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비 위기에 맞서 10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더는 못 참겠다’ 시위 ⓒ출처 가이 스몰만

유럽이 에너지 위기의 한복판에 놓인 채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유럽은 (에너지원 중 석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천연가스의 40퍼센트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응해 가스 공급을 옥죄면서, 가스 가격이 치솟았고, 이는 물가 폭등을 더 증폭시켰다.

유럽연합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은 유럽 전역에 광범하게 퍼진 문제로 5000만~1억 2500만 명이 적절한 난방을 누릴 형편이 안 된다.”

영국의 ‘연료빈곤 철폐 연합’의 추산에 따르면 2023년 첫 세 달 동안 영국에서 1050만 가구가 ‘에너지 빈곤’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에너지 요금 때문에 이 가구들의 수입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9월 30일 유럽연합 국가들은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려고 전기 요금에 상한을 걸고 에너지 기업들에게서 ‘초과 이윤세’를 (한시적으로) 걷는 방안에 합의했다. 여기서 ‘초과 이윤’이란 (물가 폭등과 전쟁 등이 맞물려) 팬데믹 이전에 기대되던 것보다 더 거둔 이윤을 말한다. 그것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이런 조처를 환영한 국제 구호 단체 옥스팜도 “최근 위기에서 기업들이 벌어들인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옥스팜은 세계 1000대 기업이 팬데믹 이후 1조 1500억 달러에 달하는 ‘초과 이윤’을 벌어들였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유럽연합이 초과 이윤세로 마련하겠다는 돈은 겨우 1400억 유로다.

따라서 이런 조처는 이윤 추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니다.

사실, 유럽연합은 가스 요금 상한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반 대중의 전기 사용 자체를 줄이려는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 필수적인 전기 사용이 대부분인 보통 사람들에게 이것은 생활수준 하락을 뜻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통의 우크라이나인들과 빈국의 민중뿐 아니라 선진국의 노동계급 사람들도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

이런 에너지 위기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파시스트가 총리직을 거머쥐게 된 이번 이탈리아 총선의 핵심 쟁점도 바로 에너지 위기였다.

체코에서는 9월 초 7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 정부의 친 유럽연합·나토 행보를 비판하고,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하라고 요구한 이 시위는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주도한 것이었지만, 생계비 위기에 직면한 보통 사람들이 분노를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에너지 위기를 이용하고 있다. 특히, 좌파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AfD는 평화 세력을 자처하며 지지를 모으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 인기가 없다. 7월 독일 ARD 방송의 설문 조사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지한다고 답한 주민은 옛 동독 지역의 경우 39퍼센트에 불과했다.

물론 극우의 전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왼쪽에서의 저항도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생계비 위기에 항의하는 ‘더는 못 참겠다’(Enough is Enough) 운동이 상당한 반향을 얻고 있다. 통신노조(CWU)가 발의한 이 운동은 발의한 지 일주일만에 5만 명이 활동에 자원했고 9월에 성공적인 출범식을 열었다. 그리고 10월 1일 영국 곳곳에서 수천 명 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이 운동은 코빈 이후 좌파가 재결집하는 장이 되고 있다.

‘더는 못 참겠다’ 운동의 성공은 영국에서 오랫만에 다시 일어난 노동자 저항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는 물가 상승과 팬데믹, 노동력 부족 사태 등과 같은 객관적 요인뿐 아니라 주관적 요인도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코빈의 부상은 한편으로는 급진화를 자극하면서도, 코빈이 집권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의존을 자아내는 모순된 효과를 냈다. 그러나 2019년 코빈의 패배로 그런 기대는 사라졌었다.

물론 노동당 좌파의 선거 중심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 현재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좌파 노조 관료들은 지배계급과의 충돌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모순된 구실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망했을 때 통신노조와 철노도조가 예정됐던 파업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일련의 일들의 효과는 현재 (키어 스타머의 우파적 지도부가 이끄는) 노동당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독일과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같은 구호로 생계비 위기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있다. 독일의 좌파당은 9월 초 옛 동독 지역에서 생계비 위기에 항의하는 수천 명 규모의 집회를 열었다.

프랑스에서도 정유소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프랑스 최대 규모 정유소를 마비시키는 등 강력한 파업을 일주일째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이나 체코처럼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연계가 있었던 곳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좌파의 혼란이 좌파 측의 정치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현재 독일 좌파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좌파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일의 중화기 지원에 반대하지만 러시아 제재는 지지하는 입장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달 좌파당의 한 지도자인 바겐크네히트가 국회 연설에서 러시아 제재를 비판하자 당 내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두 저명 인사가 바겐크네히트에 반대해 탈당을 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독일의 생계비 위기 시위도 극우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좌파당 소속 의원들과 튀링겐주 주지사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극우가 이 문제를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정당한 불만을 독일 좌파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층의 투쟁을 고무하는 정치와 원칙 있는 반제국주의 입장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