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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 시도와 대응 ②:
보험료 인상에 반대해야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 시도와 대응 ①: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를 읽으시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며 보험료를 인상하고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교육과 함께 3대 개혁 과제로 거론했을 정도로 추진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이 기금 고갈론은 정부 책임을 회피하려고 크게 과장한 억지에 가깝다. 앞으로도 최소한 20년 동안 기금은 늘어날 전망이고, 설령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평범한 사람들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일은 빈곤에 내몰려 있는 노인들의 생계를 보호하고, 노동자들이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당장에는 윤석열의 국민연금 개악을 저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보험료 인상은 현 노동인구의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물가·금리 폭등으로 생계난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한층 어렵게 한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미루자는 주장도 무책임하다. 퇴직 이후에도 십수 년을 연금 없이 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정년을 채우고 퇴직해도 몇 년간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조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악을 저지하려면 만만치 않은 투쟁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연금 ‘개혁’에 사활적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추세가 예상보다 더 빨라지며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이 급속히 늘어날 텐데, 정부와 기업주들은 자신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노동자 등 서민층에 그 부담을 떠넘기려 혈안이 돼 있다. 여기에 더해 지금은 거대한 규모로 쌓여 있는 국민연금 기금이 줄어들 때 경제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아쉽게도 국민연금 개악에 대한 좌파의 대응에는 약점이 많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을 일관되게 옹호하지 않고 ‘국민적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도 고통을 분담하거나 감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개혁주의 정치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런 정치는 개혁을 쟁취하는 데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보다 의회 협상이나 정부와의 거버넌스 등을 중시한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싸울 수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쉽고, 그런 생각은 다시 투쟁 건설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힘을 쏟게 해서 투쟁을 약화시켜 개혁에 필요한 동력을 잃어버리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곤 한다.

예컨대 오늘날 대부분의 좌파는 노동계급이 분절돼 단결할 수 없게 됐다거나, 노동계급 중 일부가 특권층이 돼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 더 열악한 계층에게 피해로 돌아간다는 식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금 개악 저지 투쟁에서 보듯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울 수 없다는 생각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에서도 지난 몇 해 동안 화물·건설·택배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거나 당장에 성과를 얻지는 못했어도 사회적 반향을 얻은 바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시기에 이런 부문적, 부분적 투쟁이 자동으로 확산되고 일반화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국민연금처럼 개별 작업장의 노동조건을 넘는 정치적 문제들에서 개혁을 쟁취하려면 투쟁이 확산되고 일반화돼야 하는데, 개혁주의는 이에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투쟁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좌파가 의식적으로 연대 건설에 나서야 한다.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노동계급 일부의 보험료는 인상해야 한다는 관점으로는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 불가피론을 받아들이는 좌파들의 약점

정의당과 민주노총, 사회진보연대 등은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1월 27일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전 보험료 인상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2022년 대선 당시에도 소득 대체율 인상 없는 보험료 인상 공약을 제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여영국 대표는 그 공약의 취지가 “청년과 미래세대가 나중에 짊어질 큰 부담을 줄여 주자”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과 연금 동결은 청년들의 부담을 줄이기는커녕 이중 삼중의 부담을 지게 하는 일이다. 당장 정부로부터 쥐꼬리만한 지원만 받는 부모를 개인적으로 부양하는 한편, 자신의 노후를 위해 고액의 보험료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험료를 많이 내도 정부 계획대로라면 재직 당시 소득의 고작 20퍼센트 남짓한 연금을 받게 될 뿐이다. 이 정도로는 (비슷한 수준의 기초연금을 더하더라도) 인간다운 노후를 기대할 수 없다.

여영국 전 대표는 연금 인상은 “노후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질 우려도 있다” 하며 반대한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보험료에 비례해 연금을 지급하므로 재직 당시의 소득 차이가 연금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연금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조처가 더 시급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각지대 해소와 연금 인상은 대립시킬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려면 어지간한 소득을 가진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동안 정의당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인상하거나 임금 인상을 억제해 그 돈으로 비정규직의 처지를 개선하자는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해 온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한 재원의 용처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주들이라는 점에서 사회연대전략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요컨대 보험료 인상이 취약계층의 처우 개선에 쓰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그저 기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낼 뿐이다.

