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각국 정부들이 금리를 올리자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정이 커지고 있다. 저금리로 지탱해 오던 부채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계경제가 2008년 같은 금융 공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2008년 공황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공황을 낳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2008년 세계를 휩쓴 미국발 금융 공황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 폭락을 낳았고, 이후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8년 공황은 지금과 비슷하게 수년간 급격히 커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중반 미국 대도시들의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신용평가사 S&P의 조사를 보면, 미국 20대 도시들의 주택가격지수는 2000년 1월 1일을 100으로 봤을 때 2006년 말에 200을 넘어섰다. 이 기간 주택 가격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의 4배에 달했다.

1990년대 정보기술(IT) 분야의 과잉 투자가 만들어 낸 거품이 2001년에 꺼지며 경제가 침체하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2000년 6.5퍼센트였던 기준금리를 2001년 2퍼센트, 2003년 1퍼센트로 낮췄다. 이런 저금리 상황에서 값싸게 빌릴 수 있었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거품이 커진 것이다.

저금리 덕분에 은행들은 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 돈을 수익성 있게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해 갈수록 애를 먹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고안해 낸 ‘절묘한’ 수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가난한 흑인 가계 등처럼 신용 등급이 낮아 그전에는 돈을 빌려 주기 위험하다고 분류됐던 가계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말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일반 모기지 대출보다 금리가 높았다. 대출 상환 첫해에는 이자가 낮지만 다음 해부터는 이자가 껑충 뛰는 식의 사기 수법도 동원됐다.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확대는 은행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더라도 집을 경매에 넘겨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들은 여러 주택담보대출을 묶어 부채담보부증권(CDO) 등과 같은 파생상품을 만들고, 이를 팔고 샀다. CDO는 서브프라임보다 더 안전하지만 금리는 더 낮은 대출 채권들도 함께 섞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CDO 같은 파생금융상품에 높은 신용 등급을 부여해 줬다.

이 파생상품들은 세계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경제 사학자 애덤 투즈는 그중 고위험 상품은 유럽 은행들이 많이 구매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보증 기관인 패니메이나 프레디맥도 취급하지 않는 고위험 주택 담보 증권의 약 29퍼센트가 유럽 투자자들의 소유였다.(한국에서는 ‘유럽식’ 자본주의가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낫다는 주장이 흔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투기판을 벌이는 데에서 이 둘은 다르지 않다.)

단지 주택담보대출만이 아니라 온갖 증권을 기반으로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졌다. 국제결제은행의 조사를 보면, 공식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는 장외 파생상품의 기반이 되는 자산의 명목 가치 총액은 2008년 중반 683조 7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총생산보다 무려 11배나 많은 규모였다(알렉스 캘리니코스, 《무너지는 환상》, 58쪽).

파생금융상품은 채권의 부도 위험을 분산시켜 금융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법으로 평가받았다. 또 파생금융상품의 거래가 증가하면 금융 기관들은 수수료 수익도 더 많이 챙길 수 있었다. 자본가들과 친자본 언론들은 파생금융상품의 발전이 “혁신적인 금융 기법”이라고 칭송했다.

기술 발전, 중앙은행의 개입과 금융 기법의 발달로 호황과 불황의 순환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신경제 이론이 유행했다. 당시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지난 20년 동안 경제 지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거시경제의 변동성이 상당히 감소한 것”이라며 안정적 호황을 낙관했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와 정치인이 이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한 대출 경쟁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부동산 거품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06년부터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많은 집이 압류와 경매에 넘어갔고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7년에 미국에서만 2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2007년부터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 경쟁을 하던 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자금 경색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7년 4월에 미국 최대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 회사였던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 신청을 했다. 8월부터 큰 펀드와 은행들로 신용경색이 확대됐다. 2007년 8월에는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가 일부 펀드의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9월에는 영국 최대 모기지 업체 중 하나였던 노던록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가 구제금융을 받았다.

전 연준 의장 그린스펀은 2008년 5월에 “최악의 신용 위기는 끝났다”고 말했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됐다. 결국 미국 정부는 9월에 주택담보대출 보증 기관인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했다. 그러나 세계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러더스는 구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금융 공황이 전 세계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단 며칠 만에 거의 모든 주요 서방 국가에서 은행들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많은 국가들이 파산 직전까지 몰린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입해 국유화 조처를 포함한 구제금융을 진행했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국유화=사회주의’라는 흔한 생각과는 달리, 당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추진한 국유화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2008년 말이 되자 이 위기가 단지 금융 위기만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1930년대 대불황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 모든 경제 대국에서 매일 일자리 수만 개가 사라졌다. 국제무역은 전년보다 40퍼센트 하락했다. 위기는 신흥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중국에서는 수출이 감소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최소 2000만 명에서 최대 3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러시아, 브라질, 여러 동유럽 국가 등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위기로 휘말려 들었다.

