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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의 전쟁 ─ 고통 전가 위한 거짓 명분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전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이 처음 이 표현을 쓴 이래로 전 세계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이 ‘전쟁’은 여러 나라에서 저항 운동을 억누르는 명분으로 사용됐지만 엄청난 희생을 낳았을 뿐 정작 마약 공급과 수요 어느 한쪽도 줄이지 못했다.

그래서 이젠 적잖은 사람들이 그 진정한 동기와 효과를 의심한다.

마약류 범죄가 늘고 있다는 발표와 보도는 윤석열 정부 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2020년 부산에서 대마초를 피운 사람이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여러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정말로 마약류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얼마나 늘어났을까? 마약류 사용으로 인한 폐해는 줄여야 하지 않을까?

검찰의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이하 백서)를 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늘어난 것은 사실로 보인다.(아래 그림) 전문가들은 적발되지 않은 사례(암수율)를 고려하면 실제 사용자 수는 적어도 20만~30만 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한다.

마약 공급이나 유통이 아닌 단순 사용을 범죄화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조처는 마약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없다 ⓒ자료 출처 검찰,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

정부는 마약류를 크게 ‘마약’, ‘향정신성의약품(향정)’, ‘대마’로 구분하는데 각각의 약물의 특성은 매우 이질적이다.

10년 전보다 전체 마약류 사범이 6898명 늘었다. 가장 큰 비중(39.6퍼센트)을 차지하는 것은 대마 관련 마약류 사범이다. 전체 마약류 사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대마의 경우 마약으로 분류해 사용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지나치게 많은 양을 투여할 경우 환각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중독성이나 독성 면에서 술이나 담배보다 덜하다. 네덜란드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사용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 이유다.

그래서 최근에는 검찰·경찰도 대마초보다는 필로폰이나 프로포폴 같은 향정신성의약품 사용을 크게 사건화하곤 한다.

‘마약’ 사범의 경우 “대부분은 농촌, 산간 및 도서지역 등의 고령층 주민들이 관상용, 가정상비약 및 가축의 질병 치료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양귀비를 밀경작한 것을 단속한 결과”다.(백서) 이 비중도 전체 마약류 사범의 11퍼센트나 차지하고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전체 마약류 사범의 16.9퍼센트를 차지한다.

이처럼 마약 범죄가 크게 늘어 사회가 위험해졌다는 정부의 주장은 과장된 면이 있다.

정부는 마약류를 사용한 뒤 저지르는 극히 일부의 강력 범죄 사례를 부각하며 공포를 부추긴다.

그러나 마약 사용이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는 주장의 근거는 빈약하다. 백서를 보면 “마약류 투약 환각 상태 2차 강력 범죄”는 살인, 강도, 인질극 등을 모두 더해 최근 5년간 매년 10건 안팎으로, 사용자 수를 20만 명이라고 가정해도 ‘전체 인구 대비 강력 범죄율’보다 한참 낮다.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

마약류 사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향정은 2012년 7631명에서 2021년 1만 631명으로 39퍼센트 증가했다. 최근 적발된 밀매 사례를 보면 그 양이 크게 늘어났고 시중 가격도 내려간 것으로 보아 공급과 소비 모두 늘어난 듯하다.

이 약 중에 일부는(필로폰, GHB 등) 성범죄 등에 사용되기도 하고 특히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에도 무척 해롭다. 따라서 이런 약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마약 공급이나 유통이 아닌 단순 사용을 범죄화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조처는 마약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없다.

미국의 유명한 비영리기구 퓨(PEW)자선기금이 2018년 3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 내 마약 범죄로 수감된 사람이 30만 명에 이른다. 이는 1980년 2만 5000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고 형량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러 주를 비교한 결과 “마약 범죄 수감률과 마약 사용률, 마약으로 인한 사망, 체포율 사이에는 아무런 통계적 연관성이 없었다.”

마약 사용의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다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본주의하에서 일상 생활의 권태와 스트레스, 우울감을 잊으려고 마약에 손을 댄다. 또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국내 전체 향정 사범의 40퍼센트는 무직이었다.

