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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협상론 솔솔 ⋯ 그러나 전쟁은 끝날 듯하지 않다

대규모 정전으로 보호소에 모인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몸을 녹이며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있다 ⓒ출처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DSNS)

우크라이나인들이 제2차세계대전 이래 가장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군이 인프라 시설을 집요하게 공격해 전기와 수도 등 필수 서비스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23일 키이우에서는 개전 이래 가장 심각한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다음 날 키이우 주민의 70퍼센트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땔감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아파트에 살아 나무를 땔 수 없는 주민들은 집에서 나와 공동 피난 텐트 같은 곳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추위만이 문제가 아니다. 전기가 부족하면 병원이나 수도 등 다른 필수 서비스 시설도 마비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주택 파괴와 인프라 손상으로 인한 전기·연료 부족은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10월 초 전략적 요충지인 크림반도로 연결되는 다리가 폭파된 이후 러시아군은 인프라 시설을 집요하게 공격해 왔다.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철수한 이후 전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서 작전이 더뎌지고, 러시아의 후퇴로 전선이 짧아지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상대편의 취약한 곳을 찾기도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목표는 서방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과 러시아 측의 거듭된 패착 때문에 계속 변화해 왔다. 현재 러시아는 기존 점령지에 대한 장악력을 굳혀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회랑’을 확보한 것을 성과로 내세우려는 듯하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전력 인프라 등을 공격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고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듯하다.

한편,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계속 무기를 쥐어 주며 러시아의 힘을 빼고, 동맹국들을 규합하며 중국과의 더 큰 경쟁을 준비해 왔다. 이런 패권 경쟁을 위한 계산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겪는 고통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11월 29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이 대리전을 지속하자는 결의를 모았다. 나토 총장 스톨텐베르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토 동맹국들은 전례없는 지원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고 계속해서 제공할 것이다. 인프라 재건을 도울 것이고, 당연히 방공 체계도 계속 지원할 것이다.”

스톨텐베르그는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접적 이유였다. 사실, 불발된 3월 말 협상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휴전 조건으로 걸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꺼내 들며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멈추지 말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

또, 부쿠레슈티에 모인 외무장관들은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에 관한 기밀 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이 전쟁을 발판으로 미국과 중국의 더 큰 제국주의적 갈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미치광이 전략”

러시아의 잇따른 군사적 후퇴 후 전선이 교착되자 언론들은 휴전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푸틴은 이 전쟁에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있다. 그러려면 푸틴은 어떻게든 성과로 포장할 만한 결과를 내야 한다.

서방의 막대한 지원에 고무된 우크라이나 정부도 현 상태에서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 서방 또한 러시아가 뭔가를 얻어 가는 모습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양측 다 전쟁을 지속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상호간의 조율 없이 이뤄지는 치열한 경쟁이기에 상황은 쉽게 안정화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각자가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고 하면서 전쟁이 격화될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의 닉슨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전임 정부를 몰락시킨 베트남 전쟁을 물려받은 닉슨은 북베트남을 협상장으로 불러내려고 후한 약속과 극단적인 위협을 결합하는 “미치광이 전략”을 폈다. “‘닉슨이 화가 나서 핵 버튼을 누르려 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을 흘리면, 호치민이 이틀 만에 파리로 달려와 평화를 구걸할 것”(닉슨의 보좌관 홀드맨이 전한 닉슨의 말이다)이라는 발상이었다. 이런 발상에 기초해 닉슨 정부는 1969년 봄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폭격해 전쟁을 확대했다.

게다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쟁은 계속될 수 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은 1973년 1월 북베트남과 파리협정을 체결하기 직전인 1972년 12월에 가장 파괴적이었던 하노이·하이퐁 폭격을 자행했다.

한국전쟁 때도 휴전 협상이 1951년 7월에 시작됐지만 전쟁이 끝나기까지는 2년이 더 걸렸다.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끝내려는, 무의미하고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이번 전쟁에서도 서로의 패를 모두 확인하기 전까지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될 것이다. 그럴수록 확전과 핵전쟁의 위험도 커질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휴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과 상관없이 제국주의적 패권 경쟁을 계속해서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