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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역 산재 사망 등 잇딴 철도 사고:
정부의 인력‍·‍예산 감축이 낳은 비극

11월 5일 저녁, 안타깝게도 코레일(철도공사)에서 근무하던 30대 청년 노동자가 숨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열차 차량을 연결하고 이동시키는 입환 작업을 하다가 열차에 치인 것이다.

이번에 숨진 청년 노동자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동료(동기)의 다리 절단 사고를 경험했다고 한다. 당시 충격을 받아 직장을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꾹 참고 일하던 와중에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오봉역은 전체 철도 화물량의 36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고 노동강도가 높은 곳이다. 입환 작업은 한 량에 40톤이 넘는 열차 사이에 들어가 열차를 붙였다 뗐다 하는 힘든 일이다. 노동자들은 “두 시간만 작업해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고된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열차가 다니는 선로 위를 오가며 일하기 때문에, 충분한 안전 인력과 안전한 이동 통로를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용자 측은 이 같은 조처를 마련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위험을 방치했다.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30대 청년 노동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오봉역 사고 현장 ⓒ출처 전국철도노동조합

인력 부족

신경배 철도노조 청량리역 지부장은 말했다.

“3명이 하기에도 힘든 작업을 2명이 하면서 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동안 사측은 혼자만 아니면 된다며 2인이니까 불법은 아니라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열차가 선로에 제대로 진입하는지를 확인하는 노동자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사고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사고 직전 다른 화물열차 작업을 할 때 열차의 진로를 잡아 주는 선로전환기가 고장 난 게 드러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개선도 없었다. 오봉역은 장비와 안전 시설이 낡고 부족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고 위험성이 높은 곳으로 악명 높다.

문제는 오봉역만이 아니다. 올해 벌써 철도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봉역 사망 사고 다음 날에는 영등포역에서 탈선 사고가 벌어졌다. 승객 275명을 태운 무궁화호가 영등포역에 진입하던 중 차량 6량이 탈선한 것이다. 이 사고로 20여 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잇따른 안전 사고는 노동자‍·‍승객의 안전보다 수익성을 우선한 정부와 사용자 측의 우선순위가 낳은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예산과 인력을 강력하게 통제해 왔다.

최근 2년간 코레일 측은 정부에 인력 861명을 증원하라고 요청했다. 이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중 125명만 승인했다.

안전 설비에 대한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입환 작업 노동자 사망 사고가 계속 발생하자 코레일 측은 안전 설비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는 거듭 휴지 조각이 됐다.

엉뚱한 책임 전가

고용노동부는 코레일 사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코레일 사장은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사용자 측은 적자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며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에 열을 올려 왔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나 몰라라 해서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과 달리 비교적 신속하게 코레일 사장을 입건하고 압수수색 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통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민주당 친화적인 공공기관장들을 물갈이하는 숙정에 명분으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는 원희룡의 엄포가 뜻하는 바다.

또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공격도 벌이고 있다. 국토부는 영등포역 무궁화호 탈선 사고에서 노동자들의 태만이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봉역 사고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이) 안전규칙만 지켰으면 막을 수 있었다”거나 “2인 근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민영화와 구조조정 추진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할 수도 있다. 그동안에도 정부는 철도에서 안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코레일이 관제권, 차량 정비 등을 독점한 탓”이라며 민영화 추진을 정당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거듭 드러난 바는 정반대다. 민영화와 구조조정은 안전을 위협하고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윤석열 정부도 공공기관 “효율화”를 강조하며 인력 감축, 정비‍·‍유지보수 업무 등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코레일 사용자 측은 인력을 2000여 명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는 지금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힘들어 하는 철도 노동자들을 더한층의 고통으로 내몰 것이다.

원희룡의 ‘정치 쇼’에 항의하는 철도 노동자들 정부는 인력을 확충하지는 않으면서, 철도 사고를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이용하려고만 한다 ⓒ출처 전국철도노조

예견된 참사

철도 노동자들은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11월 9일 영등포역을 찾아 ‘정치 쇼’를 하려던 원희룡은 노동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국토부가 주범이다!”, “안전 인력 확충하라!”, “정원 감축 철회하라!”.

원희룡은 직원 몇 명을 불러 하려던 간담회를 철도노조와의 간담회로 거짓 포장한 것이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잇따른 철도 사고는 이태원 참사와 마찬가지로 막을 수 있었던 예견된 참사였다. 거듭된 안전 사고, 노동자들의 경고와 항의가 이어져 왔지만, 정부와 사용자 측은 묵살했다.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용자 측의 우선순위에 도전해야 한다. 이를 위한 투쟁을 윤석열 퇴진운동 등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분노와 연결시킨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