합법적(의료용) 향정 사용 통계를 보면 2012~2021년 사이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진단받은 환자의 수는 114만 명에서 175만 명으로 53퍼센트나 늘었다. ‘마약류 사범’의 100배가 넘는 것이다. 이들이 처방받은 약도 연간 6억 5712만 개에서 12억 8270만 개로 갑절로 늘었다. 마약 사범 통계와 마찬가지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10~20대 비중이 크게 늘었다.(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

이런 통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원인 진단은 대동소이하다. 장기화된 경제 침체와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기후 위기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특히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많은 청년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류 사용이 늘어나는 현상도 그 일부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치료다. 심지어 국가 기구들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마약류 사범 5명 중 1명은 중독이라는 ‘임상적 증상’으로 마약 범죄에 가담 … 치료적 개입이 재범 방지의 주요 전략이 될 수 있음.”(한국 형사·법무정책연구원,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 2021)

그런데 이들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만 낳고, 그럴수록 직장을 구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면 약물에 대한 의존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규제 당국도 경험적으로 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평소 수사 관행은 수사 실적에 맞춰져 있을 뿐이다. 이들도 실제 마약 범죄를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특히 향정 관련 범죄의 경우 수사는 압도적으로 내부 제보에 의존하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진정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마약 공급책들에게는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 수십 년 동안 마약류에 중독됐다가 어렵게 벗어나 지금은 민간 재활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임상현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유통업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수사받을 때 제가 아는 정보를 검찰에 넘겨 줘요. 전부 알려 주진 않습니다. 제가 유통업자 5명을 알고 있으면 2명의 정보를 주는 겁니다. 이렇게 수사에 협조를 하다 보면 형량이 줄어들어요. … 그렇게 형량이 줄어들고 투옥된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되면 또 다시 유통업을 합니다.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죠.”(〈투데이신문〉, 2021년 3월 22일치)

마약과 불평등, 자본주의

마약 중독은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치료에는 마약이 사용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투약을 중단할 때 생기는 금단 증상 때문에 갑자기 투약을 중단해선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보다는 몸에 덜 해로운 마약을 사용해 서서히 그 양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이 표준 요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마약 사용을 범죄화하는 분위기가 강할수록 이런 치료법도 금기시된다. 당국의 감시와 통제가 까다로워지고, 의료진조차 자칫 ‘공범’ 취급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면서 치료 지원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중독자는 몇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의 ‘치료보호 지정병원’을 찾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 본인이 매달 120만~150만 원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그 뒤로도 1년 이상 2~4주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는 데 회당 10여만 원이 든다. 그런데 2021년 치료보호 인원 가운데 검찰이 치료를 의뢰한 경우는 전체 이용자 280명 가운데 1명뿐이다.

올해 예산도 4억 1000만 원밖에 안 된다. 지자체 예산을 더해도 8억 2000만 원이 전부다. 환자 164명이 한달 입원하면 한 해 예산이 소진되는 셈이다.(〈머니 투데이〉, 2022년 10월 1일치)

그래서 실제로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약류 사용자도 벗어나기가 어렵다.

전국 지정병원 21곳에서 치료비 지원을 받은 환자는 10년간 2000여 명뿐, 두 곳을 제외하곤 사실상 중독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출처 KBS1 뉴스9(화면 캡처)

반면, 부유층과 권력자들의 마약류 사용은 법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문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설사 중독이 되더라도 언제든 치료받을 수 있고 직장에 복귀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이 충분한 요양을 할 수 있다.

마약과의 전쟁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잘 보여 준다. 마약류 중독의 책임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우고, 알량한 재정 지출이 아까워 도덕적 비난에만 열을 올린다. 사람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다.

마약을 범죄화하면서 같은 성분인 향정신성의약품을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은 장려된다. 이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고통과 무료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몸부림은 비난과 처벌 대상이 되고 진정한 범죄자들의 책임은 면제해 준다.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은 사람들이 마약류를 사용하게 되는 근본 원인, 즉 소외와 차별, 불평등과 지루함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그 피해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시도다.

무엇보다 체제의 지배자들은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와 어젠다를 강화하고자 한다. 윤석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도 심화하는 경제·안보 위기 하에서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단속하고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 전가하기 위함이다.(관련기사)

마약과의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마약과의 전쟁’의 또 다른 효과 — 이주민 통제, 인터넷 감시 강화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으로 얻고자 하는 효과가 더 있다.

하나는 이주민에 대한 감시·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검찰은 마약과의 전쟁의 한 축을 “국경단계에서의 밀반입 시도 단속”(검찰)이라고 보고 있다. 경찰도 “조직적인 밀반입”과 “국내 체류 외국인에 의한 유통·투약 행위”를 집중 단속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는 지난 5년 사이 마약류 밀반입 건수가 가장 많았던 태국·중국·베트남 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국내 이주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는 최근 태국 출신 이주자들이 제주도 무사증 입국을 악용해 대거 밀입국했다며 전자여행허가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검찰 등이 강조하는 또 다른 국내외 유통 경로는 다크웹, SNS 등 인터넷이다. 경찰은 10~20대의 마약류 유통을 막기 위해 “다크웹을 포함한 인터넷의 상시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정부의 인터넷 감시는 정적이나 노동운동, 좌파에 대한 사찰 수단으로도 이용될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조처에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