공황의 원인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금융 공황으로 터지자,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이윤을 추구하며 광란의 투기를 벌인 금융자본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금융 혁신’에 환호하던 지배자들도 금융 규제만 강화하면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식이었다. 전에 통화주의자였든 온건 케인스주의자였든 많은 주류 경제학자가 이런 대책을 내놓았다.

한국의 진보·좌파 안에서도 금융자본의 무분별한 투기를 위기의 원인으로 보는 주장이 흔했다.

예를 들어, 장하준 교수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기본소득당의 논자들은 금융 부문에서 수탈이 늘어난 것(“금융수탈체제”)을 핵심 문제로 꼽았다. 〈참세상〉의 필진인 홍석만·송명관은 공저한 책 《부채전쟁》에서 “주주 행동주의”로 인해 “생산에 대한 투자는 금융 논리에 종속”됐기에 금융 공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내용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 주장들은 금융자본의 지배력이 강화돼 생산적 투자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주주에 대한 배당 증가나 금융자본의 “수탈” 강화가 실물 투자 감소와 직결된다는 주장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설사 주주들이 배당을 더 받았다 하더라도, 만약 실물경제에서 높은 이윤을 거둘 만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들도 거기에 투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자본 때문에 투자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현금 유보금 등을 늘려 온 것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비정규직 확대를 금융자본의 입김이 커진 탓으로 설명하는 것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 차이를 과장하는 것이다. 산업자본도 노동자 착취를 강화해 이윤을 늘리려 하고, 비정규직 고용 확대로 임금 몫을 줄이려 해 왔다.

이처럼 위기의 원인을 금융자본에 돌리는 주장이 많지만 진정한 문제는 금융 부문이 자본주의의 나머지 부분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자본들도 이윤을 위해 금융 부문에 뛰어드는 경향이 강화돼 왔다. 단적으로, 2008년 위기 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이윤 절반가량은 금융 자회사인 GE캐피털에서 나왔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당시 금융 부문 팽창의 원인을 단지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의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정한 원인은 자본주의에서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해 온 데에 있었다.

이윤율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크게 하락했다. 이윤율을 측정하는 방법을 두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쟁이 있지만, 여러 연구는 공통적으로 이 시기 이윤율이 크게 하락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그래프1]

그래프1

이윤율 저하는 자본가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다.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가치를 창출하는 근원인 노동력의 상대적 비중이 점차 줄어들어, 전체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윤은 늘지 못했다. 그래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제조업에서 노동자 고용에 쓴 돈 대비 자본 투자의 비율은 1957~1968년과 1968~1973년을 비교했을 때 40퍼센트 이상 급증했고, 그 기간 이윤율은 하락했다.

1970년대 이후의 이윤율이 낮아지자 생산과 축적의 상승률은 둔화했다. 이윤율이 낮아지자 기업들은 생산적 투자에 돈을 쓰기보다는 저축을 택했다. 미국의 산업 생산 10년 성장률은 1957~1973년에 평균 57퍼센트였지만, 1975~2008년에는 30퍼센트로 급락했다(앤드루 클라이먼,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지난 수십 년간 금융 부문이 커진 배경에는 이처럼 실물경제의 낮은 이윤율이 자리잡고 있었다. 벤 버냉키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글로벌 과잉 저축”으로 지목했는데, 이는 원인이라기보다는 낮은 이윤율로 인해 투자가 줄어들면서 벌어진 현상인 것이다.

이렇게 투자되지 않는 돈이 채권, 주식, 부동산 등으로 흘러들어 금융거래가 매우 활발해졌다. 또 이 돈의 일부는 실질임금이 감소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든 사람들에게 대출돼 소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데 사용됐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빚을 내서 소비하라고 부추겼고, 이렇게 수요를 부양해 경제가 이럭저럭 돌아갈 수 있었다.

특히 위기가 터질 때마다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하하고 기업과 가계가 부채를 늘리는 것을 장려해 경기를 부양하려 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중반에 미국과 영국의 증권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1980년대 말에는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1990년대 말에는 닷컴 호황이 나타났고, 2000년대 초중반에는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 그러는 사이에 정부, 기업, 가계 할 것 없이 부채 수준이 높아졌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지적했듯이 “거품을 또 다른 거품으로 대체한 역사”가 이어졌다.

금융 투기를 통한 성장은 한동안 경제가 상승 국면에 들어섰다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금융 위기는 그 환상을 산산조각 냈다. 실물 부문의 이윤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금융 거품이 무한정 유지될 수는 없었다.

