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정진희 쓰고 엮음, 책갈피, 2023년, 272쪽, 14,000원

2015년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다시 부상하고 시간이 다소 흘렀다.

페미니즘의 부상은 한국 사회 구조에 아로새겨진 체계적 여성 차별에 대한 정당한 반감의 표출이었다.

2018년 불법촬영 항의 운동(“불편한 용기”)과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로 여성운동은 그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며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이 가진 모순과 난점도 드러났다.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 왔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비록 대부분의 비판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럽지만 말이다.)

그동안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논쟁에 개입하며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예리한 글들을 써 온 〈노동자 연대〉 신문 정진희 기자가 최근의 페미니즘 부흥과 굴곡을 돌아보는 신간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발표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취한다. 여성 차별에 대한 반대와 그 운동을 뜻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지하면서도, 한국 여성운동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흔히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불린다)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저자는 2018년에 일어난 불법촬영 항의 시위에 직접 참가하며 취재했는데, “한국 역사상 최초의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운동”이라는 이 운동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그 운동의 약점도 짚는다. 당시 대부분의 좌파가 그 운동 지도부의 분리주의를 문제 삼으며 그저 밖에서 비판만 하거나 아예 무시한 것과 대조된다.

이 책의 장점은 한국의 운동 내에서 받아들여지는 페미니즘의 사상(과 정체성 정치)에 대해 매우 날카롭고 선명하게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이다. 우파의 페미니즘 공격에는 단호히 반대하면서 페미니즘 사상의 모순과 난점을 살펴본다.

장점

한국에서의 경험과 논쟁을 구체적·정치적으로 살피면서 이론적 비판을 결합시키고 있어서, 깊이가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고, 어렵지 않게 읽힌다.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페미니즘 등에서 상식처럼 여기지는 정체성 정치와 그 변형인 교차성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다룬다.

정체성 정치와 교차성 개념이 언제 어떻게 등장해서, 왜 차별 반대 운동에서 유력해졌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것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한다.

특히, 교차성 개념이 정체성 정치의 대안으로 언급되는 상황에서 교차성 개념이 정체성 정치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고, 유사한 난점을 공유한다는 지적은 독자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차별을 설명하고 그에 맞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명료하게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은 구체적으로 페미니즘 ‘백래시’, ‘이대남’ 논쟁과 젠더 갈등, 정의당의 페미니즘, 불법촬영 항의 운동, 젠더 거버넌스, 신지예의 윤석열 캠프 합류 소동 등 페미니즘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과 민감한 쟁점들을 다룬다.

이 쟁점들에서 그동안 여러 까다로운 물음들이 제기돼 왔다.

가령 ‘이대남 대 이대녀’ 구도는 존재하는가? 아니라면 젠더 갈등은 그저 성차별주의자나 우파가 기획한 허구적 담론일 뿐인가? 오늘날 젊은 여성은 더는 차별받지 않는가? 남자도 차별받는 것 아닌가? 워마드만 문제인가? 신지예의 윤석열 캠프 합류는 단지 개인적 일탈인가? 등.

이 책은 사안들을 구체적으로 요모조모 살피며 이런 물음들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고, 교훈을 이끌어 낸다.

우파의 안티 페미니즘 공격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도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이 갖는 난점을 지적하고 대안적 사상과 전략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세 번째 부분은 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을 다룬다.

트랜스젠더 문제는 트랜스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사건,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죽음 사건 등을 거치며 한국 사회와 한국 페미니즘 안에서 중요한 쟁점이 됐다.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을 낱낱이 반박하면서도, 기존 페미니즘 주장의 한계도 지적한다.

지난 몇 년간 뜨겁게 일어난 여성운동과 논쟁을 돌아보며 대안적 사상과 전략을 설명하는 이 책은 차별이 원천적으로 사라지는 진정한 평등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