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 연금 · 정년 등:
노인 연령 상향은 복지 삭감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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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규정하는 기준 연령의 상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노인 규정 연령 문제가 복지 지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도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가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을 높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지하철 운영 적자가 무임승차 때문이라면서 대중교통 요금 인상과 연령 상향을 동시에 논의에 부쳤다. 대구시장 홍준표는 현재 65세인 도시철도 무임승차 연령 기준을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노인이 타든 안 타든 운행되는 지하철의 적자를 무임승차 탓으로 돌리는 것은 황당하다.
쟁점은 무임승차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노인 연령 기준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연금 개혁’과 연결된다.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국민연금 개악을 추진하고 있는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방안도 유력한 개악 방안 중 하나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지난해 9월 노인 연령의 단계적 상향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재정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공적연금제도에서 가장 심각하게 표출되고
현재 국민연금은 63세, 2033년부터는 65세가 돼야 받을 수 있다. 60세 정년을 다 채워도 5년간 소득의 공백이 생긴다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면 이 시기의 소득 공백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정년 연장, 계속고용 등 방안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연금을 더 빨리, 더 많이 주는 방향이 아니라 말이다.
정부 책임 덜려는 긴축 공격
이처럼 노인 연령 상향은 단지 평균 수명이 늘어나 청년·장년·노인 구분 기준을 재조정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노후 소득보장제도, 정년과 일자리, 대중교통 무임승차 등 노년의 삶과 복지 전반에 관한 정치적 문제이다.
정부와 우파는 경제 위기에 대응해 기업주·부자에게는 천문학적 규모로 세금을 감면해 주면서, 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해 복지를 줄이려고 한다.
물론, 노인이라고 다 같은 처지는 아니다. 부유층 노인들은 천덕꾸러기 취급 대상에서 제외일 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결국 노인 복지 삭감은 철저하게 평범한 사람들, 서민층의 문제다. 본질적으로 계급 문제인 것이다. 한평생 뼈빠지게 일해 경제에 이바지했지만, 이젠 국가 경제와 재정을 축내는 짐짝처럼 취급받는다.
윤석열 정부의 방향은 안 그래도 형편없는 복지제도하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저소득층 노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다. 이미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수년째 OECD 국가 중 1위로, OECD 평균보다 약 3배나 높다.
이런 방향은 단지 우파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2019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나서 노인 연령을 점진적으로 70세로 높이자고 해 무임승차 등 경로우대 연령을 올리려고 시도했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더 악화된 경제 상황에서 재정 긴축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공공요금을 인상하고, 각종 사회복지서비스를 축소하고, 국민연금을 개악하려는 등 노동자·서민층의 삶을 옥죄고 있다. 노인 연령 상향 논의는 이런 긴축 공격의 일부다.
엉뚱한 책임 전가
노인 연령 상향을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이나 언론들은 ‘저출산·고령화로 생산 인구는 줄어드는데 무위도식하며 나라 재정을 거덜내는 노인이 너무 많다’고 한탄한다. 그 부담이 젊은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생겼다며 세대 간 이간질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는 엉뚱한 책임 전가다.
가령 대중교통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필수공공서비스다. 마땅히 국가
그런데 정부가 대중교통에 재정을 전혀 지원하지 않거나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해 추진한 부자 감세액만 연간 12조 8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2.3퍼센트만 지하철공사에 지원해도 노인 무임승차 비용을 댈 수 있다. 7.8퍼센트를 지원하면 매년 발생하는 적자를 모두 메울 수 있다
이는 연금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국민연금은 국가가 약속한 노후 소득보장제도인 만큼, 노동자 등 서민층이 추가로 부담을 떠안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고령자 증가로 기금이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과 연금액 삭감
그러나 적립된 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국민연금이 설계될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갈수록 수급자가 늘어날 것이었기 때문에, 기금이 부족해지면 현재의 건강보험처럼 그해 필요한 돈을 그해에 걷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변경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기금 고갈’ 호들갑을 떨면서 협박을 해 개악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저임금 일자리 강요
2021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무려 43.4퍼센트에 이른다. 은퇴 등으로 소득이 없어진 고령층이 받는 국민연금
이처럼 턱없이 부족한 복지제도하에서 고령층의 일자리 문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윤석열 정부는 정년 연장, 계속고용 등 방안을 논의 중인데, 임금의 대폭적인 삭감
박근혜 정부가 정년을 60세로 상향 조정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병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악한 기업에 대해 정부 지원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정부는 일본에서 시행되는 ‘계속고용제’도 검토 중인데, 이는 고령자들을 촉탁 계약직
말이 ‘계속’ 고용이지, 같은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데, 임금은 절반으로 깎이고 단체협약도 적용받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은 아예 정년이 연장되기를 바란다. 늙어서도 더 오래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노후 보장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사용자들은 이런 바람을 비틀어 연금 개악과 임금체계 개악의 지렛대로 삼고, 기껏해야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하려 한다. 정년 연장을 연금을 받는 연령을 늦추는 것과 연계하려는 것이다.
청년 세대를 위한다는 거짓말
윤석열 정부는 각종 개악을 추진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
그러나 고령층에게 제공되는 사회보장제도가 후퇴한다고 청장년층의 부담이 줄어드는 게 결코 아니다. 되레 노인 부양의 책임이 더한층 개별 가정에 떠넘겨져 청장년층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게다가 지금 청년 세대들도 결국은 나이가 들게 마련이다. 노인 복지가 후퇴하면 그들의 노년기도 힘겨워질 것이다.
그 점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진보진영 내 일부가 청년 세대의 부담 증가와 정부 재정의 악화를 걱정하면서 사실상 노인 복지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
젊었을 때 이 사회의 부를 만드는 데 기여해 온 서민층 노인들에게 나이 들어서까지 더 오래 일하라는 것도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 이들은 노년기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노인 인구가 늘어서 국가 경제와 재정이 거덜난다는 주장은 억지다. 국내총생산
문제는 인구 고령화가 아니다. 누구의 돈으로 복지 재원을 마련할지가 핵심이다.
세대 간 분배로 시야를 좁히면, 세대 내 재분배, 즉 계급 간 문제를 놓치게 된다. 사실은 세대 담론으로 계급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서민층 내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접근하면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다.
경제 위기에도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들이고 부를 쌓아 두고 있는 부자와 기업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충분한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에 감세 혜택 주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보낼 돈으로 서민의 삶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