상쇄 요소

물론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요소도 있다. 마르크스는 핵심적으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노동자들을 더 많이 쥐어짜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자본가들은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노동계급을 공격해 왔다. 지금도 그런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둘째, 단기적 위기로 일부 기업가들이 망하고, 그 기업의 기계·설비 등을 다른 기업이 값싸게 사들이는 것이다. 이런 “위기를 통한 자본의 파괴”가 전통적으로 이윤율 회복의 핵심 요소이다.

실제로 이윤율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일부 회복됐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억제돼 전체 국민소득에서 이윤 몫이 늘어난 것이 한 이유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말까지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노동시간이 대폭 늘었다. 유럽에서는 미국만큼 실질임금이 하락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에서 노동시간이 증가했다.

이와 함께 일부 대자본가는 다른 자본가들의 파산에서 득을 봤다.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 때 30대 재벌 그룹 중 절반이 쓰러졌고, 남은 자본을 다른 재벌이나 외국 자본이 헐값에 인수하며 득을 봤듯이 말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소련과 동유럽의 경제가 붕괴한 것은 서방 자본들이 이 지역의 기업들을 헐값에 인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착취 증대와 구조조정을 통해서도 이윤율은 과거 수준의 절반 이상으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이는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요소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자본가들은 원하는 만큼 착취를 증대시키기 쉽지 않다. 게다가 자본 파괴를 통한 이윤율 회복은 그 효과를 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소수의 기업이 국가 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 경향 때문에 한 기업의 몰락은 경제 전체에 파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상징적으로 보여 줬듯이 말이다.

그래서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가가 개입해 핵심 대기업들을 살리는 경향이 강화돼 왔다. 예를 들어 1997~1998년 아시아를 휩쓴 금융 위기 때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채무 불이행) 선언으로 미국 헤지펀드인 롱텀 캐피털 메니지먼트도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 정부는 은행 14곳을 통해 구제금융을 조성해 이 회사의 파산을 막았다. 당시 롱텀 캐피털 메니지먼트를 인수한 곳이 리먼브러더스였다.

기업 파산과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모순된 효과를 냈다. 경제가 최악으로 붕괴되는 것은 막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익성이 낮은 자본이 파괴돼 이윤율이 충분히 회복되는 것도 막는다.

그래서 세계 자본주의는 1970년대 이후 더 자주 반복되고 길게 늘어지는 위기를 겪어 왔다. 1차 석유파동으로 불린 1973~1974년 위기에 이어 1979~1982년 2차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1990~1991년에도 미국의 성장률이 추락하는 등 위기가 엄습했다. 1991년 시작된 금융 위기로 일본은 장기 침체에 빠졌고, 1997년에는 동아시아가, 1998년에는 브라질과 러시아가 심각한 위기에 시달렸다. 2001~2002년에는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가 심각한 위기에 시달렸다.

이런 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각 위기가 특수한 원인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석유파동 때는 석유 생산국들의 담합과 유가 인상이 도마에 올랐고,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는 정경유착과 부패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2008년 공황은 금융의 탐욕이 주된 문제로 꼽혔다.

그러나 이 모든 위기의 근본 배경에는 경쟁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동학에서 비롯한 이윤율 하락의 문제가 있었다.

고장 난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한 막대한 구제금융 ―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2008년 공황 이후 각국 지배계급은 그전 시기에 한 일을 더 큰 규모로 반복했다.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인하하고, 중앙은행이 국채와 주택담보증권, 회사채 등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하고,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파산하는 기업들을 살려 주고, 기업의 세금을 깎아 주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삭감했다.

그전까지 각국 지배자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들이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각자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실업이나 임금 삭감은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치부되고, 쥐꼬리만 한 복지라도 받으려면 가난을 증명하는 온갖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위기에 빠지며 경제 시스템 자체가 고장 나자 각국 지배계급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정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기업주들을 구제했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심대한 타격을 줬다.

2009년 7월 미국 의회에 제출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예상 구제금융 규모는 23조 7000억 달러, 유럽의 구제금융 규모는 25조 달러로 추정됐다. 1조 달러만 있어도 전 세계에서 고질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10억 명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자금이 고장 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이렇게 지원된 돈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정부는 최대 은행이던 씨티그룹을 국유화하는 데에 3260억 달러(약 400조 원)를 썼는데, 씨티그룹은 2008년에 직원을 2만 3000명이나 해고하고도 경영진 738명에게 53억 3000만 달러(약 6조 6000억 원)나 되는 보너스를 지급했다.

