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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평평한가?

미국 지배계급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얼마 전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거기서 그는 오늘날 세계가 점점 책 제목처럼 “평평”해지고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폈다. 그는 중국과 인도의 부상을 주된 사례로 들면서 세계화 덕분에, 특히 정보화와 ‘글로벌 공급 사슬’의 확산 덕분에 세계가 평등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평평한 세계’론은 오늘날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 구실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진보진영 담론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예컨대 자율주의자 네그리와 하트는 “중심과 주변, 남과 북은 더는 국제질서를 정의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서로 가까이 접근했다”고 주장한다(공저 《제국》에서). 이는 ‘평평한 세계’론을 좌파적 수사로 분장해 되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 문제가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자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사 화두가 될 정도로 최대의 사회적 현안이 돼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프리드먼의 ‘평평한 세계’론은 황당무계할 정도의 현실 왜곡이며 현실 미화다.

사실, 자유무역, 자본이동의 자유 확대, 국제적 경제통합 등이 진전되면서 세계적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의 공통된 주장이다. 주류 경제학이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리카도의 비교우위설(또한 헤크셰르-올린-새뮤얼슨 정리)은 “자유무역이 생산요소 가격의 균등화와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교역국 국민의 후생을 증진시키고, 세계적 불평등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 발전의 논리나 역사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 현실에서는 리카도 이래 주류 경제학이 주장해 온 ‘비교우위’(비교생산비에 근거함)가 아니라 ‘경쟁우위’(절대생산비에 근거함) 원리가 관철돼 왔다.

또, 세계화는 빈국에서 부국으로 부(富)의 이전을 증대시킨다.(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과 심화 때문에 국민국가가 세계시장에서 가치법칙을 수정하는 능력은 약화된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가치법칙은 더 순수한 형태로 관철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제적 부등가 교환을 통해 빈국에서 부국으로 가치 이전이 증대한다.)

또, 세계화를 통해 부국과 빈국의 생산력 격차는 더 확대된다. ‘글로벌 공급 사슬’이 확산되면서 프리드먼이 기대하듯이 가치가 국제적으로 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치 사슬’ 가운데 고부가가치 부분은 더욱더 부국에 집중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고유한 우승열패·약육강식의 법칙은 세계화 과정에서 더욱 극단적이고 노골적 형태로 관철된다.

세계화는 “있는 자는 받아 더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마태복음》 13장 12절) 이른바 ‘마태의 법칙’이 세계적 규모로 작용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 동안 진보진영에서는 세계적 양극화 현상을 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나 ‘금융화’와 관련시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선행한 ‘황금시대’(1945∼73년 장기 호황) 동안에도 세계적 양극화는 가차없이 진행돼 왔다.

이는 최근의 실증 연구들에서 입증된 바 있다.(이에 대해서는 졸고, 〈세계적 양극화: 마르크스 가치론적 관점〉,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06년 상반기호를 참조하라.)

세계적 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일반적 운동법칙이 작용한 결과다. 세계적 양극화 현상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처음 출현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오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양극화에 대한 좌파의 대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사회적 신자유주의 처방이나 최근 진보진영 일각에서 시도하는 케인스주의 또는 ‘민족경제론’의 부활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지양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정성진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마르크스와 한국경제》(책갈피)의 저자이고,
《마르크스의 사상》,
《소련 국가자본주의》 등의 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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