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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연금 개악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대한 공격입니다”

“300년 된 자본주의, 이제는 은퇴할 시간” 2월 11일 연금 개악 반대 시위에 250만 명이 넘게 참가했다. ⓒ출처 Photothèque Rouge

지난 2월 11일, 프랑스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연금 개악에 반대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50만 명이 참여했고, 파리에서는 50만 명이 행진했다.

마크롱 정부의 개악안은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늦춘다. 노동자들이 퇴직 후 연금을 100퍼센트 받기 위해 보험료를 내야 하는 기간은 42년에서 43년으로 늘어난다.

연금 개악, 정부·사용자에겐 비용 절감

프랑스 정부와 사용자들은 평균 수명이 연장됐고 출산율이 낮아져 연금 개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 ‘계급독립성(Autonomie de Classe)’의 회원 자드 부하룬은 이렇게 말한다.

“마크롱 정부는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사람들에게 연금을 더 오래 지급하게 됐다고 말해요. 그래서 재원을 마련하려면 정년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러지 않으면 연금 재정이 적자가 난다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늦게 은퇴하는 방법 말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수백만 가지가 있어요. 이미 많은 기업에 감세 혜택이 주어졌어요. 이런 조치를 철회하면 연금 재원을 더 마련할 수 있는 거죠. 수명이 연장됐으므로 은퇴도 늦게 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아무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부하룬은 연금 개악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대한 실질적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OECD 1위로, 주요 경쟁 국가들보다 높다(2019년 기준 31퍼센트). 프랑스 정부와 기업주들은 연금을 공격해 이 수준을 다른 유럽 경쟁자 수준으로 낮추려 한다.

부하룬은 말한다. “연금 공격은 사용자들에게는 필요한 개악입니다.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더 착취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들에게 연금 개악은 실질적 필요에 의한 것이고, 좌파들은 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모두에게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싸움이고, 앞으로의 투쟁은 험난할 것입니다.”

마크롱에게 한 방 먹일 기회

아직은 충분하지 않지만, 현재 연금 개악 반대 운동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을 좌절시킬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2019년에도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반대했다. 당시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12월 한 달 동안 파업했는데, 대중교통·철도·정유 산업·학교 등 주요 부문이 마비됐다. 특히 파리교통공사 노동자들은 무기한 파업을 벌여 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하지만 마크롱을 저지시키기엔 불충분했다. 온건한 노조 지도자들은 정부와의 협상에 매달렸다.

좌파적 노조 지도자들과 급진 좌파 정당인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올리비에 브장스노와 같은 좌파 리더들은 3일 간의 총파업을 “선언”하자고 촉구했지만, 기층에서 파업 확산을 위한 조직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마크롱의 연금 개악안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으로 철회될 수 있었다.

부하룬은 올해의 연금 개악 반대 운동은 2019년보다 기반이 더 넓고 규모가 크다고 말한다.

“한번도 파업에 참여한 적이 없거나, 보통 파업에 참여해오지 않던 부문의 노동자들까지 파업 시위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규모는 최근 20~30년 내 최대입니다. 지방 소도시까지 시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인구가 4만 명인 도시에서 1만 명이 시위에 나옵니다.

청소년, 대학생 쪽에서도 대규모 운동이 벌어집니다. 시위 날에는 100~200여 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봉쇄합니다. 대학생들도 총회를 열고, 몇 군데서는 점거에도 돌입했습니다. 2019년 운동 당시 학생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어요.”

2월 7일 파리 연금 개악 반대 시위에서 행진하는 대학생들 ⓒ출처 Force Ouvrière(플리커)

노조 지도자들은 3월 7일을 다음 파업·전국 행동의 날로 선언했다. 하지만 띄엄띄엄 하루 파업만으로 마크롱 정부를 굴복시키기엔 부족하다. 부하룬과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면, 노동계급의 주요 부문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해 “운동의 엔진”이 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이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업이 한번 벌어지면 그 규모가 매우 거대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운동의 저변도 훨씬 광범해요. 파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부문이나, 전통적으로 파업을 하지 않던 부문들까지 조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또, 그는 평범한 프랑스인들의 마크롱 정부에 대한 커다란 반감과 연금 개악 반대 운동이 접점을 맺어, 파업하는 부문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금 개악 반대 운동 내에서 오직 연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마크롱에 분노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논쟁합니다.

이 파업은 페미니즘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위한 파업이기도 하며, 연금 개악 반대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파업이라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특히 인종차별 반대 운동 속에서 연결 지으려고 합니다. 마크롱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에게 재앙적일 반이민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역 차원에서 열리는 집회, 총회 등에 참여해 그 규모를 배로 키우려 합니다. 타는 불에 연료가 되려는 것입니다. 아직 운동이 2019년만큼 폭발적이진 않지만 그 저변은 훨씬 넓으며, 더 거대해질 잠재력이 있습니다.”

윤석열의 연금 개악에 단호히 맞서야

한국 윤석열 정부도 연금 제도를 개악하려 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달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5퍼센트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급 수급 개시 연령 조정도 논의 대상인데, 전형적인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개악이다.

이미 1998년, 2007년에 국민연금이 개악됐다. 공무원 연금도 여러 차례 개악됐다. 윤석열 정부와 사용자들은 인구고령화와 출산율 저하 등으로 기금 고갈이 불가피하다며 다시 연금을 개악하려 한다.

안타깝게도 정부와 사용자들의 연금 공격에 대해 그동안 좌파와 노동운동은 침묵하거나 타협해 왔다. 예컨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사용자 측의 기금 고갈론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고, 개악 불가피론을 편 셈이다.

투쟁 건설보다 ‘사회적 합의’(실제로는 국회 내 협상)를 중시해 불리한 세력 관계에 발목잡히는 일도 많았다.

이번에도 민주노총은 연금 “개혁”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의 “일방적인” 결정이 문제라며 “민주·한국노총, 시민단체, 여성, 청년 등의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사회적 논의기구를 설치하라는 입장을 냈다(2월 9일 성명).

그런데 이 성명에서 민주노총은 정부의 연금 개악을 비판하면서도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점은 “상식적인 생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후 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한 연금 수급액은 더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부유층에게 과세하고 기업주들의 보험료 분담 비율을 늘리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험료 인상은 물가와 공공요금, 금리 폭등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더한층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부하룬의 지적처럼, 연금에 대한 공격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고,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상황은 이들이 경제 불황 시기 속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 준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악을 막으려면, 광범위하고 단호한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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