세계 최대 보험사 AIG와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제이피모건체이스 같은 거대 은행들이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돈은 기업주들과 채권단에게 돌아갔다. 경영진들은 거액의 성과급 잔치를 벌인 반면 노동자들은 고통을 떠안아야 했다.

이 때문에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팽배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 정부에 대한 광범한 불만 때문에 그해 11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당선했다. 오바마 정부는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상당히 모았다. 그러나 기업주들을 위한 정책을 쓰는 데서 오바마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는 2009년 2월 17일 ‘2009년도 미국 회복·재투자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총 7870억 달러를 기업에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기업에 대해서는 2880억 달러의 감세 혜택을 주고 4990억 달러를 지원했지만 주택 압류와 경매에 따른 문제, 실업자, 빈곤, 복지 예산 부족 문제에 대한 대책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는 이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2007년 12월~2009년 12월 일자리가 850만 개 사라지는 동안 이 법안을 통해 만들거나 보전한 일자리는 100만 개도 되지 않았다. 일자리 하나 만드는 데 25만 달러를 쓴 셈이다. 만약 정부가 기업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이 아니라 직접 일자리를 창출했다면 그보다 다섯 배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세스 토보크먼 등, 《만화로 이해하는 세계금융 위기》, 10쪽.)

특히 오바마 정부가 파산 위기에 처한 GM에서 벌인 일은 경제 위기의 고통이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줬다. 미국 정부는 495억 달러를 투입해 GM을 국유화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병행했다. 수익성 없는 공장을 폐쇄해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퇴직자 연금·건강급여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GM 노조 지도부는 신입 노동자의 시급을 기존 노동자의 절반인 14달러로 깎는 데 합의해 줬다. 또 GM이 퇴직자 50만 명에게 주고 있던 연금과 건강급여가 사라졌다. 막대한 돈을 들여 기업을 살리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떠넘긴 것이다.(김수행, 《세계대공황》, 194쪽.)

또, 미국에서 무려 900만 가구가 집을 압류당해 거리로 내쫓겼다. 2008년 공황의 과정을 자세히 다룬 아담 투즈는 상황이 가장 심각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불안에 시달렸을지 다음과 같이 보여 준다.

“주택 가격이 절정에 달했던 2006년과 비교하면 2009년의 미국 주택 가격은 3분의 1로 폭락했으며 위기가 최악의 상황을 치달을 때는 미국 전역에서 모기지 대출의 10퍼센트 이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상환이 지연되었고 전체 모기지의 4.5퍼센트는 압류 절차가 진행되기 직전이었다. 900만 가계가 집을 잃고 수백만 가계가 주택 대출금을 갚느라 몇 년을 허덕였는데 그들의 집은 이미 대출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가장 최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미국 주택의 4분의 1 이상이 대출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기록했다.”(애덤 투즈, 《붕괴》, 235쪽.)

2008년 1월~2010년 2월 사이 실업률이 약 10퍼센트까지 오르고 일자리 7300만 개가 사라졌다. 이후 미국의 고용은 조금씩 회복했지만 아직까지도 고용률은 2008년 위기 이전 수준에 못 미친다.

이처럼 오바마 정부가 개혁 염원을 배신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은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반사이익을 얻는 토양이 됐다.

이와 같은 일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 등 서민에게 떠넘기는 정책을 벌였다.

2008년 금융 공황 상황에서 “한국보다 더 심각한 환율 하락을 겪은 나라는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아이슬란드뿐이었다”.(《붕괴》, 371쪽.) 한국은 경제 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데다가 외환시장이 개방돼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그런데도 최근 윤석열 정부는 외환시장을 외국 자본에 더욱 개방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에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었다.)

실물경제도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2009년에 이명박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3.9퍼센트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썼다. 이는 중국(3.1퍼센트), 미국(2퍼센트)보다 높았고, 주요 국가 중에서는 러시아(4.1퍼센트)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치였다.(《붕괴》, 394쪽.)

이 돈은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기업에 지원 하고, 은행과 조선·해운 기업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90조 원에 달하는 감세 혜택도 기업에 줬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당시 쌍용차 사태로 상징적으로 드러났듯이 엄청난 고통이 가해졌다. 2009년 쌍용차는 전체 인력의 37퍼센트인 2650여 명을 정리해고 하려 했다. 정부의 폭력적인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77일간 공장 점거 파업을 벌여 정리해고를 일부 줄일 수 있었다.

