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 단체인 하마스가 지난 1월 25일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전체 132석 가운데 73석을 획득했다. 이 결과는 서방 정부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영국의 혁명적 좌파 주간지 〈사회주의 노동자〉가 가자지구 북부에서 당선한 하마스 소속 의원 무쉬에르 알 마스리(Musheer al-Masri)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덕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변합니다. 만약 강대국들이 우리와 대화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들만 곤란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팔레스타인 의회에서 다수당이고 새 정부를 구성할 때 핵심 구실을 할 것입니다. 외국 정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고 마스리는 말했다.

하마스(‘이슬람 저항 운동’의 아랍어 약자)는 1987년 제1차인티파다[‘봉기’라는 뜻] 때 창설됐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건강과 복지를 개선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인티파다 전에 우리는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였습니다. 그러나 봉기가 시작되자 우리는 점령에 맞선 전면적 저항에 가세했고 우리의 저항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고 마스리는 말했다.

제1차인티파다는 1993년에 포괄적 평화 협상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고 중단됐다.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가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요르단강 서안지방과 가자지구에 대한 제한적 통제권을 얻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동예루살렘의 지위와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 같은 핵심 쟁점들은 “최종 지위 협상”으로 미뤄졌다.

‘오슬로 협정’으로 알려진 이 거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지를 받았다.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귀환하고 팔레스타인 정부가 수립됐을 때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를 환영했다.

하마스는 이 협정을 거부했고 1996년에 팔레스타인 정부 구성을 위해 치러진 선거에 불참했다. 팔레스타인의 주류 정당이었던 파타가 새 의회의 다수파가 됐다.

그러나 협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계속 점령했고 정착촌을 확대했다. 그러는 동안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항복”을 뜻한다며 으스댔다.  

1995년에 미국 상원이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은 최종 지위 협상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법안은 사실상 예루살렘은 “분할되지 않는”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중재하던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의 신용은 크게 떨어졌다. 또 팔레스타인 정부는 부패와 족벌정치로 악명이 높아졌다.

1990년대 후반 내내 오슬로 협정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불신이 증대했고 하마스는 그러한 불신의 초점이 됐다.   

2000년 9월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분노가 폭발했다. 그의 방문은 팔레스타인의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였다.

2001년 2월 샤론이 팔레스타인 정부를 박살내겠다고 장담하며 이스라엘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요르단강 서안지방에 이스라엘 탱크를 진주시켰고 야세르 아라파트를 요르단강 서안지방의 라말라 시(市)에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 청사에 감금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더 많이 합병하는 이른바 분리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불도저들이 예루살렘의 아랍 주민 거주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샤론은 봉기를 진압하는 데 실패했다.

알 마스리는 하마스가 제2차인티파다 동안 저항의 중심에 있었다고 말한다.

“인티파다 동안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를 비롯한 우리의 지도자 다수가 이스라엘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지방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점령에 맞서 격렬한 저항을 강화했다. 여기에는 자살 폭탄 공격도 포함됐다.

알 마스리는 폭력은 유태인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땅을 점령하고 우리 민족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을 향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팔레스타인 그룹들을 점령에 맞선 공동의 저항에 끌어들인 덕분에 하마스는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의료·교육·복지 사업 등을 통해 신망을 얻었다. 

하마스가 통제하는 지자체들은 매우 효율적이라고 여겨졌고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하마스의 인기가 높아졌다.

2005년 9월에 샤론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철수했다. 알 마스리는 이 철수는 “저항을 시작한 것이 옳았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철수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알 마스리는 하마스가 테러리스트 조직이라는 비난을 반박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라고 비난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 선거들은 우리가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중단하면 우리도 휴전[아랍어로 ‘훈다(hudna)’]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휴전을 지속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영국·유럽연합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의 땅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억압과 점령에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의 저항과 해방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우리 동포들을 지키고 점령 세력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는 것입니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