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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자국 패권의 무기로 삼는 미국, 난관에 처한 한국 자본가들

최근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자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10퍼센트가량을 보조해 주는 대신 영업 기밀을 공개하고, 초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중국에 반도체 관련 투자를 확대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중국에 이미 상당 규모로 반도체 설비 투자를 해 놓은 상황이어서 추가 투자를 못 할 경우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협조해 왔지만,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 때문에 뒤통수 맞은 처지가 됐다 ⓒ출처 대통령실

바이든 정부는 대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들과의 군사적·경제적 협력을 구축하려고 노력해 왔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바이든은 중국이 첨단 기술을 육성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한편, 한국·대만·일본 등과 협력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강하게 추진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이런 방향에 적극 호응하며 한미 반도체 동맹을 추구해 왔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까지 포괄하는 군사 협력을 강화해 왔을 뿐 아니라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추진한 경제적 기구들(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칩4 동맹’ 등)에도 참가했다.

미중 갈등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미국 편을 들며 긴장 고조에 일조해 온 것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지배자들에게도 중국은 가볍게 제칠 수 있는 시장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 제재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을 높여 중국 시장에서의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 시장도 놓치지 않겠다는 바람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미중 갈등이 훨씬 더 첨예해지고 대만을 둘러싼 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미국과 그 동맹국의 기업들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본지는 일찌감치 한미 반도체 동맹을 강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계획 앞에 커다란 난관이 놓여 있다고 지적해 왔다.(본지 426호 ‘한미 반도체 동맹, 순탄할까?’, 374호 ‘바이든 이후 더 심화되는 미·중 경제갈등, 한국은 어디로?’를 보시오.)

이번에 미국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지원법을 둘러싼 논란도 그 일부다. 세부 내용이 공개되자, 한국에서도 정부와 여야 가릴 것 없이 미국에 지원 기준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4월 26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련 논의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윤석열 정부는 이제까지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동참해 오면서 곤란한 상황을 자초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심화되는 미중 갈등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지배자들과 정치권 내에서 긴장과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추구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막대한 세금 혜택을 주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미 지난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해 8퍼센트에 이르는 세액 공제를 해 주기로 했고,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대기업에는 15퍼센트, 중소 기업에는 25퍼센트에 달하는 세액 공제를 해 주자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해 놨다.

이 법안대로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5년간 추가로 얻는 법인세 감면 혜택은 무려 9조 원이 넘을 것이다.

민주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감세 혜택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자국 중심적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 대한 공분이 일자 반도체 기업들에게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은 곧 발표할 한국판 인플레이션방지법(IRA)에서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세액공제를 정부 안보다 더 많은 수준인 30퍼센트 이상으로 제안하려 한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반도체 세금 감면 추진을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들에게 세금을 감면해 줄 게 아니라 더 거둬서, 생계비 위기로 고통받는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복지 혜택을 늘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장혜영 의원이 세금 감면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이 우위에 서기 위해 국가적인 지원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들은 결국 노동자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위험이 크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19년에 한일 경제 갈등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개악, 안전 규제 완화 등이 진행됐던 바 있다.

게다가 노동자를 공격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에서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차이가 없다.

국가 간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기업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단호하게 맞서며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중립 외교’ 추구가 낳을 모순

좌파 일각에서는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립적인 외교통상 정책과 핵심 산업의 국내 생산으로 경제주권을 세워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는다.(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장, 〈민플러스〉)

물론 상당수 진보층 사람들은 친미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정책이 낫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중립 외교란 결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일이다. 미중의 갈등이 심화할수록 이런 줄타기는 실현하기 힘든 곡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실질적 중재자가 되려면 결국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되기 쉽다. 그런 논리가 강화되면 경제력과 군사력을 길러야 한다는 압력 속에서 노동자들에게 희생이 강요될 수 있다.

핵심 산업의 국내 생산을 추구하는 것도 생산이 이미 세계화된 상황에서 공상적이다. 관련 산업의 국내 유치를 위해 기업들의 이윤 창출과 보호를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화될 수도 있다.

진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미중 간의 중립외교를 추구할 게 아니라 반제국주의적인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기업주·지배계급 일부와 한편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각국에서 자국의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과의 국제적 단결과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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