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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서구에서의 히잡 착용, 맥락화하기

이란에서 히잡 의무화에 반대하는 운동은 독재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의 일환이다 ⓒ출처 SalamPix

이란 반정부 시위가 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악명 높은 “지도순찰대”의 직무를 정지시키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았지만, 동시에 탄압의 수위도 높였다. 현재까지 400여 명이 넘는 시위 참가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됐으며, 두 명은 사형까지 당했다.

이 시위를 촉발한 것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순찰대”에 연행돼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이었다. 경찰 조직의 일부인 “지도순찰대”는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구이다.

이란에서는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화장을 하거나, 너무 밝은 색의 옷을 입거나, 미혼 남녀가 함께 걷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체포된 사람들은 지도대원에게 뺨을 맞거나 곤봉으로 구타를 당하고, 길게는 수개월까지 구금되기도 한다.

남성도 ‘서구식’ 머리를 한다거나 짧은 바지 등을 입는다면 처벌받는다.

이슬람주의

이란에서는 언제부터 이처럼 이슬람 전통의 엄격한 적용이 대중에 강요되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이슬람주의 성직자들이 주도한 반혁명과 밀접하게 관련있다.

1978~1979년 이란에서는 부패하고 억압적이던 친미 왕정에 맞선 혁명이 일어났다. 학생, 여성, 빈민, 전통 시장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참가했고, 결정적으로 석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파업이 확산되자 왕정은 무너졌다.

그러나 혁명의 주도력을 두고 벌어진 정치 투쟁에서 중간계급을 대변하는 이슬람 성직자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이슬람주의는 친미 왕정하에서 추진된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주변화됐다고 느낀 일부 성직자들과 중간계급의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근대화·산업화가 낳은 모순의 해결책을 자신들이 생각한 ‘이슬람 원리’에서 찾으려 했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좌파뿐 아니라) 권력자들을 비난하고 사회 정의와 부의 재분배를 약속하며 대중의 지지를 모았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원리’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그들은 이미 발전한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관계를 무시한 채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던 7세기의 이슬람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없었다.

히잡 착용의 의미

히잡 착용의 의미도 같을 수 없었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은 남성과 여성이 옷차림을 “정숙”하게 할 것을 주문하며, 특히 여성에게 신체의 “은밀한 부위와 가슴을 가리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던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머리 가리개는 흔한 복장이었다. 상인 출신인 무함마드는 주요 무역로였던 아라비아 반도와 그 주변 지역을 돌아다녔고, 그곳에서 발흥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 관행과 경전 텍스트에서 머리 가리개 등 많은 것을 차용했다.

그러나 이후 이슬람 제국에서 히잡 착용이 갖는 의미는 초기와 달랐다.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히잡 착용은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구분 짓는 표지이자 ‘문명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히잡은 주로 지배계급과 도시 상류층 여성들이 착용했고, 점차 피지배 계급으로도 착용이 확대됐다. 하지만 결코 제국의 다수를 이뤘던 농민, 유목민, 도시 하층민 여성 등이 모두 히잡을 착용했던 것은 아니다.

지배 이데올로기

1979년, 왕정이 전복된 이후 이슬람주의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이슬람은 국가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는 구실을 했다.

친미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의 여파 속에서 수립된 이란 이슬람 국가는 건국 직후부터 서방 제국주의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혁명이 다른 제3세계 친미 정권들을 위협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이란-이라크의 8년 전쟁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후원했다.

이란 정부는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이 “서구의 문화적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이라며 정당화했다.

비록 서방의 압박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이란 지배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 역내 다른 강국들과 경쟁하며 자본을 축적하고 국가를 강화해 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불평등과 위기, 정치적 억압 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단속하고 입막음하는 데 “지도순찰대”와 같은 기구를 통해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해석해 강요하는 것이 유용했다.

이처럼, 이란에서 히잡 착용을 포함한 이슬람 율법은 이란 지배자들의 억압적 통치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권위주의적 독재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에 핵심적 구실을 해 왔다. 따라서 이란에서 히잡 의무화에 반대하는 운동은 완전히 정당하다.

프랑스 정부의 히잡 착용 금지

서방 제국주의 나라들의 지배자들은 한편으로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침략과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열등한 종교로 묘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 내에 거주하는 옛 식민지 출신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부추긴다.

그리하여 이슬람이라는 똑같은 종교가 서구에서는 이란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 자리잡게 됐다.

즉, 이란에서 이슬람은 지배 이데올로기이고 억압적 도구로 쓰이지만, 서구 사회에서 이슬람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서민층의 종교인 것이다.

프랑스를 보자. 1970년대 말, 경제 위기 심화로 강화되기 시작한 이주민(주로 구 식민지인 북아프리카 출신) 차별은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부터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더 악화됐다.

그 일환으로 2011년 프랑스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이 금지됐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들은 모두 히잡 착용을 강요받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정치적인 반항의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히잡을 착용한다.

이들을 모두 “가부장적 남성들”의 강요에 의해 히잡을 강제로 쓰는 피해자로 보게 되면, 서구 지배자들이 앞장서서 부추기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과 편견에 제대로 맞설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