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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주목받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이야기 《저 낮은 중국》

1990년대 한중 수교가 이뤄진 이래 지금까지 중국과 교류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중국에 관심이 많아져, 중국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그런데 시중에 나온 중국 관련 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중국의 화려한 경제성장”이나 “중국에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후진타오나 장쩌민 같은 ‘성공한’ 중국인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 뿐이고, 정작 지금의 중국을 만든 주체인 민중의 삶을 다룬 책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독자들은 중국 민중의 삶에 대해 알게 모르게 무시하기 쉽다.

라오웨이(老威)가 쓴 《저 낮은 중국》(원제:중국저층방담록)은 중국 민중의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줄 만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후진타오나 장쩌민처럼 “주목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라오웨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로서 인신매매업자, 유흥업소 직원이나 책 도매상, 마약중독자, 철거민, 변소 관리인, 홍위병, 농촌 교사 등 사회에서 천대받거나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정치운동의 희생자들로 그야말로 “저층인”들이다.

라오웨이 역시 1989년 천안문항쟁을 소재로 시를 짓고 영화를 찍다가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 책에 나타난 중국 사회의 모습은 정말로 ‘모순적’이다.

디스코텍에서 일하는 ‘미스 웨이’는 〈황제의 딸〉이라는 중국 영화를 좋아하고, 한 남자에게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신신인류(중국인 중 1980년대 이후 출생자로 서구 소비 문화에 익숙하며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지칭한다)’다.

그런데 ‘미스 웨이’와 달리 미다시 거민위원회 주임처럼 개혁·개방이 대세인 현재에도 여전히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동방홍〉이란 프로그램을 틀어 주민들에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마약·음란물·마작 등을 단속하고, 스탈린이나 마오 사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마오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이 공중변소 벽에 “마오 주석님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인민들이 얼마나 한솥밥(평균주의적 분배방식)을 먹고 싶어하는지” 라고 쓴 낙서가 이와 대조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높은 평가와 함께 존재한다.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사교(邪敎)”로 “1949년 이래 계속된 극단적 이상주의의 정점”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늙은 홍위병 류웨이둥처럼 “문혁 초기 2년 동안 인민은 … 절대적 자유를 누린 거”라며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1949년 이래 중국 공산당 통치가 개인들에게 준 영향을 솔직하게 말한다.

‘인신매매범 첸구이바오’는 개혁·개방 정책 이후 심해진 인신매매업이 늘어난 근본적 이유를 보여 준다.

그는 [범죄와 어울리지 않게] “아주 착실하게 생겼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농민으로서는 “죽어라 일해도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체제가 그를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신매매를 당하는 여성들 중에는 도시로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열망 때문에 속는 경우가 많다는 부분은 농민공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철거민 뤄웨샤는 재개발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고 곧 시외로 이주한 철거민의 상황을 대변한다.

그녀는 개혁·개방 이래 “새로운 변화”는 “부자들이 시내로 들어오고, 없는 사람들은 시외로 쫓겨가는” 거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셴샹가(街)가 재개발 정책으로 들어선 고층건물들 때문에 ‘천마파’ 식당 간판을 보지 않으면 길을 못 찾고, “3대째 이어지던 거리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파’ 펑중쯔와 ‘지주’ 저우수더의 인터뷰는 기존 관료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스탈린주의와 마오 시대의 희생자들이 당한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파’ 펑중쯔는 원래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장래가 촉망되는 ‘공산주의청년단’ 간부였다. 그런데 그가 우파 성분을 가진 여성을 사귀었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당이냐? 여성이냐?”라는 선택을 강요받자 자신이 배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약한 여성을 괴롭히는 것은 “해방 전과 다를 바 없는 사고”라며 ‘여성’을 선택해 ‘우파’가 됐다.

‘지주’ 저우수더는 도박으로 집안을 망친 ‘빈농’ 형에 의해 ‘지주’로 몰려 온갖 정치집회 때 끌려다녔다. 그는 덩샤오핑에 의해서 계급적 호칭이 사라질 때까지 온갖 정치집회 때 ‘우파’로 누명을 쓴 채 비판받았다.

이렇듯 《저 낮은 중국》은 주류 언론이나 책들이 잘 알려주지 않는 중국 민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미스 웨이’나 ‘농민공’, ‘펑중쯔’와 ‘저우수더’ 같은 억압의 희생자, 그리고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에 대한 향수’는 1970∼80년대 남한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군사독재, 이에 대한 향수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점은 동시에 두 나라 모두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국가임을 잘 보여 준다.

이 책의 단점은 각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글이기 때문에 내용이 다소 산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개혁·개방으로 인해 고통받은 민중을 동정하지만, 현 체제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이 중국 민중의 삶을 정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국 민중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사진들과 역자가 만든 중국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 용어에 대한 해설은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책을 읽기 쉽게 한다.

동시에, 중국 현대사 연표에 각 개인들의 역사도 함께 실어서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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