혁명이 한 나라 안에서 잠시 성공할 수 있어도 고립 상태가 지속되면 무한정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국제주의는 노동계급을 위해 꼭 필요하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혁명을 직접 뒤집어엎든지 아니면 1920년대 말 러시아에서처럼 혁명이 일어난 나라가 세계 자본주의의 군사적·경제적 압력 때문에 자본주의와 경쟁하면서 스스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착취와 계급 차별,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이 부활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단지 그럴듯한 문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제주의는 일상의 투쟁에서도 필요하다. 이제 한국에는 200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살고 있다. 난민도 적잖이 한국으로 온다.

이런 조건하에서 지배자들은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난민을 분열시키려고 갈수록 애쓸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은 이에 일관되게 맞서지 않는다. 국경 통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선거 등을 의식해 이주민·난민을 일관되게 지키려 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간질을 극복하고,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최선의 방어는 연대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주민 또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 때문에 일자리와 노동조건이 악화된다는 지배자들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적 단결을 일관되게 지향해야 한다.

진정한 국제주의는 조야한 민족적·인종적 편견을 버리고 전 세계 시민에게 우호적 태도를 갖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국제주의는 ‘인류 형제애’(또는 ‘인류 자매애’)에 대한 관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상호 적대적인 이해관계들로(즉, 계급들로) 사회가 나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남성이 형제인 것도, 모든 여성이 자매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적 국제주의의 기본 요소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적 국제주의는 세계를 그저 국민국가 간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자본주의에 맞서는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이 투쟁들에서 우리는 국제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이 (민족이나 국민으로 분할된) 계급 일부의 임시적·단기적 이익보다 우선이라고 본다. 대중매체나 개혁주의자들이 모두 ‘국민의 이익’이라고 옹호하는 정책들과 아주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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