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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참사, 국가, 자본주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왜 존재하나’ 하는 절규가 나온다 ⓒ이미진

끊임없이 반복되는 참사를 보면, 참사 희생자들이 우연히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나머지가 우연히 참사를 피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워싱턴포스트〉 11월 2일자는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한 상인을 인터뷰했다. 그 상인은 자신의 딸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때 다리가 무너지기 직전에 다리를 건너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8개월 전인 2013년 7월, 태안 청소년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사대부고 학생 다섯 명이 무리한 군대 식 극기 훈련을 받다가 익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故) 제세호 학생의 아버지 제삼열 씨는 아들과 같이 텔레비전으로 이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사고가 나기 바로 일주일 전에 제세호 학생이 그곳으로 간부 수련회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세월호 희생자 고(故)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는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유가족 진압 임무를 명령받은 의경이었다. 임종호 씨는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권력자들은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그 책임을 개인들에게 떠넘기려 하지만, 거듭되는 참사 속에 국가 책임론이 공명을 얻고 있다.

지난 8월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정기 여론 조사에서 재난 안전이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 1위, 내년 정부 예산에서 가장 많이 증액돼야 할 분야 1위로 꼽혔다.

그러나 대중의 바람과 달리, 재난 안전은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저 뒤로 밀리거나 예산이 깎이는 분야이다.

정부는 1년에 하루 발생하는 참사에 대비하기 위해 나머지 364일 내내 안전 대응 투자를 하는 것이 비효율이라고 본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2년 전인 2012년, 이명박 정부는 해상 구조·구난의 많은 부분을 민영화했다. 당시 해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댔다. “해양 사고는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를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관련 기사: 본지 364호 ‘세월호 참사 7주기, 참사는 왜 일어났고 왜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

당시 2000억 원대에 불과했던 해경의 재난 안전 예산은 문재인 정부 때도 액수가 똑같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들은 군사비에 30~50조 원 이상을 쏟아 부으면서도 이를 전혀 낭비라 여기지 않았다.

국가의 이런 잘못된 우선순위 문제가 이태원 참사와 다른 모든 사회적 참사들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핵심 문제 중 하나다.(이태원 참사의 배경에 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오: 본지 440호 ‘이태원 참사, 왜 윤석열 책임인가’)

참사 — 체제의 붙박이장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둘 다 우파 정부하에서 발생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참사가 우파 정부하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만료 직전인 2003년 2월 18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발생해 192명이 사망했다. 정부와 대구지하철공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유독 가스를 많이 내뿜는 내장재를 사용했다. 인건비 절약을 이유로 1인 승무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안전 점검 인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처벌은 방화범과 기관사에게 집중됐다. 기소된 나머지 9명도 지하철 하급 직원들이었다. 대구지하철공사 사장과 시설부장은 기소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망자만 무려 1만 4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가 정부 허가를 받고 출시된 시기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제품은 중소기업이 만든 ‘세퓨’ 제품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제품을 허가했고, 심지어 이 제품에 사용된 원료가 유해하지 않다고 관보에 고시했다.

인재형 참사가 ‘후진국형 참사’라는 얘기를 곧잘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소위 ‘선진국’에서도 참사는 대형 화재, 열차 탈선 또는 충돌, 선박 침몰 등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벌어져 왔다.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 골몰하는 국가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압사 참사도 물론 있었다. 1989년 4월 영국에서 벌어진 힐즈버러 참사로 축구 경기장에서 96명이 압사당했다.

1989년 4월 96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힐즈버러 참사 추모 공간 ⓒ출처 Graham Hogg

총기 난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96명이나 사망한 것은 순전히 경찰이 관중을 한 곳으로 무리하게 입장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찰은 압사 공포를 느낀 관중들이 철망을 오르거나 다른 구역으로 벗어나려 하자 이를 제지하며 도로 아수라장으로 밀어넣었다.

이 참사 이후 경찰은 술 취한 훌리건 탓으로 책임 돌리기에만 급급했다. 경기장 주변 쓰레기통을 뒤져 술병을 찾아내고 증언을 조작하고 허위 진술을 유도했다.

