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으로 대규모 전세 사기가 드러나면서 전세 세입자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언론들에서 보도한 소위 ‘빌라왕’, ‘건축왕’, ‘빌라의 신’이 벌인 전세 사기 주택 수만 해도 6300채가 넘는다. 그 외 건까지 더하면 지금까지 드러난 전세 사기 주택 수는 약 8000채라고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전세 사기 피해 의심 사례 106건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니 앞으로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수년간 어렵사리 모은 돈에다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놓인 피해 세입자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

피해를 입지 않은 빌라·오피스텔 거주 세입자들도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전세 사기에 이용된 주택 대부분이 빌라나 오피스텔이어서 자신들도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라나 오피스텔은 아파트 단지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세 정보가 덜 알려지고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건축주·임대인·중개인 등이 짜고 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세입자한테서 주택 시세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가로채는 사기 행각을 벌이기 쉬웠다.

현재까지 밝혀진 전세 사기 피해자 중에는 20~30대가 절반이 넘는다. 소득과 자산이 적은 젊은 층이 아파트보다 저렴한 빌라·오피스텔에 전세를 들었다가 피해를 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깡통 주택”

더 큰 문제는 집값 하락으로 “깡통 주택”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깡통 주택은 주택담보대출 등의 부채와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80퍼센트를 넘는 집을 뜻한다. 이렇게 빚이 많을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 깡통 주택이라고 부른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한 국내 개인·법인 임대 사업자의 임대주택 70만 9206가구 중 38만 2991가구(54퍼센트)는 부채비율이 80퍼센트를 넘는 깡통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시연구소의 분석을 보면, 이미 2022년 상반기에 전국 주택 전세가율(전세가를 매매가로 나눈 비율)이 87퍼센트를 넘어선 상태다. 인천·경기 지역의 아파트 상당수가 2021년 전세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지난해에 매매됐다는 자료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 대신 갚아 준 돈도 크게 늘었다. 2020년 4415억 원, 2021년 5040억 원에서 지난해 9241억 원으로 불어나 역대 최대였다. 앞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대거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비싼 돈을 들여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대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전세 세입자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실제 ‘빌라왕’ 김 모 씨 소유 주택 1139채 중 절반가량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세금과 빚을 우선 청산하고 나면 세입자들이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을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더 큰 손해를 피하려고 세입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집을 사들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무대책

전세 사기 피해 규모가 커지자 윤석열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전세 보증보험 가입자의 경우 보증금 반환 절차를 최대한 단축해 주고, 미가입자에게는 긴급 금융 지원 등을 시행한다는 것뿐이다. ‘안심 전세앱’을 출시해 임대인 납세 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한다.

결국 보증보험 미가입자들은 알아서 문제 있는 집주인을 피하고, 경매 등으로 보증금을 잘 받아 내라는 것뿐인 셈이다.

실제 정부의 대책 발표 때 국토부 관계자는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임차인 스스로 지급명령 신청이나 소송을 제기해 집행권원을 받은 후 강제집행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발표장을 찾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대책에 울분을 토했다.

전세 사기와 깡통 주택 피해를 막기 위한 입법도 시도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나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세가를 집값의 60~70퍼센트로 제한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물론 이런 법은 전세 사기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빚을 내 집을 산 뒤 전세를 주는 일이 계속되는 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문제를 근절하는 대책이 되기는 힘들다.

사실 역대 정부들의 전세 대책은 전세대출과 보증보험 등으로 금융 지원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사기꾼들은 세입자들에게 더 많은 대출을 받게 하는 식으로 사기를 치기도 쉬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깡통 주택이 된 주택을 정부가 매입해 피해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온전하게 보전해 주고 저렴한 공공임대로 제공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등락에 따라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줄이려면 정부가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