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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직무성과급제 추진:
임금 억제책일 뿐 차별 해소와는 무관

고용노동부 산하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이하 권고문) 발표(본지 445호,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안 발표: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 억제, 쟁의권 공격’를 보시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 추진에 속도를 내려 한다.

윤석열을 비롯한 당정 고위 인사들 내에서는 특히 임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권고문은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는 소수의 대기업, 금융, 공공부문 유노조 노동자들만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또한 연공급 체계는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불공정하다고 한다.

최근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노동 개혁의 첫발은 임금 체계 개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 해소, ‘공정과 상생’ 운운하며 직무성과급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직무급은 직무평가에 의해 상대적 가치를 정하고 직무 등급을 매겨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임금 체계다. 정부는 같은 직무를 수행하면 나이, 근속연수, 성별, 고용형태 등과 관계없이 동일한 기본급을 받는 직무급제가 연공급제(호봉제)보다 더 공정한 임금 체계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성과급을 반영한 직무성과급제가 “능력”과 “노력”을 공정하게 보상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공정”이 “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정 임금” 옹호자들은 “지나친 평등을 강조하면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공정”은 사실상 임금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될 공산이 크다.

예컨대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은행과 마트 등 여러 기업들은 분리직군과 직무급을 이용해 노동자 중 일부를 저임금 직군에 묶어 둠으로써 인건비를 절약했다.

또 최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와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진행한 ‘여의도 업무지구 비정규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 “여의도 업무지구뿐 아니라 청소직종의 임금은 어디에서나 정확하게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또한 “인적 속성이나 숙련, 역량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닌 오로지 비용 절감에만 목적을 둔 직무급 체계”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기업주들은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만큼 올리기보다 별도의 직무를 만들 공산이 크고, 이를 통해 저임금을 고착화하려 한다.

직무성과급제는 ‘공정’은커녕 저임금을 고착화하고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길 뿐이다 ⓒ이미진

저임금 고착화

사실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려면 그들의 임금을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사용자들이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려는 진정한 이유는 임금 억제다.

호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정년 연장마저 된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직무 가치’나 성과에 연동되지 않은 임금 인상은 없애고 싶어 한다.

중장년 시기의 임금이 직무급제 등으로 억제·삭감되면 청년 노동자들의 생애 전체 임금도 삭감된다.

직무급제가 안착된 유럽의 사례를 보면, 같은 직무에서 20~30년 일해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 한국의 초임이 유럽보다 매우 낮은 현실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랫동안 낮은 수준으로 묶인다는 뜻이다.

ⓒ자료 고용노동부

한편, 직무 가치 평가는 사용자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도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면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간호나 보육 같은 돌봄 노동이나, 청소처럼 수익성이 낮은 노동은 직무가치가 낮게 정해지기 십상이고 그러면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실, 어지간한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6명이 직무성과급제 도입에 반대한 까닭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무기계약직, 자회사 등)도 직무급제에 반대하며 호봉제 도입, 근속 인정 등을 통해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의 80퍼센트 이상으로 임금을 올리라고 요구하고 투쟁해 왔다.

게다가 성과급제는 임금 격차 완화는커녕 노동자들 간 성과 경쟁으로 오히려 격차를 늘린다.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임금 인상 압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해 기업주들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 주려 한다. 직무성과급제가 도입되면 특히 개별 기업 수준에서 사용자에 맞서 싸우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처지로 몰릴 것이다.

직무성과급제 도입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악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