국가 개입의 모순과 긴축 정책

각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개입한 결과 2009년 하반기부터 경기는 후퇴를 멈추고 반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공공사업 투자 확대는 세계경제 성장에서 큰 몫을 차지했다. 영국계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캐피탈의 조사를 보면, 2009년 2분기 전 세계 생산량 증가분은 순전히 중국 덕분이었다. 정부가 통제하는 중국의 은행 시스템이 글로벌 금융 공황에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점도 중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한 요인이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 덕분에 한국처럼 중국에 중간재를 많이 수출하거나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원료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들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 개입을 통한 경기 부양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고, 새로운 거품을 초래했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건설 투자 붐을 일으킨 것은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졌다. 그때 시작된 거품이 2021년 하반기부터 꺼지기 시작하면서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모든 부채(비금융과 금융)를 합치면 부채비율은 GDP 대비 [위기 전] 409퍼센트에서 2011년 9월 379퍼센트로 낮아졌다가 2013년 다시 400퍼센트로 올랐다.”(마이클 로버츠, 《펜데믹 이후 세계경제》, 81쪽.)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들이 다시 막대한 지원을 하며 세계적으로 부채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치솟았다. 세계금융협회(IIF) 조사를 보면, 세계 총부채 규모는 2007년 GDP 대비 278퍼센트에서 꾸준히 상승해 2022년에는 350퍼센트 가까이로 올랐다.

정부의 기업 구제 정책의 효과로 수익성이 낮은 기업들이 살아남아 이윤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조사를 보면, 세계적으로 이윤율은 2008년 위기 이후 더 낮아졌다.[그래프1]

물론 2009년에 미국 중소 지방은행 40여 곳과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 500여 곳이 파산한 것에서 보듯이, 기업 구조조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을 대거 집에서 내쫓으며 부실한 부채를 일부 청산하고 실업과 임금 삭감 등으로 착취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경제 전체의 낮은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율은 위기 전보다 더욱 떨어졌다. 2007년 선진국에서 투자율은 23.6퍼센트였지만 2019년에도 22퍼센트에 머물렀다.[그래프2]

그래프2 ⓒ자료 출처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반면 주식시장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미국의 주가는 2013년에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2021년에는 위기 이전의 2.7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2021년 미국 주택 가격은 2008년 위기 이전의 1.7배에 달했다.

기업 구제에 들어간 막대한 자금, 기업 감세, 그리고 경기 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 등의 청구서는 긴축 정책으로 돌아왔다.

우파들이 강경한 긴축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도 이에 동조해 2011년부터 10년 동안 1조 달러 이상의 재정을 삭감하는 긴축 조처를 추진했다. 삭감된 예산은 대부분 교육과 의료,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비 등이었다.

2010년경부터 이런 추세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영국에서는 공공부문 인력이 대폭 줄었다. “2009년 9월 공공 부문 근로자 규모는 최대 644만 명에 달했는데 2016년 7월에는 543만 명으로 줄어든다. 공공부문 일자리 100만 개가 민영화되거나 외주화된 것으로 1980년대 대처나 1990년대 메이저 수상이 추진했던 규모보다 훨씬 더 컸다.”(《붕괴》, 493쪽)

또, 긴축 정책 시행 이후 2012~2019년에 사망한 사람이 애초 전망보다 33만 5000명이나 늘었다. 복지가 삭감되면서 난방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의료 서비스도 악화됐기 때문이다. 복지 삭감 때문에 늘어난 사망자 수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보다 10만여 명이나 더 많다.

가장 극심하게 긴축 공격이 진행된 곳은 재정 위기에 처한 나라들이었다.

2008~2009년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헝가리,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등이 재정 위기에 몰려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2010년에는 유로존 소속인 그리스가 재정 위기에 처해 구제금융을 받았고 남유럽 국가들로 재정 위기가 확산했다. 주류 언론들은 당시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첫 글자를 다서 ‘PIIGS(돼지들)’이라고 조롱했다. 이들 국가들이 돼지처럼 놀고먹다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 이전에도 그리스인들의 노동시간은 유럽에서 가장 길었고, 복지 수준은 가장 낮은 편이었다.

이들 나라의 재정 적자가 크게 증가한 이유는 복지에 돈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2008년 위기 때 기업 구제에 막대한 돈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유로존에 통합된 남부 유럽 국가들은 유로존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재정 위기가 더욱 심각했다. 유로화는 유럽중앙은행이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 나라들은 별도의 통화정책을 쓸 수 없었다. 또 유럽연합은 소속 국가들의 재정적자가 한 해 GDP의 3퍼센트가 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재정 지출 확대에도 제약이 컸다. 이는 유럽연합 통합이 신자유주의적 교리에 따라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는 이들 나라에 돈을 빌려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은행들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2012년 유럽 경제는 재침체에 빠졌고, 이는 중국의 수출 감소와 (중국으로 원자재 등을 수출하는) 신흥국들의 부진을 낳으며 세계적 경기 둔화로 이어졌다.

