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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출범:
윤석열 정부의 기만적인 기후 ‘대책’

10월 26일 윤석열 정부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중위)를 출범시켰다.

탄중위는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처음 만들었는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도록 한 기구다. 지난해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돼 법적 지위를 얻어 공식 출범했다.

그런데 탄중위가 출범과 함께 발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전략’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그 이름을 무색하게 하는 김 빼기식 주장들로 시작한다.

“탄소중립은 지속 추진”하겠다면서도, 실제 가리키는 방향은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원전 비중 확대 등 “에너지 정책 재설정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 증대”가 기후 위기 대응보다 에너지 안보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국제적으로 각국 정부가 원전을 확대하고 석탄 발전 활용을 늘리고 있는 상황을 정당화 근거로 댔다.

불쾌하게도 이런 지적은 냉엄한 현실이기는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는 핵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을 내놓았고, 독일과 프랑스는 석탄 발전을 재가동하거나 가동 제한 조처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위해 재정을 지원하고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하는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도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10월 26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전체회의 ⓒ출처 국무조정실

이런 현실은 주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잘 보여 준다. 지난여름 유럽의 폭염과 파키스탄 대홍수 등이 기후 위기의 위험을 보여 줬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당장의 기업 이윤과 국가 경쟁력을 더 우선시한다.

이들이 지난 30년 동안 제시해 온 해법들도 자본주의 원리, 즉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건설됐고,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생산에 뛰어들어도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기존 산업의 이윤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어찌됐든 국제사회에 약속은 했고 이행을 해야 된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상 이런 분위기를 더 강조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고 심지어 언제든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또 그동안 강조해 왔듯이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배터리·전기차 등 기술 개발에 정부 재정을 지원하고 기업 규제를 완화(“개선”)하는 명분으로 ‘탄소중립’을 내세우려 한다.

동시에 국민적 참여와 실천이 중요하다며 에너지 요금 인상을 통해 ‘수요 효율화’를 유도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래 두 차례나 인상된 전기요금의 사례에서 보듯 이 조처는 기업주에게는 관대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김 빼기

2019년 세계 곳곳에서 분출한 기후 운동은 주요 선진국 정부들로 하여금 말로나마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내놓도록 했다.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수천 명 규모의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유럽의 탄소국경세가 대표적이다. 특히 2020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은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으로 온실가스 규제를 활용하려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도 기후 운동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을 취하는 한편, 무역장벽의 유탄을 피하기 위해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는 등 명분을 쌓아 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감축 기간과 감축량 모두에서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해 필요한 수준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기만적인 약속들(탄소포집 기술, 해외 조림사업, 핵발전 유지, 현존하지 않는 기술 활용 등)로 가득찬 엉터리 목표였을 뿐이다. 또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전환’에 필요한 비용과 고통을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가혹한 정책을 예고했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에 냉소를 보내면서도 ‘약속은 지키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전임 정부가 내놓은 약속들이 엉터리라서 거의 고스란히 재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말로만 고수하던 ‘탈원전’ 정책조차 대선을 앞두고 ‘감원전’, ‘탈원전 아니다’하며 주워 담았다. 윤석열이 기세등등하게 핵발전 확대를 밀어붙인 이유다.

보수 정부에 맞설 디딤돌을 놓은 9.24 기후정의행진 ⓒ이미진

9.24 기후정의행진은 국내에서 대중적 기후 운동이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좌파는 이 운동이 윤석열 정부의 엉터리 기후 정책에 도전하는 강력한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후 위기 대응과 평범한 노동계급의 이익을 결합시킬 수 있는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석탄발전소와 자동차 산업 등 ‘전환’이 필요한 부문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고용과 소득을 유지하라고 요구하고, 전기요금 인상 등 고통 전가에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가올 경제 위기에서 투쟁에 나서게 될 노동자들의 요구와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