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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인도-태평양 전략:
한미동맹 강화로 위험한 한 걸음 더

11월 13일 한미일 정상회담은 삼국의 협력 강화를 약속했고, 이는 중국·북한 등의 경계와 반발을 샀다 ⓒ출처 백악관

11월 11일 윤석열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처음으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내용을 소개했다.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보고서 형태로 공개될 예정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과 일본이 먼저 내놓은 전략과 같은 이름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거센 도전을 꺾고 패권 지위를 유지한다는 계획이었다.

태평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이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은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사는 곳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60퍼센트를 차지하며, 세계 경제 성장의 3분의 2가 이 지역에서 이뤄질 만큼 역동적인 곳이다.

미국은 이러한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에 맞서 지배력을 유지해야 자국 패권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남중국해는 해상 운송의 절반이 지나는 중요한 바다로,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경제는 높은 성장 잠재력으로 강대국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은 자신의 전략을 발표할 장소를 동남아시아로 선택한 것이다. 미국·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이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도 나름대로 도모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는 것은 미국의 패권 전략에 더한층 협력하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실도 “미국과 보폭을 맞추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우선순위 문제

윤석열은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도 반대한다고 했다.

이는 모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에 유리한 기성 국제 질서를 옹호하면서 강조해 온 표현이다. 11월 13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이 점은 좀 더 직설적으로 강조됐다.

윤석열은 “아세안과의 연합훈련에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미국 주도의 군사 협력이나 군사 연습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윤석열은 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 전기차·배터리·디지털 분야의 협력 강화를 아세안 국가들에 제안했다

윤석열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여러 곳에서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의 발언이 “미 국무부 담화 듣는 것 같았다”며, “신냉전 질서로의 회귀”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냉전 시대처럼 지금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한쪽을 완전히 선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 9월 SK 회장 최태원은 수출 주도 경제인 한국이 “[미·중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버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도 자신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략의 주요 원칙의 하나로 애써 “포용”을 꼽는 까닭이다. 아마 곧 공개될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도 중국을 직접 겨냥한 진술은 피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협력 강화를 우선시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에 좀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실장 김성한은 지난해 고려대 교수로서 공저한 논문에서 “미국 또는 중국이라는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면서도, 우선순위는 한미동맹에 두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혜자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네트워크의 핵심 역할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대중국 전략자산이자 미국에 대한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 소비재나 생산재 교역이나 투자는 중국과의 기존 관계를 유지해 나가되, 반도체와 ICT[정보통신기술] 분야만큼은 미국과 동맹을 맺어야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한은 중국이 우위를 점한 동남아 개발원조에 한국도 뛰어들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남아로 전략적 시야를 넓히면 한미동맹에 기여하면서 나름의 이익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 3월에 열릴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미국 등과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미국이 ‘권위주의’ 중국·러시아의 도전에 맞선 자국의 패권 추구를 정당화하고 동맹을 결집하려고 소집하는 회의이다.

또, 윤석열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열도 머리 위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가는데 [일본이] 국방비를 증액 안 하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하며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두둔했다.

윤석열의 이런 행보는 미·중 갈등에서 주로 비롯하는 인도-태평양 일대의 불안정을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정세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장기짝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일본의 대중 압박·봉쇄 전략에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바람에 한국이 “진영 대결의 장기말[장기짝을 뜻함]”이 되게 됐다고 옳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민주당 인사들은 윤석열 정부가 기존의 “균형 외교” 기조를 무너뜨렸다며, 그 반면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거리를 둠으로써)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실천적으로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의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한미일 동맹에 반대하는 문제에서 민주당은 전혀 미덥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갈등 속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질서는 점차 불안정하고 유동적이 되고 있다. 이런 조건하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국익을 챙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일조하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