당시에 만약 그리스가 빚을 갚지 않고 디폴트를 선언하며 유로존과 유럽연합을 탈퇴했다면 다른 남유럽 국가들로 위기가 확산하고, 유럽의 주요 나라들로까지 위기가 번져 제2의 리먼브러더스 파산같은 파장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IMF와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이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이들은 온갖 생색을 냈지만 사실 이 구제금융은 평범한 그리스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구제금융으로 투입된 돈의 대부분은 은행과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는 데 사용됐다. 즉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다른 나라들의 은행 구제하는데 사용된 것이다.

그 대가로 그리스의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엄청난 긴축 공격이 벌어졌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연금과 복지 급여는 무려 70퍼센트나 삭감됐다. 그리스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2009년에서 2021년 사이 25퍼센트 줄었다. 빈곤이 급증했고 자살률이 45퍼센트 늘어났다.

재정 위기로 인해 구제금융을 받은 많은 나라들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긴축 공격이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세계 각국의 부채 수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수익률이 낮은 기업들이 체제의 골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긴축 정책으로 이윤율은 충분히 높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긴축 정책은 수요를 감소시켜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렸다. 게다가 각국 정부들은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치면 또다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지출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그리스에서도 GDP 대비 부채 부담은 긴축 정책 추진 전보다 더 높아졌다.

이와 같은 긴축 정책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석학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긴축 공격은 “금융 폭락과 이로 말미암은 국가의 귀환 때 엄청난 타격을 받은 신자유주의를 다시 확립하고 가능하다면 더욱 강화하려는 정치적 노력”이라고 지적한다.(‘긴축의 정치학’, 《마르크스21》 8호.)

실제로 2008년 공황 이후 정부가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로 개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윤율 회복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공격하고, 복지와 연금을 삭감하고, 민영화를 통해 민간 기업을 위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자본가들의 필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긴축이라는 이름으로 위기 이후에도 추진됐다. 이처럼 긴축 정책은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권력자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과 함께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제국주의 간 갈등 심화

애덤 투즈는 《붕괴》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2007년에서 2012년까지 이어진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는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냉전시대 질서 이후의 포괄적인 정치적, 지정학적 위기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이런 변화가 벌어진 핵심 지역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된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였다. 2008년 세계 금융 공황은 가뜩이나 취약한 우크라이나 경제를 더욱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2013년에는 단기외채가 외환보유액의 2배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은 구제금융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구제금융을 유럽연합·IMF로부터 받을 것이냐 아니면 러시아에게서 받을 것이냐가 쟁점이 됐다.

처음에 대통령 야누코비치는 유럽연합의 지원을 모색했다. 그러나 남유럽 재정 위기 대처에서 보듯 유럽연합은 인색한 지원과 함께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러시아 모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을 경우 러시아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을 것이었다. 이로 인한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예상됐는데도 유럽연합은 지원에 인색했다.

이를 둘러싼 갈등 속에 결국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다. 이를 계기로 “마이단” 시위가 벌어졌다. 마이단 시위는 야누코비치 정부의 부패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분노가 배경이 됐지만 시위의 요구는 ‘유럽연합과 협정을 체결’하라는 것이었다.

마이단 시위 자체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야누코비치 정부가 이 시위에 강경 대응해 100여 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며 시위가 확대됐고, 우크라이나의 극우들이 대안적 세력인 양 행세하게 된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모스크바로 도망가고 유럽연합·나토·미국이 개입해 친서방 정권이 세워졌다.

다른 한편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개입도 강화됐다. 러시아는 2014년 2월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 세력에게 물질적·정치적 지원을 제공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도 2008년 위기를 거치며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중 갈등은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 온 반면 중국의 비중은 성장해 온 상황이 그 배경이다. 세계 총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 60퍼센트에서 지금은 23퍼센트가량으로 줄었다. 반면 중국은 빠르게 성장해, 중국 GDP는 이제 미국의 80퍼센트에 달한다. 2008년 위기 이후 GDP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물론 GDP 격차만 보며 미국과 중국의 힘의 격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2008년 공황 이후 미국의 패권이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국 연준은 위기 시기에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나서 세계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 또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지위는 상당하고, 무엇보다 군사력에서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지배자들의 목표도 당장 세계적 수준에서 미국 패권에 도전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대만을 중국에 편입시키고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려 한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려 한다.

이런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을 아시아에 집중하려 해 왔다.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미 해군의 60퍼센트를 배치하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트럼프는 대중국 관세를 높이며 무역 전쟁의 시동을 걸고 대중국 적대 정책을 본격화했다. 바이든 정부도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의 성장을 막으려 하면서 미중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적 갈등이 주되지만 상황이 군사적 충돌로까지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나토의 동진과 이에 맞선 러시아의 대응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터졌듯이 말이다.

