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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SPC) 산재 사망과 청년들의 분노

파리바게뜨(SPC그룹)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대중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비극이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이 처한 끔찍한 노동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뗀 23세 청년이 억울하게 희생돼 원통함을 더한다. 가족의 생계 걱정에 한숨이 푹푹 나오는 고강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던 고인의 삶이 오늘날 대다수 청년들의 고달픈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0월 20일 SPC 본사 앞에서 진행된 ‘SPL 평택공장 산재사망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제’ ⓒ출처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경제 위기와 팬데믹 상황에서 청년 실업률이 무섭게 치솟았다. 몇 년째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청년 노동자의 17퍼센트는 전일제 일자리가 없어서 파트타임으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 학원, 고시 학원을 돌며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뼈 빠지게 준비했는데 취업의 문은 비좁고, 운 좋게 취업이 돼도 대다수 청년에게 안정적 정규직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고작 인턴 계약직, 현장 실습, 시간제 등 저질 일자리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선 청년의 65퍼센트가 첫 직장에서 평균 1년 2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월급이 너무 적고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많았다. 사용자 측의 온갖 멸시와 모멸적인 대우도 한몫했다.

줄지 않는 산재 비극

산업재해도 청년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만 30세 미만 노동자의 사고재해자 수는 2016년 8668명에서 2018년 1만 181명, 2021년 1만 1798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질병재해자 수도 2020년 544명에서 지난해 616명으로 늘었다.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모 군, 2017년 제주 생수공장에서 고교생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한 이민호 군,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설비 작업 도중 목숨을 잃은 김용균 씨, 2021년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철판에 깔려 사망한 대학생 이선호 씨 등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다.

이런 비극은 개인의 부주의나 안전불감증 탓이 아니다. 안전을 지킬 기술이 부족하거나 안전에 투자할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최고 우선순위에 두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가 노동자들을 희생시켰다. 가차없는 이윤 경쟁 시스템에서 비롯하는 기업주의 탐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 정책이 비극의 뿌리다.

청년 노동자의 비극은 노동계급이 보편적으로 겪는 고통의 일부다.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동안,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단독 작업과 과로로 몰리고, 유해 가스에 노출되고, 폭발 사고에 희생됐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노동자들은 기계에 끼여서, 추락해서, 구조물이 붕괴돼서 목숨을 잃었다.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에만 산업재해자수가 12만 2713명, 사망자수가 2080명에 이른다. 매일같이 336명이 재해를 당하고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어도 상황은 조금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되레 지난 6월까지 산업재해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4퍼센트, 그중 사망자는 0.5퍼센트 증가했다.

이간질로 책임 떠넘기기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이 청년 실업과 저질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사악한 이간질일 뿐이다.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대다수 청년들 사이에는 대립선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가령,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후퇴되고 노동개악이 관철되면, 노동시장은 더 열악해질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청년들도 더 열악한 처지를 강요받기 쉽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유례없이 높은 생산성을 창출했다.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기계, 설비, 컴퓨터 같은 것들이 대거 생산과정에 투입됐다. 더 적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부를 생산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만 일해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끊임없는 이윤 경쟁 시스템 속에서 경제 불황이 찾아오면, 높은 생산성이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렇게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산업예비군, 즉 실업자들이 많아질수록 이를 핑계로 고용된 노동자들에게도 더 적은 임금과 고된 노동을 압박한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이런 일이 더 파괴적으로 벌어진다.

오늘날 청년들의 분노는 경제 위기, 반복되는 중대재해, 높은 실업률과 같은 문제의 진정한 원인인 이윤 체제에 대한 분노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체제에 타격을 가할 힘이 있는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인식하는 것으로, 계급정치와 만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