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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여전할 이주노동자 고통,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지난 12월 29일 정부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숙련이 쌓인 이주노동자에게 10년 이상 장기 체류를 허용하고, 이주노동자를 더 다양한 직종에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이주노동자 규모도 늘어날 듯하다.

그런데 사업장 이동을 극도로 제약하고 가족 동반을 금지하는 등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독소조항은 그대로 유지한다.

올해로 시행된 지 19년째인 고용허가제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극도로 제약한다. 취업 가능 업종도 영세업체나 농축산업 등으로 제한한다. 이 때문에 고용허가제하에서 이주노동자는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려 왔다.

또, 이주노동자의 정주화를 막기 위해 연속 체류기간을 4년 10개월로 제한한다.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출국 후 재입국해 다시 4년 10개월을 머물 수 있다. 그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에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영주권 신청은 불가능하다.

이번 개편 방안은 업종에 따라 1년 6개월에서 2년 6개월을 동일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한국어 능력 시험 등을 일정 점수 이상 얻으면, 출국하지 않고 10년 이상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허용한다.(장기근속 특례)

그런데 장기근속 특례 인정 후에도 일정 기간은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도록 강제한다. 그 뒤에는 사업장 변경 허용 사유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검토’한다는 말에 지나지 않아 얼마나 사유를 넓힐지 의심스럽다.

장기근속 특례를 인정받기 위해 동일 사업장에서 근무해야 하는 기간까지 더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 사업장 변경이나 한국 체류 기간에 제한이 없었다면, 숙련이 쌓이고 한국어에 유창해진 이주노동자는 협상력을 키워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해당 부문 사용자들이 인력 부족으로 아우성인 상황이다.

그런데 개편 방안은 고용허가제의 틀을 유지하며, 사용자들이 숙련이 쌓인 이주노동자를 계속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족 동반이 허용되지 않아 한국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매우 비인간적이다.

지난해 5월 1일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대회. 20년간 지속된 “고용허가제 폐지” 외침 ⓒ이미진

한편, 정부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허용 직종을 일부 서비스업의 상·하차, 가사·돌봄 직종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직종들은 노동 강도가 높고 노동조건이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상·하차 업무의 경우 이미 지난해 방문취업제 중국 동포(조선족)에게 취업이 허용됐지만, 그들도 취업을 꺼려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곳에 사업장 변경이 제약된 채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가 투입되면, 산재를 입거나 높은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자 신분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 농·수산물 가공 작업 등 3개월 이내 인력 수요에 대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파견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이주노동자가 원할 때는 사업장 변경을 제약하면서, 사용자들이 필요할 때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이율배반

이번 개편 방안이 시행돼도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통은 여전할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이주노동자를 10년 이상 붙잡아 두면서도 사업장 변경과 가족 동반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10년 이상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된 일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불합리를 계속 감내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10년 이상 한국에 살면 본국의 생활기반이 사라져 체류 기간 만료 후에도 (미등록으로라도) 계속 한국에 머물려 할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한국에 영구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하층 노동자들의 조건이 개선돼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하향 압력도 줄어든다. 정부가 이주노동자 유입과 취업 허용 직종을 늘리면 내국인 노동자와의 접촉면도 늘어나는 만큼, 연대와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쟁취하기 위해, 이주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편된 고용허가제하에서 더욱 커질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불만, 장기 체류로 한국어가 능숙해지는 등 한국 생활에 더욱 적응하게 되는 점 등 투쟁을 조직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