이런 긴장 강화 속에 각국 정부들은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에게 긴축을 강요하면서도 군비는 큰 폭으로 늘리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2008년 공황을 잠재우기 위해 각국 정부가 쏟아부은 막대한 자금을 보면 이 사회에 재원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많은 돈이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 속에 기업주를 구제하고 부자를 배불리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 등 서민에게는 막대한 고통이 떠넘겨지고 있다.

이처럼 계급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자 등 서민의 삶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의 부는 일자리를 지키고,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리는 등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은행과 기업들이 파산 위기에 내몰린다면, 정부가 나서서 국유화를 하고 고용을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물론 흔한 오해와 달리 국유화가 곧 사회주의적 조처인 것은 아니다. 2008년 위기 이후에 각국 정부들이 국유화로 기업은 구제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을 강요했던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않더라도 일자리를 지키려면 기업을 파산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국유화가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되려면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요구를 관철시켜야 한다.

은행가들의 이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삶이 더 중요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빚 갚기는 중단하고 부채는 탕감해야 한다. 은행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고 주택을 압류할 것이 아니라 부채를 탕감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해야 한다. 재정 위기에 처한 나라들에서 외국 자본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자국의 복지를 줄이고 긴축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부채 상환을 중단하고 그 돈을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재정 위기 당시 그리스에서는 이런 대안을 “민중을 위한 디폴트”라고 불렀고, 상당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이런 조처가 이뤄지면 자본 도피가 벌어지고, 은행들은 파산으로 내몰릴 것이다. 따라서 자본 통제를 시행하고, 은행을 국유화하고 노동자가 관리해야 한다. 은행 노동자들은 부자들이 자본을 빼돌리는 것을 막을 능력이 있고, 주택 관련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을 빼앗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런 요구들을 이룰 핵심 동력은 아래로부터 투쟁이 전진하는 것에 달려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있고, 이 때문에 이윤 체제를 마비시킬 잠재력도 존재한다. 지난해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여러 산업에서 생산 차질이 벌어진 것에서 그 잠재력을 힐끗 볼 수 있었듯이 말이다.

이런 요구들은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직접적 필요를 우선시하는 것들이다. 이 요구에 담긴 논리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충돌한다. 이윤 경쟁이 아니라 민주적 계획이라는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요구들은 1920년대 초 공산주의인터네셔널과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말한 것 같은 전환적 요구들[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혁명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요구들]이라고 볼 수 있다.

1921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채택된 ‘전술에 관한 테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공산당은 비틀거리는 자본주의 구조를 강화하고 개선해 줄 최소강령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 공산당의 주요 목표이자 당면 임무다. 그러나 이 임무를 실행하려면 공산당은 노동계급의 절실한 즉각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요구들을 내놓아야 하고, 대중 투쟁 속에서 이 요구들을 내놓고 싸워야 한다. 그런 요구가 자본가 계급의 이윤 경제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 개혁주의자들과 중간주의자들의 최소강령을 대신해 코민테른이 제기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구체적 필요를 위한 투쟁이다. 그런 투쟁에서 내놓는 일련의 요구들은 전체로 보면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한 투쟁의 단계들을 나타내는 한편, 따로따로 보면 그 자체로 가장 광범한 대중의 필요를 나타낸다. 비록 가장 광범한 대중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의식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긴축의 정치학’에서 재인용)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개혁을 위한 투쟁이 혁명으로 전환된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 줬다. 당시 제1차세계대전으로 대중의 빈곤과 고통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식료품 배급이 적은 것에 분노한 항의가 노동자 파업으로 확대되며 혁명이 시작됐다. “빵, 평화, 토지”가 당시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요구였다. 이 파업은 수도권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노동자 대표들을 뽑아 지역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를 세우는 것으로 순식간에 발전했다. 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의 전제 군주인 차르가 물러났고, 약 8개월 뒤에는 기존 자본주의 국가 기구를 분쇄하고 소비에트를 통해 아래로부터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대안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다. 물론 1920년대 말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벌어지며 러시아 혁명의 성과들은 파괴되지만 당시 혁명이 아래로부터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 줬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에 맞서서도 이와 같은 진정한 혁명을 추구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정치의 중요성

앞서 살펴 본 것에서 알 수 있듯 2008년에 시작된 위기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여러 국면을 거치며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위기는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 결말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그 크기와 심도 면에서 2008년 위기와 비견되는 1930년대의 대불황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야만을 통해서야 끝이 날 수 있었다. 국가가 전쟁을 위한 대규모 동원 체제를 구축하며 실업 문제가 해결됐고, 전쟁 과정에서 자본이 대규모로 파괴되고 착취율이 증가하는 과정을 거쳐 이윤율을 회복하고 새로운 호황의 토대를 놓을 수 있었다.