1989년 공개 조사 보고서가 경찰의 군중 관리 부재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는데도 기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로 책임자들은 무죄를 받았다.

보수당 정부는 물론,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집권했던 노동당 정부 기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토니 블레어 정부가 새로운 공개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개 조사의 필요성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가 시작됐고 그 결론은 ‘공개 조사 필요 없음’이었다.

2000년에 경찰 책임자들이 무죄 또는 평결 미완 상태로 재판이 끝났다. 줄기찬 투쟁 끝에 2016년이 돼서야 영국 법원은 힐즈버러 참사의 원인이 술 취한 관중이 아니라 당일 현장을 지휘한 경찰에 있다고 판결했다.

자본주의 국가

국가는 왜 매번 참사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 피해자를 억누르는 편에 서는 걸까?

12월 16일 윤석열에게 요구 서한을 전달하려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가로막은 경찰 ⓒ이미진

국가에 관한 가장 흔한 설명은 아마도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설일 것이다. 홉스는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고 봤다. 그가 보기에, 이런 파괴적 상태를 끝내기 위해 등장한 선악의 판단자, 질서의 기준이 바로 국가다.

마르크스는 홉스의 견해를 반박했다. 마르크스는 국가가 없을 때 사회가 분열되는 것은 인간 본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급들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회 질서를 강제력으로 유지하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계급 간 적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국 자본이 착취와 축적에 성공하지 못하면 국가에 필요한 수입을 얻을 수 없다. 세수입의 원천이나 차입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 등이 모두 기업주(자본가)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는 언제나 기업주들의 이해관계에 빠르고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요컨대 자본주의 국가는 근본에서 기업주들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개별 자본가들이 하기는 어려운 일(외교와 군사력을 통해 자국 자본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거나 국내에서 자본 보호를 위한 대중을 통제하기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이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쥐어짤 때는 단결하면서도, 시장에서 누가 더 많은 이윤 몫을 가져갈 것이냐를 놓고는 피 튀기게 경쟁하는 “서로 싸우는 형제들”(마르크스가 한 말)이다. 이 경쟁은 끝도 없고, 질서도 없다.

한 순간이라도 경쟁을 소홀히 하면 뒤처지다가 결국 파산해 중간계급이나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말한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을 위한 경쟁”이 자본가들의 최대 과제가 된다. 자본가 계급은 이 축적의 압력을 결코 거스를 수 없다.

그런 이윤 경쟁 속에서 평범한 다수의 안전과 생명은 너무도 쉽게 내팽개쳐지는 것이다.

노동계급 투쟁

진보적 또는 좌파적인 정치 세력이 대통령·의회 선거에서 이기면 자본주의 국가를 통제할 수 있을까? 서구 역사를 보면 선거에서 좌파(대체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이겨서 집권하더라도 자본주의의 무한 이윤 경쟁이라는 동학은 고스란히 지속됐고,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성격도 근본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경제 위기 시기에 좌파 정부는 아예 배신을 저지르거나 실패했다.

좌파 정당이라 할지라도 기성 정치 틀 안에서 살아남아 자리를 잡으려면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기업주들의 이해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의 상당 부분이 자본가 계급과 여러 연줄로 연결된 비선출직 관료들로 이뤄져 있다. 법을 해석하거나 이용하고 억압적 강제력을 직접 행사하는 이 관료들은 국회의원보다 국가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좌파 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정부에 입각하더라도 이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그래서 좌파 장관들은 이들 고위 관료에 거듭 타협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 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우선순위를 대변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참사의 고리를 끊으려면 자본주의 국가의 우선순위에 맞선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이윤에 타격을 입힘으로써 자본가 계급과 국가를 진정으로 위협할 수 있는 노동계급이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에 따라 자원 사용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물론 체제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당면한 투쟁이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개혁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들에 능동적으로 참가하는 과정 속에서만 비로소 대중의 의식과 조직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문제를 윤석열 퇴진 요구와 연결시키는 운동을 확대·강화하는 것, 노동자들의 생계비 저항에 연대하는 것이 중요한 당면 과제이다.

이태원 참사와 윤석열 퇴진 요구를 연결하는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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