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번화가의 한 골목에서 156명이 꼼짝 못 하고 목숨을 잃고 만 이태원 참사. 일상의 공간이 참사의 현장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었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통행 통제와 구급 대비만 했더라면 이 대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적어도 참사 4시간 전 최초 112 신고자의 절박한 SOS를 무시하지 않았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점이 분명해지자 참사의 슬픔과 충격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공분이 매우 커지자 윤석열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일들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번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핵심 성격 규정은 “대비할 수 없었던 사고”이다.

그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윤석열은 “참사”가 아니라 “사고”로,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로 정부 용어를 통일시켰다. 유가족들과 평범한 사람들은 참사라는 말로도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할 비통함을 느끼고 있는 순간에 정부 책임 회피적인 언어를 개발한 것이다.

2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국무총리 한덕수는 뻔뻔하게 변명했다. “주최가 없는 자발적 행사는 [정부의] 선제적 안전 관리가 어렵다.”

사실 참사 이후 윤석열의 온 신경은 ‘어떻게 하면 비판과 책임을 면하고 하루 빨리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에 가 있다.

11월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실내체육관에 이태원 대참사 피해자들의 유실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날도 피해자와 유족들이 찾아와 유실물 및 유품들을 찾아갔다 ⓒ조승진

10월 30일 윤석열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지만, 바로 다음 날 경찰청은 대통령실과 행안부 장관 보고용으로 의심되는 내부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은 이 문건에서 과거 참사 사례와 유가족·언론·사회운동단체 등의 동향 파악 등을 꼼꼼히 분석해 정부 책임론 확산 방지책을 다방면에 걸쳐 제시했다.

특히, 이 문건은 유가족을 회유하기 위한 보상금 문제 등 각종 대책을 제시하며 유가족과의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처럼 집단적 투쟁에 나설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유가족과 정부 직원들을 1대1로 매칭해서 관리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저의가 의심되는 까닭이다.

유가족들을 뿔뿔이 흩어 놓는 것은 결코 유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씨는 이태원 참사 직후에 이렇게 강조했다. “가장 먼저 유가족분들이 한 곳에 편안하게 모여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각자 흩어져서 고통과 어려움을 혼자 견뎌 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참사 당일 대응

한편, 지난 2일 대통령실은 참사 당일 윤석열의 행적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참사 당일 윤석열은 오후 11시 1분에 상황을 인지했다. 112에 첫 신고가 접수된 오후 6시 34분으로부터 4시간 30분이 지나 현장은 이미 참혹한 상황이었다.

윤석열은 보고를 받은 후 20분 동안 “상황 점검”을 한 뒤 첫 번째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모든 관계 부처에서는 구급과 치료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지시 내용은 11시 36분 언론에 배포됐고 직후 언론 속보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심쩍은 사실이 드러났다. 재난 대응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장관 이상민이 11시 20분 행안부 내 전체 문자를 통해서야 참사 사실을 인지했다고 밝힌 것이다.

경찰청장 윤희근은 심지어 윤석열의 첫 지시와 언론 보도가 나오고 38분이나 지난 10월 30일 0시 14분에야 참사 발생 사실을 인지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경찰이 가장 먼저 출동하는 기관 중 하나인데, 윤석열도 행안부 장관도 경찰청장과 소통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윤석열은 첫 보고를 받자마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며 먼저 자신의 ‘신속한’ 대응 지시를 언론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시간에 형식적 지시와 언론 대응을 앞세운 것 아닌가?

꼬리 자르기

현재 경찰은 참사 현장의 CCTV를 확보해 당일 현장에 있었던 참가자 중에서 속죄양을 찾으려 하는 듯하다. 대참사의 책임을 한두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경찰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한편, 참사 4시간 전부터 쏟아진 112 신고를 경찰이 무시한 사실이 드러나자 경찰청은 녹취록 공개 뒤 용산경찰서 압수수색 등 수사에 착수했다. 기껏 경찰서장(평검사와 같은 4급 서기관)을 속죄양 삼는 것은 케케묵은 꼬리 자르기 수작이다.

10만이 넘는 규모의 군중 동선을 안전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대참사로 이어지게 만든 책임은 그보다 훨씬 윗선에 있다. 주된 책임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지침도 없었던 정부의 수반, 윤석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경찰청장이나 행안부 장관 정도 해임으로 책임을 묻기에는 참사의 규모가 너무 크다. 게다가 정부의 참사 대응도 대중의 분노와 저항을 단속하는 데 급급할 뿐,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참사를 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유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도 불쏘시개 전동차를 만든 잘못된 법과 제도,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지 못한 국가의 책임에 집중해야 했는데 정부는 방화범과 승무원 수사에만 집중했어요. 개인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위험한 공간을 만든 국가의 책임이 더 큽니다.”

윤석열은 지난 8월 수재 피해로 14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을 때도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무한 책임”을 운운했다. 그러나 막을 수 있었을 참사는 반복됐고 윤석열의 입발린 말도 반복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가 보통 사람들의 안전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비극적으로 보여 준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정부 지도자 윤석열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