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은 핵심 정책 기조로 ‘공동부유’를 내걸었다. 공동부유는 “다 함께 잘살자”는 뜻인데, 앞서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선부론’(먼저 부자가 되자)을 주창했다면 이제는 경제 성장과 함께 불평등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중국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기치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서구는 자유 민주주의, 중국과 러시아는 권위주의’ 구도로 프레임을 짜려는 것에 대해 시진핑은 중국은 ‘공동부유’, 미국은 ‘쇠락하는 무질서한 신자유주의’로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진민퇴’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진민퇴는 국유 기업은 약진하고 민간 기업은 후퇴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것이 개혁개방 이전인 전면적인 국가자본주의로 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국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여전히 외국자본 유치 등을 말하고, 민간 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들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민간 기업에 대한 국가 통제와 일부 기업의 국유화와 같은 국가자본주의적 조처는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지난해 중국 정부는 희토류 산업을 양대 국유 기업 체제로 재편했다. 희토류는 미·중 갈등에서 중국이 경제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산업이다.

또 시진핑은 민간 기업 통제도 강화한 바 있다(이른바 ‘홍색 규제’). 2020년에 알리바바의 마윈이 중국 정부의 금융 규제에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가 이후 퇴진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에도 알리바바를 반독점법으로 규제해 3조 원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했다.

이와 같은 공동부유를 두고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조처라고 한다. 한국의 언론들도 시진핑 3기의 공동부유와 국진민퇴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고 보도한다.(물론 성장률 둔화와 부채 위기는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공동부유 같은 정책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진보적?

좌파 일각에서도 공동부유와 국진민퇴와 같은 정책을 진보적이라고 보는 경향은 있다. 〈민플러스〉의 경우,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고 미·중 갈등에서 중국 정부를 지지해 왔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시진핑이 중국을 다시 사회주의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본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도 공동부유를 “자본주의 영역에 대한 탄압”을 강화할 조처라며 진보적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공동부유, 국진민퇴 같은 정책은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권력자들이 하는 말과 실제 체제의 성격을 구분해 봐야 한다. 전두환의 정당은 민주정의당이었지만 그는 민주, 정의와 아무 관련이 없었듯 말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지만 전체 인구의 40퍼센트는 월 1000위안(20만 원)으로 살아간다 ⓒ출처 China Labour Bulletin

오늘날 중국의 사회 불평등은 미국은 물론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보다 더 심하다. 시진핑 정부는 2020년부터 공동부유를 표방했지만 약속했던 부동산세, 상속세 도입 등과 같은 매우 온건한 개혁조차 실행하지 않았다. 되레 경기를 부양하려고 기업에 대한 감세 혜택을 강화했다.

중국 권력자들이 말로만 공동부유를 내거는 것은 불평등으로 인한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뿐이다.

국진민퇴를 통해 민간 자본을 규제하고 국가 영역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주의인 것도 아니다. 국가 통제 강화가 곧 사회주의라고 본다면, 산업의 대부분을 국가가 통제했던 박정희 시절이야말로 사회주의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체제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국가 소유냐 민간 소유냐 하는 소유 형태가 아니라 진정한 동학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중국의 국영 기업도 민간 기업과 다를 바 없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해 왔다. 중국에서 노동자 파업이 국영 기업과 민영 기업에서 별 다를 바 없이 벌어졌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지배 관료들은 개혁개방 이전부터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었고,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으로 자본들 간의 경쟁과 노동자 착취를 꼽았는데, 중국의 국가 부문도 이런 경쟁적 착취의 동학이 고스란히 작동해 온 것이다. 따라서 중국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봐야 그 특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

현재 미·중 갈등처럼 제국주의적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각국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 크게 받고 있다. 각국이 군사력 증강 경쟁을 벌이고 있고, 기술 패권을 위해 반도체 등 첨단 설비 육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지배계급은 이를 위한 재원을 결국 노동자 착취를 강화해 마련하려 할 것이다.

시진핑은 이를 위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 들어 노동자·학생 투쟁에 대한 탄압이 강화된 것이 이를 보여 준다. 또 앞서 말한 홍색 규제도 점증하는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달래려는 것임과 함께 미·중 갈등 상황에서 이견을 억누르며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과 관련 있다.

중국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적 대안은 시진핑이 아니라 그에 맞선 노동자와 학생, 소수민족 등 차별받는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