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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대’ 분리매각·기업의 대학 인수 허용:
대학 구조조정 가속화하려는 윤석열 정부

정부가 ‘부실’ 사립대의 분리 매각과 기업의 대학 인수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

교육부는 9월 30일에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고, 같은 내용의 법안을 국민의힘 의원 이태규가 대표 발의했다.

정부는 이번 조처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운영이 어려워진 ‘한계 대학’의 퇴로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학교법인이 해산할 경우 청산하고 남은 재산은 모두 국고로 귀속돼 부실 사학들의 불만이 컸는데, 학교법인이 잔여재산을 가져갈 수 있게끔 허용해 주는 것이다. 대학 운영이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해 왔는데, 잔여재산은 법인이 챙겨갈 수 있게끔 하다니 횡령을 법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셈이다.

법이 통과되면 부실 사학들은 대학의 일부 또는 전부를 매각할 수 있다. 의대나 간호대 같은 경쟁력 있는 학과만 따로 떼서 매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때 다른 학교법인이나 지자체뿐 아니라 기업에도 매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번 조처는 부실 사학의 재산을 보호해 줌으로써 대학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려는 조처다. 이에 따라 대학 구조조정이 더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부실 사학의 재산을 보호해 줌으로써 대학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려고 한다 ⓒ출처 pxhere

한편, 기업의 대학 인수도 명문화하려고 한다. 일부 기업들이 사립대학을 사실상 인수한 전례가 있지만 법적 근거는 없었다.

다른 한편, 정부는 반도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주요 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의 친기업적 성격을 보여 준다. 대학 수를 줄여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줄이고, 교육을 좀 더 기업의 필요에 맞게끔 개편하려는 계획의 일환인 것이다.

대학 구조조정은 지난 20여 년간 역대 정권들이 추진해 온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더한층 밀어붙이려 한다.

정부는 이런 계획을 발표하기 하루 전 교육부 장관으로 이주호를 지명했다. 이주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 출신으로, 당시 일제고사·자사고 도입 등을 추진해 신자유주의적 경쟁 교육의 화신으로 불렸고,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한 장본인이다. 정부에게는 친기업적·경쟁적 교육 정책을 밀어붙일 적임자인 셈이다.

정부는 학령인구가 줄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으므로 경쟁력 없는 대학은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9년 기준 한국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6.4명으로 OECD 평균인 15명의 두 배에 이른다. 강의실, 기숙사 등 교육 환경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설사 십수 년 뒤에 입학 정원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하더라도 교육 여건은 겨우 OECD 평균 수준일 것이다.

정원 미충원 대학의 교육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애초에 한국의 대학 운영이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부실한 대학들은 정부가 국공립화하고 지원을 확대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한편, 정부의 ‘부실 대학’ 퇴출 시도는 단지 몇몇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대학에 구조조정 압력을 가해 왔다. 그래서 대학들은 “부실” 대학 명단에 끼지 않으려고 알아서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정원을 감축하고, 수익성 강화 등을 추진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 내용도 갈수록 협소해지고 획일화됐다. 이번에 정부는 기업의 대학 인수의 법적 근거도 마련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대학 교육의 상품화와 학문의 상업화가 더한층 날개를 달 것이다. 등록금 인상, ‘돈 안 되는’ 학과 폐지, 비정규직 교원·노동자 증가 등등. 이렇게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다가 별 수익을 내지 못한다 싶으면 다시 되팔아 버릴 수도 있다.

2000년대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는 대학에 기업의 수익성 논리가 적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두산은 중앙대 인수 이후 학과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독어학과와 불어학과를 폐지했다.

기업의 필요를 우선하며 대학의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