연금 개혁은 세대 간 문제가 아니라 계급 간 문제다. 애당초 연금제도는 호황기에 정부와 기업주들이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고, 충성도를 높이려고 도입한 제도다.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를 노동자와 고용주가 각각 절반씩 내도록 한 이유도 그래서다.(지역 가입자의 경우 혼자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연금 개혁은 본질에서 노동자와 기업주 중 누구의 부담을 늘릴 것이냐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었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문제라는 관점은 책임을 떠넘기고자 하는 정부와 기업주들이 고안해 낸 것으로 좌파가 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은 ‘국민적 이익’을 내세우므로 계급 투쟁이 아니라 국회 등 제도 정치 내 합의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나 국민연금보다 훨씬 ‘판돈’이 작은 공무원연금 개악 과정에서도 국회 논의는 개악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정당화해 주는 효과만 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악 당시 정의당 지도부는 ‘국민적’ 형평성 논리를 내세워 공무원연금을 일부 삭감하고, 국민연금을 일부 개선해야 한다며 국회 논의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사상 최악의 공무원연금 삭감이었을 뿐 국민연금 개선은 말잔치로 끝났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용돈 수준의 연금을 인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옳게 지적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민주노총이 포함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추진하던 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현 집행부가 연금 인상을 위한 폭넓고 급진적인 투쟁을 회피하고 주저하는 것과 연관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사회적 대화 기구 등을 통해 노동자 등 서민층의 보험료를 올리는 동시에 기업주의 부담도 늘리는 재정 ‘분담’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기업주를 압박할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투쟁을 회피하려 한다면 지금 같은 불황의 시기에 기업주의 ‘분담’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기업주와 부유층의 부담 강화를 일관되게 요구할 때 투쟁을 건설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정한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

노동자들도 책임의 일부를?

첨예한 쟁점을 회피하거나 혼란스러운 관점을 드러내는 좌파도 있다. 이는 보험료 인상을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것보다는 나은 입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천에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보험료 인상 불가피론으로 미끌어질 우려가 크다.

예컨대 진보당은 보험료 인상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2018년에는 전신인 민중당이 “보험료 인상 반대, 수급개시연령 지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지금 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 추진에 관해서는 “사회적 합의기구 설치”를 요구할 뿐 보험료 등 핵심 쟁점들에 관해서는 구체적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정부와 기업주들뿐 아니라 정의당이나 민주노총이 보험료 인상론을 펴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당은 최근 윤석열의 국민연금 개악에 관해서는 입장을 내놓은 게 없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 직후 열린 당대회에서는 “국민연금하나로 특별결의문”이 채택됐는데 국민연금하나로 운동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자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노후 연금 차등을 없앤다는 명분 아래 공무원연금 개악 같은 하향평준화를 지지하는 운동이었다.

노동당은 기업주의 부담을 “우선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노동자의 보험료 인상을 일관되게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복지증세가 절실”하다고 해 부담 비율의 조정을 전제로 인상을 수용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현재 노동당 내 옛 변혁당 계는 “재벌의 독점이윤 환수로 공공 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수준 이상으로는 구체적 입장을 제시한 바가 없다. 특히 보험료나 연금 수급액 등 정부 개악안의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노동당으로 가지 않고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 참여한 백종성 전 변혁당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에 쓴 글에서 기금 고갈이 매우 현실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한 국가와 사회의 재생산 시스템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고 개탄한 바 있다. ‘노인 인구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 부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883조에 달하는 재벌의 사내유보금” 환수를 제시한다.

기금 고갈론이라는 과장을 받아들이고 개혁주의적 가정들을 인정해 현실의 쟁점들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뜬금없이 사내유보금을 제시하는 지독히 무능한 주장이다. 지금 900조 원 가까이 쌓여 있는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을 우려하며 883조 사내유보금 환수가 대안이라는 그의 주장은 앞뒤도 맞지 않는다.

좌파는 신자유주의적 재정 안정화론에 바탕을 둔 기금 고갈론에 휘둘려선 안 된다. 또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노동자들의 삶을 지킬 대안임을 분명히 하며 그런 투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