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연일 노동 개악을 외치며 노동 유연화, 임금체계 개악, 쟁의권 공격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한다. 안 그래도 치솟은 물가·금리로 허리 휘는 노동자들의 임금 몫을 더 줄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윤석열과 사용자들은 박근혜의 ‘정규직 과보호론,’ 노무현의 ‘노동귀족론’을 재탕하고 있다. 대기업·정규직의 “기득권”이 “미래 세대의 운명”을 좀먹고 “노동시장의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기득권자들의 구역질 나는 적반하장이다.

노동자 등 서민층이 역대 최대 규모의 가계 부채로 빚더미에 앉았는데, 50대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만 1000조 원 넘게 쌓아 두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 법인세를 감면 받았다.

대기업 임원 등 근로소득 상위 0.1퍼센트의 연평균 급여소득은 중위 소득자의 28.8배에 이른다(2020년 기준). 종합소득으로 따지면, 최상위 0.1퍼센트와 중위 소득자 간의 격차는 무려 236배나 된다(2019년 기준). 자산 격차는 이보다 더할 것을 생각하면, 진정한 불평등의 분단선은 계급 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의 비난은 이런 계급 불평등을 가릴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엉뚱한 데 떠넘기려는 수작이다.

지금 윤석열은 강경하게 말을 하지만, 노동자 전체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각개격파 하려고 야비한 이간질에 나선 것이다.

이간질 시도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며 마치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이 정규직 탓인 양 호도하고 있다. “선택받은 소수”의 정규직이 좋은 일자리를 독차지해 “배제된 다수”의 미조직·비정규직이 열악한 조건에 몰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7년 경제 공황 이후 정리해고제·파견제를 도입해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고 노동 빈곤층을 늘린 것은 정부와 사용자들이었다. 그들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착취를 강화해 왔다.

물론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기업·정규직이 청년·비정규직의 기회를 빼앗은 결과가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한 명이 일자리를 두 개, 세 개를 차지하며 독점이라도 했단 말인가?

지난 20여 년간 사용자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줄여 왔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 격차, 산업구조 변화, 산업·기업 간 생산성 격차 등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봐야 한다. 일부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안정성과 고임금은 노동조합의 조직력 덕분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악 밑그림을 그린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지난해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단면을 보여 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참이 아니다.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모두 인원이 줄고 임금 수준이 하락했다.

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거듭된 양보와 불필요한 타협이 그런 결과를 낳았다. 정규직의 조건 악화를 얻어낸 사용자 측은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자기 조합원의 조건도 못 지킨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하청 노동자에 연대할 리 만무했다. 그 결과는 양측 다 나빠지면서도 노동자 간 격차는 유지·확대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대기업·정규직의 조건 악화가 미조직·중소·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기는커녕 양측 모두에게 역효과를 낼 뿐임을 보여 준다.

정부는 유노조·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깨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이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전체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다.

가령 연구회는 노동 개악을 쉽게 관철하기 위해 근로자대표제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동의 주체를 손보라고 주문했다. 이는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처지인 미조직·중소·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최소한의 노동법 보호조차 박탈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회가 내놓은 최저임금 억제, 주휴수당 삭감, 파견법 개악 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직접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노동 개악이 실질적 위협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통해 조건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노동 개악의 경험들은 단협만으로 조건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도 보여 줬다. 노동자들 전반의 조건이 악화되면 조직 노동자들도 압박을 받게 되고,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이 그 점을 이용해 불필요한 타협에 나서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부터 임금체계 개악과 인력 감축을 추진하려는 것이나 쟁의권 등을 공격하는 것은 조직 노동자들을 직접 겨냥한다.

노동계급의 이해관계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이 안정적 ‘내부 노동시장’과 불안정한 ‘외부 노동시장’으로 분절돼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졌다는 주장이 노동운동 내에서도 유행이다. 다양한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좌파의 상당 부분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론, 정규직 특권론을 노골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단 실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하청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한 부문의 조건 상승이 다른 부문의 조건을 희생시키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동반 상승하고 하락한다(그래프 참조). 특히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싸워서 성과를 내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줄 수 있다.

ⓒ<노동자 연대>

암묵적으로 정규직 특권론을 받아들이면, 그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를 꺼리거나 심지어 해로운 것으로 여기기도 쉽다. 그래서 정부의 ‘기득권 개혁’ 논리에 일관되게 반대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 때에는 ‘공적연금 강화’를 내세워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를 흐리거나, 통상임금은 비정규직에게 그림의 떡이므로 그 대신 최저임금 인상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부당하게 요구를 대립시켜 당면한 정부 공격에 맞서길 회피한 것이다. 이는 결국 투쟁의 질곡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가령 정의당은 윤석열의 노동 개악에 반대하면서도 임금체계 개악은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 왼쪽의 일부 좌파도 임금 개악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 “직무성과급제냐 호봉제냐는 무의미하다”면서 “임금체계가 없는 저임금 업종에서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임금체계 개악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강력하게 원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임금 방어를 회피해서는 노동 개악 저지 전선을 굳건히 하는 데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

임금체계 개악이 대기업 정규직만을 겨냥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상대적 고임금을 억제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투쟁해 호봉제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근속 수당을 따내며 임금을 올렸는데, 그 노동자들에게 임금체계 개악은 그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좌파들이 미조직·비정규직 등 차별받는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그 취지를 실현하는 데 비효과적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갈린다고 보면, 다양한 노동자 집단 사이의 ‘갈등’ 조정을 중요한 문제로 보게 된다. 이런 시각은 개악 반대 투쟁보다 내부 격차 축소를 위한 제도적 대안(산별교섭 제도화 등)을 중시하는 노동조합 관료층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가진 힘을 자신과 더 열악한 노동 대중의 조건을 함께 방어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연결시키기보다 각자도생과 파편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의도치 않게, 정부의 개악 공세에 단호하게 맞서거나 차별받는 노동자들에 연대하기를 회피하는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마음 편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 파편화는 부문주의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가 될 테니 말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노동운동은 점점 더 파편화가 심화돼 왔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연대 회피와 소심함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그 결과로 조장된 파편화는 다시 연대 회피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사실상 삭감될 때에도,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나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에도 이런 문제가 거듭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악 공세가 광범한 노동 대중을 겨냥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지도부들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 사이에 조건 차이가 있을지라도 모두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한다고 봤다. 이런 동질적 이해관계 때문에 착취에 맞서 단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이런 일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

지금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이 일반화하는 상황은 투쟁이 정치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결코 자동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정부의 이간질과 각개격파 시도에 맞서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의 투쟁을 연결시키고 단결을 추구하는 정치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