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탄압은 우파의 전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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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을 우파의 전유물로 보는 견해가 흔하다. 민주당 정부하에서는 드문 일이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우파
반면 민주당은 기업주와 국가관료 등 지배계급 세컨드 초이스
역대 정부의 국가보안법 1심 형사공판 사건 접수 수를 보면, 우파 정부인 노태우 정부 시절
이 수치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277건으로 줄었지만, 이명박 정부 393건, 박근혜 정부 305건, 문재인 정부 142건으로 그 차이는 질적인 차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검거 인원으로 따지면, 노무현 정부
민주적 권리의 진전은 우파 정부냐 민주당 정부냐 하는 차이보다 계급 세력관계의 변화로 일어난 정치적 통제의 이완 여부가 더 주효했다.
한국에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과 연이어 벌어진 7~8월 노동자 대파업으로 노동자들의 일상 조직인 노동조합이 대거 형성됐고, 1996년 12월 26일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는 전투적 파업을 통해 민주노총이 강력하게 떠올랐고, 3년 뒤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건설됐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형태의 사회적 내용은 노동계급 조직들”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지배계급이 노동자들의 조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1987년부터 10여 년 사이에 불완전하지만 권위주의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 할 수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국가보안법 적용은 과거보다 줄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 상황은 뒤집히지 않았다.
그러나 보안법 피해자 수의 감소가 국가의 억압적 기능 감소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구속된 노동자 수는 1052명으로 김영삼
역대 민주당 정부는 보안법을 이용한 탄압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1996년 연말 대중 파업과 1997년 11월 IMF 외환 위기가 불어닥친 상황의 여파 속에서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고 노동계급 의식의 발전을 막기 위해 보안법을 적극 활용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으로 처음부터 지지율이 추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FTA 반대 투쟁과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이 벌어지자 2006년에는 일심회 사건을 터뜨려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을 공격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보안법 기소자 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 비해 다소 줄었다. 노동운동 지도부와 개혁주의 정당들의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맞서기보다는 대화와 협상으로 개혁을 얻어내려는 데 주력했다. 투쟁이 전투적이거나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보안법을 휘둘러야 할 유인은 적었다.
그럼에도 정권 후반부로 갈수록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지정학적 위기도 심화하며 보안법 탄압 사례가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F-35 전투기 도입에 반대하는 청주 평화운동 활동가들을 보안법으로 구속했다.
이처럼, 민주당 정부들도 단지 우파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저항을 억눌러야 한다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 보안법을 활용해 왔다.
따라서 민주당에 기대를 걸어서는 보안법에 제대로 반대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민주적 권리를 지키려면 민주당에게서 독립적인 노동계급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