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말들

이태원 참사 3일이 지난 11월 1일 오후부터 용산구청장 박희영,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서울시장 오세훈, 경찰청장 윤희근, 국무총리 한덕수가 갑자기 줄줄이 유감을 표하며 다들 납작 엎드렸다.

행안부 장관 이상민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도 아니었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1일은 머리를 숙였고, “심심한 유감”을 표했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2036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유럽을 돌다가 귀국해선 말을 아꼈는데 어제는 기자들을 불러 울었고 머리 숙였다.

전날 용산구청장 박희영은 MBC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매뉴얼대로 했습니다.” “이건 행사가 아닙니다. [행사가] 열렸다면 무슨 공간이 [있고] 시작 시간이 있고, 폐회 시간이 있나요?” “이건 축제가 아닙니다.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하겠죠.” 1일 그는 서면으로 “송구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경찰청장은 사과하지 않았다. “현장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일선 경찰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꼬리 자르기를 암시한다. 그러자 일선 경찰은 반발했다. 안전 사고가 우려된다는 보고를 경찰 지휘부가 먼저 무시했다고 폭로했다.

도덕불감증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대표적 특징이 도덕 불감증이라고 하는데, 그런 자질은 이들 같은 사회 엘리트 리더들에게서 잘 발견된다. 재계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출세를 위해 중요한 자질이다.

우리가 태어나 일생을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세상의 비참한 불평등과 비인간적 면모는 우리가 그 끔찍함에 아무리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어느 순간 갑자기 흉포한 맨얼굴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며 충격을 준다.

“국가의 무한 책임”에 동의한다면서도 현행법상 경찰이 통제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국무총리의 말도 역겨우면서도 흉악했다. 참사마저 억압과 통제를 강화할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범죄를 단속하지, 군중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말도 헛소리다. 그렇다면 광화문 집회에는 경찰을 왜 그리 많이 보냈는가. 실제로 경찰청은 참사 이후에도 오히려 대중 운동 단체들의 동향을 사찰하고 보고서를 올렸다.

중대본회의는 일선에서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고 지칭하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로 표현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정부 분향소에는 “이태원 사건 사망자” 라는 말이 큼직하게 붙어있다.

여전히 진실 은폐와 책임 회피에만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압사 당할 것 같아요”

줄줄이 이어진 저자세들은 참사 4시간 전부터 11건의 112 신고가 있었음이 어제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장에 출동한 것은 불과 4건이었다.

그러나 11건의 신고는 경찰의 발표다. 집계되지 않은 신고가 더 있다. SBS에 따르면 저녁 6시부터 밤10시까지 79건의 112 신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다수가 관련 신고일 것이다.

경찰이 발표한 저녁 6시 34분의 첫 번째 신고에 대해 경찰은 “강력 해산 조치”로 해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11건의 신고자들 모두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했고 한 명은 영상까지 보냈지만 말이다.

진상조사가 꼭 필요하다. 진실과 책임을 꼭 밝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애도이며 산 사람들이 할 일이다.

정부는 참사를 정치화하지 말고 애도만 하라는데, 그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주장이다. 행정안전부, 경찰, 서울시, 용산구 등 모두 다 정부 조직들이고, 현 여권 소속이다. 정부 책임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저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 자체가 ‘안전’보다 ‘단속’에 있다.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밤 10시에 경찰은 기자들에게 30분 뒤부터 대규모 마약 단속에 들어간다고 공지했다고 한다.

애초에 윤석열 정부는 이날 마약, 모의총포, 과다 노출, 교통 무질서 행위 단속에 경찰을 투입하기로 했다. 경비·안전 관리 인력 자체가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

윤석열 정부가 내건 “범죄와의 전쟁”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오히려 노동자와 서민을 향한 공격이다.

경제와 안보 위기에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까지 현재 국내외로 심각한 위기에 있다. 위기는 세계적 위기이며, 심지어 초기 단계일 공산이 크다.

권력자와 사용자들은 이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와 서민에게 떠넘기기로 합의했다. 다만, 아래로부터의 저항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은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기만술을 꺼내 들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모두 대대적인 범죄 소탕에 나섰었고, 동서고금 수많은 권력자들이 써먹었다.

그러면 체제 실패와 그들의 무능을 범죄에 대한 분노와 불안의 문제로 돌릴 수 있다. 사람들이 뭉치지 못하게 파편화시키고 국가의 권위 아래 순응시키는 데에도 유리하다.

강화된 경찰력은 어느 순간 직접적으로 시위와 파업과 대중 운동 조직들을 향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쟁’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지배계급의 전문인 부패와 산업재해 범죄는 성긴 체로 걸러서 솜방망이로 처벌하고 기업의 반노동·반환경 행위는 “규제 완화”로 면해 주거나 아예 대놓고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극심한 상황에서 엄벌주의는 결국 대부분 노동자·서민을 향한다. 따라서 윤석열의 범죄와의 전쟁은 대중 억압과 통제를 위한 기만술이다. 진정한 목적은 부당한 일에 자기 목소리 내고 항의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위축시키는 데 있다.

정부는 계속 기만하고 술책을 부리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민심을 잃은 정부와 참사는 위험한 조합이다. 여러 외신들의 시각도 그러하다.

진실이 일부 드러나면서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분노하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