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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제도 폐지하라

사형 제도 폐지하라

김덕엽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이 사형당한 일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중국은 2001년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한 넉 달 동안 1천7백81명을 사형시켰고 최근까지 3천여 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중국은 사형선고와 집행에서 세계 1위다. 언론은 이 사건이 알려지자 한 목소리로 중국의 낮은 인권 의식을 비난했다. 정부도 뒤늦게 ‘유감’이라며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에 중국측의 사형 통보 서류를 먼지 더미에 처박아 두어 신모씨가 사형당할 때까지 알지도 못했다. 한국 정부 역시 사형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1945년 이후 1천6백34명이 사형당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매년 19명이 사형당한 셈이다. 1998년 이후로 사형 집행은 없지만 지난 8월 말 현재 사형수는 51명이다. 여전히 매년 평균 20건의 사형이 선고되고 있다. 김대중은 한때 사형수였고 노벨평화상도 받았지만 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다.

한편, 최근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2000년에 한 여론조사 결과,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은 43퍼센트나 되었다. 1994년에 조사했을 때 20퍼센트였으니 두 배나 많아진 것이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라는 여론이 높아진 데는 한국의 사형제도 실태를 알리고 사형 폐지를 위해 활동해 온 단체들의 노력이 컸다.

한국의 사형제도 폐지 운동은 1989년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이하 사폐협)가 만들어지면서 물꼬를 텄다. 당시 사형수가 가장 많이(90퍼센트 정도) 수용돼 있던 서울구치소에서 재소자 교화 활동을 벌이던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들이 지금의 사폐협을 이끌고 있다. 사폐협과 함께 2001년 4월에는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등 종교계가 모여서 만든 ‘사형제도 폐지 범종교연합’이 사형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두 단체는 지난 10월 30일에 국회의원 1백55명이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11월을 ‘사형 폐지 촉구의 달’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범죄 억제 효과?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법원·검찰·법무부·헌법재판소는 하나같이 “사형제는 흉악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국가는 흉악범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며 폐지를 반대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형제도가 “위하력이 강한 만큼 … [범죄예방]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범종교 연합이 옳게 지적하듯이 “지금까지 사형집행이 계속되었지만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사형이 범죄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미국에서 인구·경제 여건 등이 비슷한 조건에 있는 미시간·인디애나·위스콘신·일리노이주를 비교해 보면 사형제도를 폐지한 위스콘신 주의 범죄 발생률이 가장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사형제도가 있었을 때 살인범죄 발생율이 9.22퍼센트였던 반면, 폐지한 후에는 7.43퍼센트로 오히려 낮아졌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28개 국가에서 1천4백57명이 사형당했다. 중국(1천 명)·이란(최소 1백23명)·미국(85명)·사우디아라비아(75명)가 전세계 사형 집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사형제도를 비판했던 미국은 사형 집행률이 세계 3위다. 그런데도 미국의 강도·폭력·살인사건 발생률은 세계 1위다. 사형제도는 범죄를 억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범죄를 낳는 사회모순들을 숨기고 모든 책임을 한 개인에게 돌리는 역할을 한다. 사형수 대부분은 가난, 소외, 억압 등으로 절망해 좌절한 결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한 예로 1997년에 사형당한 김용제 씨는 1991년 스무살에 시력 장애로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승용차를 타고 여의도 광장을 질주해 미처 피하지 못한 어린이 2명을 죽였다. 〈조선일보〉는 ‘지존파’ 같은 흉악범은 사형당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존파가 법정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말했듯이 범죄는 가난과 사회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 이들을 죽인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비난받아야 할 것은 범죄를 낳는 체제지, 좌절한 개인이 아니다.

제도적 살인

사형은 국가가 저지르는 계획적인 살인이다. 많은 국가들이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찾기보다는 개인을 속죄양 삼아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사형제도를 유지한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민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국가가 사형이라는 합법적 살인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한다. 국제 앰네스티는 사형제도가 ‘살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살인’이라는 논리를 공식화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사형수의 대부분이 격정적인 심리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면 사형은 재판, 법무부장관의 명령, 교도관의 집행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철저히 계산된 살인이다. 사형 집행에 참여한 교도관들의 대부분은 “사형이 법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살인”이라고 말한다. 사형을 집행해 본 한 교도관은 “사형수를 매단 줄이 끊어져 새 줄로 바꾸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형수를 보니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사형의 또 다른 큰 문제는 오판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1976년 이후 사형이 선고된 4백86건 가운데 무려 7분의 1이 무죄로 판명됐다. 1973년 이후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 중 98명이 무죄로 풀려났다. 일리노이 주에서 사형이 선고된 2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9명이 무죄로 입증됐다. 이들 중 6명은 가난한 흑인과 멕시코 출신자 등 소수 민족이었다. 이들은 유능한 변호사를 구할 돈이 없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해 죽음의 코앞에까지 갔던 것이다. 사형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 대부분은 오판으로 사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통계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쏟아질 비난이 두렵기 때문이다.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사형의 위헌 여부 심사에 참여한 김진우 재판관은 “인간이 하는 재판인 한 오판이 있을 수 있고 그 경우 집행을 마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원상회복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실토했다.

한편, 사형제도는 첨예한 사회 갈등이나 전쟁 시기에 좌파들을 억압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전쟁 직후인 1954년에 68명, 박정희 정권이 독재 체제를 강화했던 1974년에 58명, 전두환 정권 시절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등 반정부운동이 심각했던 1982년에 23명이 사형당했다.

전체 사형 선고 가운데 국가보안법 위반은 15.6퍼센트로 세번째이다. 1968∼1997년에 사형당한 7백77명 가운데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당한 사람은 1백29명(16.6퍼센트)이었다.

최근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국가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일본·중국·남한·북한을 포함한 86개 국가가 여전히 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도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가 끝날 때까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려면 더욱 광범한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해야만 한다. 이 나라에서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 폐지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