지금의 이윤율 하락 위기를 자본주의가 해결하려면 2차세계대전 이상의 파괴와 야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기후 위기, 제국주의 갈등 심화, 펜데믹 위기까지 자본주의가 낳은 복합적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야만과는 달리 혁명적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2011년 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나 중동 전역으로 확산했다. 아랍 혁명을 통해 중동의 독재자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거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중동의 대중 반란 열기는 서구로 번져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이집트 혁명에서처럼 광장 점거 운동을 벌였고, 미국에서는 ‘점거하라’ 운동이 벌어졌다. 그리스에서는 긴축에 맞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0회가 넘는 하루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와 같은 대중적 투쟁들은 의식의 급진화를 낳았다. 스페인의 운동은 얼마 뒤 포데모스라는 좌파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리스에서는 급진 좌파 정당 시리자의 지지율이 2009년 5퍼센트에서 2012년 36퍼센트로 급등했고 시리자는 2015년에 집권했다. 영국에서는 2015년 9월에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되는 이변이 벌어지고, 그 직후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부상했다. 그 즈음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청년의 절반가량이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좌파적 개혁주의라 할 수 있는 세력들이 부상한 것은 전 세계 좌파를 고무했다(물론 샌더스는 좌파 개혁주의로 보기 힘들지만 보수 양당 체제가 공고한 미국의 정치지형에서는 희망을 주는 좌파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실패로 끝이 난다.

그리스의 시리자는 집권 6개월 만에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굴복해 스스로 긴축을 추진하는 정부가 됐다. 스페인 포데모스는 긴축 정책을 추진했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과 2020년 연정을 하고, 코로나19 위기 대처 과정에서 개혁 염원 대중에게 실망감을 주며 지지율이 추락한다. 버니 샌더스는 트럼프에 맞서려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민주당과 독립적인 좌파 세력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와 같은 좌파 개혁주의의 실패는 근본에서 그들 전략의 약점에서 비롯한 것이다.

좌파 개혁주의도 기존 국가를 이용해 개혁을 제공한다는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주류 사회민주주의와 공통점이 있다.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이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 일으키며 투쟁을 고무하는 구실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전략 자체가 자신들이 집권해 위로부터 개혁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 보니 투쟁을 일관되게 고무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수동성을 조장하기 쉽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2012년 5월과 6월 총선을 통해 시리자가 선거에서 부상한 이후 그리스에서 투쟁 수위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좌파 개혁주의 정부가 집권한 이후에는 투쟁이 그 정부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강화되기 쉽다. 2015년 시리자 정부가 집권 후 긴축 정책을 펼칠 때 이에 맞선 저항이 크지 않았던 이유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정당의 약점을 인식하며 아래로부터 투쟁을 일관되게 전진시키려는 세력의 존재가 중요하다. 혁명적 조직이 노동계급의 기층에 뿌리 내리고 그런 투쟁을 이끄는 것이 진정한 대안인 것이다.

좌파 개혁주의 정당의 실패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이 단지 먼 미래의 일을 둘러싼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줬다. 개혁주의 전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혁명 전략을 추구할 때에야 노동계급의 투쟁을 일관되게 전진시킬 수 있다.

좌파 개혁주의의 도전이 한풀 꺾인 상황에서 우려스럽게도 오른쪽에서는 1930년대에 나치가 성장한 것처럼 우익 포퓰리스트와 파시스트가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인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로 등장했고, 최근 브라질에서는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룰라 정권에 맞서 쿠데타를 시도했다. 우익 포퓰리스트인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행보는 극우와 파시스트들을 고무했다. 2021년에는 이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일까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파시스트 르펜이 대선에서 2위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현재 국면은 단순한 우경화가 아니라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과 함께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연금 개악에 맞서 프랑스 노동자 수백만 명이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영국에서 30여 년 만에 노동자 파업의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등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선 저항은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투쟁을 전진시킬 기회가 여전히 존재하고,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혁명적 조직이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특히 경제 불황 속에서 각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국가 간 지정학적 긴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관되게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추구하는 정치가 더욱 중요하다. 최근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이름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은 한국판 IRA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보호무역 정책은 경제적 민족주의를 더한층 부추겨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열시킬 것이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긴축 정책을 추진하며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기려 하듯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지키려면 이런 저항과 연대를 일관되게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혁명적 좌파가 기층에 더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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