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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실체를 들춰내다

내가 박노자를 처음 알게 된 고등학생 때 나에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다소 어려웠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세상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었다.

몇 년 뒤, 이미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다. 여전히 일상에서 인식하기 어려운 세상을 일러주는 일종의 교과서 구실을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02》에서도 그의 탁월한 한글 구사력과 역사, 문학, 철학, 시사 할 것 없는 여러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물론, “차별과 폭력의 사회”를 겨냥한 그의 흥미로운 지적과 명쾌한 비판은 여전하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02》은 “황우석과 삼성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발전한 대한민국’의 시커먼 속내를 거침없이 파헤친다. 가령 “황우석의 성과” 속에서 “황우석 팀의 … 연구자가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 월급을 받으면서 하루 12∼13시간 동안 일한다는 사실”을 본다.

또,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화려한 영화”에서 “그 전투 장면을 어렵게 연출해낸 수많은 엑스트라들[의] … 일당”을 본다.

“바깥”에서 보기에 대한민국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 노동자로 하여금 말도 안 되는 대우를 감수하며 죽도록 일하게 만드는 ‘생존 공포’의 분위기”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 즉 “정규직 청소부가 되려고 수십 명의 대졸자들이 경쟁을 하고, 비정규직은 되기 쉬워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택시 운전사, 노점상 등이 넘쳐나는 현실을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노자는 최근의 한국을 “무자비한 전장터”라고 표현한다.

또, 박노자는 “박정희적 규율 체계”와 “이념적 타자를 때려잡는 법(국가보안법)”이 지배계급의 버팀목을 해주고 있는 대한민국을 “주식회사”라고 규정한다. 이 주식회사에서는 “표준” “주류”에 몸을 맞추려는 “체제에 순치된 욕망”이 발산된 성형이 유행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대체 복무제를 권고했음에도 … 천여 명이 넘는 병역 거부자들이 옥살이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이, “영자(英字)”가 “전성”하고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온존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과 오버랩 되는 것은 비단 나의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강함은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성숙한 분위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반국가 단체’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국가의 발전을 막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이”다.

새 책에서도 박노자의 민족주의 비판은 빛을 발한다. 그는 일제로부터 억압받은 식민지 조선 독립 운동가들의 민족주의를 내세운 활동을 이해하는 한편, 한용운과 김알렉산드라를 이야기하며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에 맞서는 효과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님을 정확히 짚는다.

“폭력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국경과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빼앗긴 “인간성을 되찾”는 일은 “자본주의와 민족국가가 우리에게 강요한 일체의 허위의 ‘정체성’들을 버릴 때만 가능하”다.

일면적인 “반미주의”와 다르게 그는 “미국과 싸우는 미국인들”을 “미국을 정상적인 나라로 거듭”나게 할 “양심적 소수”라고 고무한다.

마지막 장 “세계 속에서 배우는 진보”에는 전쟁에 참여한 영국 노동당과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개량주의”와 “계급 협조”를 단호히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먼저 그 길(개량주의)로 간 영국의 전례를 거울 삼아 ‘대자본 협력 방침’의 위험성과 한계[를] … 인식하”자고 주장한다.

브라질의 경우를 보면 “국가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종속적 자본주의의 지대에서 서구식의 복지 대중화는 어떤 개혁으로도 달성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복지제도가 생기려면 … 급진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서문에서 그는 “중산층 학생 운동가였다가 극우 야당의 정치인으로 탈바꿈한 일각의 우파 정치인들”을 비판한다. “저들이 무슨 ‘대타협’을 하고 무슨 ‘연정’을 해도 … 소외당하는 다수에게는 … 아무런 전망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역겨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타협”에 맞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도살을 막”기 위한 방법은 “2005년 가을 현대하이스코 순천 공장의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고공 크레인 점거 농성 투쟁” 같은 것이다.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과 가까운 규모의 전국 농민, 노동자, 영세민의 동시 다발적인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는 실제로 새 책 곳곳에서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한다.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은 “굶주림과 구타 속에서 생존과 인권을 위해 파업하는 얼굴 모를 여공의 아이를 인종·종족·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봐주”는 것이다. 이 지적이 내게 가장 인상 깊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02》는 그가 하워드 진을 읽고 “진정한 밑으로부터의 사회주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흥미롭게도 그는 반전 집회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미제 상품 불매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베트남 전쟁 때와 현재를 대조하며 “세금 납부 거부”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이 극소수일 뿐이고 이 때문에 “서구 반전운동이 소심해졌”다고 평가한다.
“아무리 집회를 해도 살육 기계인 제국주의적 군대를 멈추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미국 안팎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고, 〈뉴욕 타임스〉는 반전운동을 “또 다른 슈퍼파워”라고 불렀다. 먼저 이러한 것들을 반전운동의 성과로 고무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그 대안을 담은 이 책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한 밑거름이 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