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혹심한 국가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시위를 히잡 착용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요구 운동으로 규정하는 보도들이 많다. 그런 보도에서 이 시위는 흔히 ‘히잡 관련 시위’나 ‘이란 여성 시위’, 또는 ‘여성 차별’ 반대 시위로 불린다.

이 운동은 쿠르드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순찰대에 의해 구금됐다가 의문사한 것에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히잡 착용 자유화나 아미니 사망 진상 규명 등은 여전히 운동의 중요한 요구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란 시위가 여성 차별 반대 시위라는 규정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시위대가 마치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져 있다는 인상을 주는 “여성 시위”라는 말은 잘못됐다.

그러나 언론들의 이런 규정은 히잡 착용 자유화 요구가 이란에서 갖는 의미와 이 시위의 잠재력을 온전히 포착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현재 이란 국가는 1979년 이란 혁명의 격변 속에서 이슬람주의가 부상한 결과로 등장했다. 물론 이란 혁명은 이슬람주의 운동의 산물이 아니라 이란 왕정의 모순이 폭발한 결과였다. 하지만 노동자 운동과 좌파가 자신의 약점과 실책으로 혁명적 대안이 되지 못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슬람주의 운동은 1941년부터 이란을 통치하던 모햄매드 레자 패흘래비 왕정의 현대화·산업화 정책 때문에 주변화되고 몰락하고 있다고 느끼던 일부 성직자들과 중간계급의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이슬람주의는 부의 분배와 사회 정의를 약속하면서 노동자들과 농민과 도시 빈민들(이들은 농촌의 옛 생활 방식에 강한 유대를 갖고 있었다)에게도 매력을 줬다. 이렇게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원리’에 따라 사회를 운영한다는 정치적 프로젝트 쪽으로 민중을 결속시켰다.

(이 ‘이슬람으로 돌아가기’는 기존 사회를 전근대 시대로 되돌리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조하려는 것이고, 기존 지배 질서와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일부 포함했다.)

히잡이 이슬람 전통의 일부이므로 히잡 착용은 현 이란 지배자들이 내세우는 건국 이념의 불가결한 일부이다. 이란 지배자들이 보기에 히잡 착용 자유화 요구는 자신들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다.

통치 근간의 이데올로기

따라서 히잡 착용 자유화는 이란 지배자들이 쉽사리 양보할 수 있는 성격의 요구가 아니다. 현재 이란 국가가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는 까닭이다. 최근 이란 정권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사형까지 선고하고 있다.

물론 히잡 단속의 수위는 저항에 밀려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도 있다. 예컨대, 이번 시위가 벌어지자 도시에서는 지도 경찰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잡 강제 착용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현 이란 국가를 타도하거나, 거의 그런 규모의 거대한 투쟁이 벌어질 때만 실현될 수 있다.

이처럼 히잡 강제 착용이 국가의 건국 이념이자 근본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와 관련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항의는 권위주의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도전으로 금세 발전했다.

현재 시위대가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들을 내놓고 있는지는 아직 정식화(定式化)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의 성격이 히잡 문제를 훌쩍 넘어섰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위의 핵심 기치가 “여성, 삶, 자유”라는 사실도 이를 보여 준다.

이 시위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잡은 ‘바라예’(위하여)는 여성의 복장에 관한 자기결정권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쓰레기통을 뒤적이는 아이들,” “통제 경제,” “더럽혀진 대기,” “멸종해 가는 페르시아 표범”, “내버려진 아프가니스탄 난민” 등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부침을 겪는 중에도 운동이 꾸준히 이어져 온 곳은 대학 캠퍼스다. 그러나 이 운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반향을 얻고 있다. 아직 소수이지만 일부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기도 했다. 특히, 정유소의 계약직 노동자들과 교사 노동자들은 시위를 지지하고 탄압에 항의하는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파업이 노동계급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예컨대, 정유소 계약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파업 주동자들이 체포되면서 빠르게 종료됐다. 그리고 석유 산업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서지 않았다.

현재의 반정부 시위가 정권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투쟁으로 발전하려면 노동계급이 전면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권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노동계급의 요구와 투쟁들을 이 시위와 연결시키고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이는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파업은 아니었지만 이란 노동자들은 2018년과 2019년에 심각한 생계난을 배경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국가가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일부 부문에서 노동자들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투쟁과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정유소 계약직, 교사 노동자들도 바로 그런 노동자 부문이다.

혁명 전략의 문제

심지어, 이란 시위가 처음 제기한 히잡 착용 자유화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정권 자체를 위협하는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해야 하고, 더구나 트로츠키가 말한 연속 혁명의 전략이 필요하다.

제정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트로츠키는, 당시 러시아에서 차르 타도 등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해결할 능력은 오로지 노동계급이 사회주의적 권력 장악을 할 때만 현실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노동계급은 자기 자신의 해방, 즉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잡 착용 자유화도 민주주의적 과제의 하나다. 이란의 맥락에서 이것은 마치 다른 세속 국가들에게 하듯이 제기할 수 있는 간단한 요구가 아니다.

이 애초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권위주의 국가 자체에 맞서 투쟁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동계급의 요구와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이란에서는 이미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란 시위를 여성 차별 반대 시위로 부각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이다. 물론 한국에 있는 우리가 이란 시위를 이러저러하게 규정한다고 해서 이란의 운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좌파는 이란 시위가 현실에서 보여 주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하게 평가하며 운동이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